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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일상 그리고 존재의 이유

영화 <준벅>

07.07.02 11:09최종업데이트07.07.02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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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뒤흔든 영웅이나 천재라 할지라도 결코 뜻대로 안되는 것이 바로 가족문제다. 사회를 형성하는 가장 근간이 되는 집단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의 뜻대로 선택할 수도 없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부정할 수도 없는 존재가 가족이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마음 놓고 의지할 수 있는 안식처이면서도,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남보다 못한 존재가 바로 가족이다.

'가족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이미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국내에서도 최근 <가족의 탄생>이나 <좋지 아니한가>, <이대근, 이댁은>같은 가족 영화들이 단골로 등장하여 좋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하지만 영화와 드라마를 통하여 이미 숱하게 등장한 가족이야기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 속에 가족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 어떤 명쾌한 해답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가족의 고전적 의의와 존재 가치를 돌아보는 작품에서부터, 전통적 가부장제도의 해체와 '대안 가족론'을 제시하는 급진적인 이야기까지 등장했지만, 근본적으로 애증으로 엮인 가족은 특정한 감정이나 혈연의 존재만으로 쉽게 설명할 수 없다. 사회생활이야 자유의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고, 연인이나 부부조차 법적으로 갈라서면 남이라지만, 가족은 단순히 법과 제도의 틀에 기대어 해석할 수 없는 존재기 때문이다.

<준벅>이 제시하는 화두도 바로 가족이라는 존재의 난해함이다. 영화 속 갈등은 모두 우리 일상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도시에 사는 젊은 부부가 우연히 시골의 시댁에 머무르며 겪는 며칠간의 사건에는 국적과 인종을 떠나 가족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보편적으로 겪을 수 있는 애증과 갈등의 파노라마가 함축적으로 담겨있다.

소통의 단절을 겪는 가족 구성원들, 형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동생, 매사 서로 못마땅한 며느리-시어머니의 고부 갈등, 무너지고 초라해진 가부장의 권위 등은 국내 관객들에게도 익숙한 설정들이다. 여기서 <준벅>은 극적인 사건보다는 사소한 일상의 풍경 속에서 저마다 다른 삶의 가치와 원칙을 지향하는 가족 구성원들의 정서적 충돌에 초점을 맞춘다.

<준벅>은 가족과 이방인,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간의 이질적인 문화차이에서 유발하는 대립구도를 넘어서, 가족이라는 틀로 엮여 있는 저마다 상이한 욕망의 충돌이 뒤섞인 또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가족이기 이전에 독립된 인격체이자 서로 다른 가치를 지향하는 개인의 시점에서 보았을 때, 서로의 개성을 존중해주지 못하는 가족은 각자 이방인의 외로움을 느껴야한다.

<준벅>에서 가장 불편한 점은 기존의 가족영화들과 달리 섣불리 화합의 가능성을 남겨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갈등구조는 주인공 부부가 시댁을 방문하고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다지 진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서로에 대한 불만과 편견 그리고 콤플렉스를 그대로 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은 때로 답답하다.

하지만 이런 시선은 오히려 강점으로도 작용한다. 영화는 <사랑과 전쟁>류의 불륜드라마처럼 비정상적인 갈등구조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는 '콩가루 집안' 이야기나, 억지봉합을 강요하는 '눈가리고 아웅'식의 과장된 해피엔딩을 연출하기보다는, 오히려 '구질구질하지만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우리 일상의 자화상을 담담한 시선으로 응시한다.

저마다 적당히 이기적이고 속물적인 인간들 그리고 이런 불완전한 존재들이 저마다의 이기심과 편견의 충돌로 갈등을 빚게 되는 일상의 예민한 순간들을 섬세하게 포착해내는 것이〈준벅〉의 미덕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런 인물들의 속물성과 어리석음을 높은 자리에서 내려다보듯 평가하고 비판하는 오만함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이런 모습조차도 바로 우리들 삶의 일부분임을 천천히 이야기해줄 뿐이다.

<준벅>은 가족 간의 애증은 영화처럼 명쾌하게 해결되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오랜 세월에 걸쳐 갈등과 봉합을 반복하며 서로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가족 간의 갈등이란, 모두에게 공통된 모범답안을 찾기보다는, 서로 '이해하고 인정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태도의 문제기 때문이다. 인간에서 가족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크나큰 축복이자 영원히 풀리지 않는 모순임을 이 영화는 환기시킨다.
2007-07-02 11:09 ⓒ 2007 OhmyNews
준벅 가족 갈등 모순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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