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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돌한 아이 이천수, 지금부터 시작이다

29일, 2005 프로축구 최우수선수(MVP)로 선정

05.12.29 18:05최종업데이트05.12.29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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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 K리그 MVP 이천수
ⓒ 위창남
울산의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이천수는 누구보다도 더 좋아했다. 2005년 12월 4일 김정남 전 국가대표감독이 이끄는 울산은 문수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삼성하우젠 K-리그 2005 챔피언 결정전 2차전에서 인천 유나이티드에 1-2로 졌으나 11월 27일에 열렸던 1차전에서 5-1로 이겨 합계 1승 1패에 골득실에서 6-3으로 앞서 우승했다. 울산에겐 1996년 정규리그 우승 이후 9년 만의 우승이기도 했다.

우승으로 김정남 감독을 위시한 울산의 전 선수가 좋아했겠지만 이천수에게는 더 남달랐을 것이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국내선수로는 최초로 프리메라리가에 진출했지만, 적응 실패로 올 여름 스페인에서 돌아와 8월 28일 후기리그부터 K-리그에 뛰어든 이천수였다.

1981년생. 172Cm, 67kg. A매치 50경기에서 5골을 기록한 이천수는 대표팀 부동의 윙포워드(WF)이기도 했다. 이천수하면 빠른 스피드에 이은 돌파력, 항상 자신감에 차있는 모습이 트레이드마크였다. 이천수는 2002 한일월드컵 이후 주가가 폭등해 4년간 100만 달러라는 금액으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사우스햄튼으로부터 계약 제안을 받지만 무산된다. 이후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과는 에이전트 문제로 다시 한번 해외진출의 기회가 무산 돼버린다.

그리고 2003년, 그토록 꿈에도 그리던 해외진출을 이루어 낸다. 02-03 시즌 리그2위의 전통의 명문 레알 소시에다드로 이적료 42억, 연봉6억의 조건이었다.

꿈의 무대 프리메라리가의 성공적인 진출. 이천수에게 가장 행복하고 자신의 가치가 가장 높았던 순간이기도 했다. 언론에서도 매일 이천수의 얘기가 쏟아져 나왔다.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그는 리그 초반에는 스타팅 멤버로 꾸준히 이름을 올렸고 첫경기에서 완벽한 골을 만들었으나 팀동료 코바세비치가 마지막에 볼을 건드리면서 그만 어시스트가 돼버리는 아쉬운 순간도 연출됐다.

그러나 이천수는 초반의 상승세를 더 이상 이어가지 못하고 시즌을 2어시스트로 마감한다. 모든 것을 실력으로 말해야 하는 프로의 세계에서 성과가 없자 레알 소시에다드는 다음 시즌에 이천수를 누만시아에 임대하기로 결정한다. 이천수는 이대로 좌절할 수 없다는 각오로 리그 초반 의욕적인 모습으로 경기에 임하지만 역시 공격포인트를 올리지 못한다.

그는 처음 자신있게 스페인에 진출할 때와는 달리 쓸쓸하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고 조용히 국내로 복귀한다. 사람들은 그를 말만 잘하는 친구로 평가하기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프리메라리가 진출 때도 큰소리만큼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으니까. 이천수는 국내에 돌아와서도 심적으로 불안해 운동하기가 싫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내 특유의 오기가 생겼다.

그리고 삼성하우젠 K-리그 2005 챔피언 결정전 1차전에서 자신의 첫 K-리그 첫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이천수는 이날 3번의 기회를 모두 골로 연결했을 정도로 뛰어난 골감각, 소위 킬러로서의 실력을 과시했다. 플레이오프와 챔피언결정 1, 2차전에서 3골-4어시스트의 활약을 펼치며 울산을 우승으로 이끌고 결국 올시즌 프로축구 K-리그 MVP로 뽑히는 영광을 안았다.

이천수에게 이 상이 주는 의미는 크다. 이제 예전의 그 당당한 이천수로 돌아왔다. 그가 또 잉글랜드라는 다른 꿈을 꾸고 있다고 한다. 스페인에서 실패가 소중한 자양분이 되어 그가 바라는 꿈이 꼭 이루어지길 응원한다.

덧붙이는 글 | .

2005-12-29 18:04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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