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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다룬 <끝나지 않은 세월>, 김경률 감독 '영면'

14일 첫 상영 앞두고 뇌출혈로 유명 달리해

05.12.02 17:07최종업데이트05.12.02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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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영상을 위해 불꽃 같은 삶을 살았던 <끝나지 않은 세월> 김경률 감독(41·설문대 영상 대표)이 2일 오전 끝내 숨을 거뒀다. 이날은 고인의 음력 생일(11월 1일)이기도 했다. 자신의 생일상 앞에 치열하게 살았던 40년 인생을 바친 것이다. "실패를 거울 삼아 다시 한번 4·3영화를 만들어 보겠다"던 젊은 영화인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4·3 다룬 첫 디지털장편 극영화 <끝나지 않은 세월>
 故 김경률 감독
ⓒ 양김진웅
지난 1일 새벽 뇌출혈로 수술까지 받았던 김 감독은 끝내 의식을 찾지 못한 채 2일 오전 9시께 가열차게 살아왔던 자신의 40년 생을 마감했다. 많은 이들이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한 죽음이었다. 고인은 종종 "제주를 영상도시로 우뚝 세워놓겠다"며 "그 중심에 제주 4·3이라는 저항의 역사가 반드시 있다"고 되뇌이곤 했다. 그리고 "비록 역사의 한켠에 머물렀던 변방의 섬이었지만 칸느와 같은 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모든 영화인들이 꿈을 꾸는 '영화·영상의 섬'로 만들겠다"는 뜻을 품기도 했다. 고인은 지난 4월 <끝나지 않은 세월> 시사회에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각각의 인간 군상 속에 4·3이라는 역사적 아픔이 어떻게 투영되고 자리해 있는지를 그리려 했다"고 밝히고 "앞으로 왜곡된 4·3의 모습을 바로잡아 나가는 데 혼신의 힘을 쏟겠다"고 약속했다. 이제 그 약속은 가슴에 묻어야만 한다. 오는 14일과 16일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될 4·3 첫 디지털장편 극 영화 <끝나지 않은 세월>은 결국 채 '끝나지 못한 작업'으로 관객 앞에 서게 됐다. 예정되었던 '감독과의 대화' 역시 관객의 몫으로 남겨졌다. 제주에 열정 바친 김경률 감독, 영면하다
 "미역국도 끓이지 못했는데...". 김 감독의 어머니는 끝내 오열하고 말았다.
ⓒ 양김진웅
"며칠 전 보일러 때문에 많이 다퉜어. 그렇게 싸울 일도 아니었는데…. 너무 미안해서 가슴이 아파요. 그게 마지막일 줄은…." 어머니 강순녀(77)씨는 "오늘이 경률이 음력 생일인데…. 정말 믿기지 않고 겁이 난다"며 끝내 울음을 토해냈다. "홀어멍(어머니) 곁에서 제대로 먹여 주지도 챙겨 주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먼저 가면 어멍 혼자 어떻게 살라고… 미역국도 차려주지 못했는데…. 어머니가 죄인이다, 경률아!" 김 감독과 함께 활동했던 선배 고동원(44)씨는 "어제 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았지만 가망없다는 말을 듣고 순간 울컥했다"며 "힘내라고, 털고 일어서라고 한 마디 말도 못하고 이대로 벗들만 남겨둔 채 황망하게 가버렸다"고 고개를 떨궜다. 민요패 소리왓의 한 지인은 "김 감독은 자신의 몸은 챙기는 것은 뒷전이고 일에만 열중했다. 4·3영화 제작은 물론 연극, 영상 등 자신이 해야할 곳에서라면 어디든지 마다하지 않고 굉장히 열정적으로 일을 했다"고 아쉬워했다. 600여 명의 후원자가 함께 만든 <끝나지 않은 세월> 지난해 혼신의 힘으로 만든 장편 독립영화 <끝나지 않은 세월>은 자발적 후원자 600여 명이 만든 영화. 지난해 7월 크랭크인 이후 재정적인 어려움에 봉착하자 '<끝나지 않은 세월>을 사랑하는 모임' 발기인대회를 통해 십시일반의 정성으로 제작 중단의 위기를 이겨냈다. 고인은 이 영화를 시작으로 제주의 삶과 아픔에 대해 조명하고자 했지만 끝내 이루지 못했다. 어쩌면 그는 죽음으로서 채 끝내지 못한 '4·3의 한'을 말하는 듯하다. 지금도 영화 '끝나지 않은 세월'과 '세월' 홈페이지(www.sewallmovie.com)에는 600여 명의 말없는 후원자들의 이름이 곳곳에 새겨져 있다. 한 영화인은 "쓰러진 지 하루 만에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영화에 모든 열정을 쏟아 붓고 불꽃 같은 인생을 살다간 김 감독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며 고인의 넋을 달랬다.
 올해 3월 4·3 극영화 <끝나지 않은 세월>을 사랑하는 모임 발기인대회에서 제작진과 배우 등을 소개하고 있는 김 감독.
ⓒ 제주투데이

덧붙이는 글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장례식은 오는 6일 제주시 용강동 가족묘지에서 치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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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대자(大者)는 그의 어린마음을 잃지않는 者이다' 프리랜서를 꿈꾸며 12년 동안 걸었던 언론노동자의 길. 앞으로도 변치않을 꿈, 자유로운 영혼...불혹 즈음 제2인생을 위한 방점을 찍고 제주땅에서 느릿~느릿~~. 하지만 뚜벅뚜벅 걸어가는 세 아이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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