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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 그 새로운 역동성에 주목한다

[PIFF 결산(2)] 부산이 주목한 의의의 수작들

05.10.16 08:21최종업데이트05.10.17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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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썬데이서울>은 젊은 영화인들의 키치적 상상력의 극단을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된다.
ⓒ PIFF
올해 부산 국제영화제는 '월드 시네마', '아시아 영화의 창', '한국영화 회고전' 등 총 9개 섹션에서 307편의 영화가 상영되었다. 그중에서 눈여겨볼 것은 전통적으로 부산 영화제가 자랑하는 핵심 프로그램이었던 '뉴 커런츠'와 '와이드 앵글'이다.

새로움과 참신함, 진보적 상상력과 과감한 실험정신. 바로 뉴 커런츠와 와이드 앵글을 상징하는 정체성이기도 하다. 아시아 영화 작가들의 새로운 감수성과 실험정신을 지원하기 위해 탄생된 이 두 섹션에서는 올해도 변함없이 새로운 수작들이 관객들을 찾아오며 주목받았다.

부산 국제영화제 유일의 공식 경쟁 부문인 뉴 커런츠 부문 대상을 수상한 장률 감독의 <망종>을 비롯하여, 로빈 리 감독의 <인어공주와 구두>, 모하마드 가세미의 <땅위의 쓴 글>, 완마차이단 감독의 <성스러운 돌> 등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작품들. 반면, 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진보적 상상력을 모티브로 하는 와이드 앵글부문에서는 역시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바탕으로 동시대 사회와 문화의 단면을 짊어내는 다큐멘터리가 주목을 받았다.

뉴 커런츠와 와이드 앵글의 특징은 대개 현실과 사회 속에서 고립된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 주류를 이룬다는 것이다. 법과 제도권의 비호 안에 소속되지 못하고 소외된 사람들, 중심부에 들어서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우열을 가르는 냉혹한 사회구조 속에서 주변부로 다시 밀려나는 아웃사이더들에 대한 따스한 애정은 우리 사회의 모순을 바라보는 젊은 감독들의 보편적인 주제의식이기도 하다.

올해 부산 국제영화제에서는 다채로운 형식미와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들이 큰 사랑을 받았다. 기존의 주류 상업 영화에서 느낄 수 없는 참신함과 새로운 영화언어의 추구, 감독의 개성 있는 스타일 속에 관객과의 사회적 메시지에 대한 교감에 성공한 작품들이 사랑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 스즈키 세이준의 <오페레타 너구리 저택>- 기묘한 뮤지컬 영화로 영화제 후반부 최고의 화제를 낳았다.
ⓒ 이준목
개막작 <쓰리타임즈>는, 세 가지 시대를 오가며 벌어지는 남녀의 독특한 사랑이야기 속에 허우샤오시엔의 영화 역사의 진화과정을 돌아보게 만드는 독특한 스타일의 영화라 관심을 끌었다.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의 <봄의 눈>, 관금붕 감독의 <장한가>, 미란다 줄라이 감독의 <미 앤 유 에브리원>,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히든>, 크쥐스토프 자누시 감독의 <반갑지 않은 사람>, 위시트 사사나티앙의 <시티즌 독>, 차이밍량의 <흔들리는 구름> 등이 올해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았던 의외의 수작들.

또한 일본의 노장 감독 스즈키 세이준의 <오페레타 너구리 저택>은 동서양의 모든 악극 형식을 집대성한 독특한 뮤지컬 드라마로 영화제 후반기 최고의 화제를 장식하기도 했다.

여기에 올해 부산 국제영화제에서는 기존의 주류 상업영화와 다른 패러다임으로 전진하고 있는 한국 영화의 역동성을 확인해볼 수 있었다.

이번 부산 국제영화제를 통해 주목할만한 한국영화로 평가받은 작품으로는 올해 PIFF 공식 3관왕에 빛나는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를 비롯하여, 이윤기 감독의 <러브 토크>, 오석근 감독의 <연애>, 전수일 감독의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 인권 영화 프로젝트 <다섯 개의 시선>, 박성훈 감독의 <썬데이 서울> 등이 있으며 이 영화들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작품이었다.

▲ <용서받지 못한 자>
ⓒ PIFF
이번 부산 국제영화제를 통해 나타난 한국영화의 신경향성은, 보다 자유분방한 의미에서의 '웰메이드'로 정의 내려진다. 여기서 소개한 한국영화는 상업영화에서 이야기하는 '웰메이드'와는 거리가 있다. '내 멋대로 해라'식의 키치적 미학으로 가득한 <썬데이 서울>이나 트렌디한 멜로극의 모든 공식을 전면적으로 해체하는 성인 멜로영화 <연애>에서는 장르나 스타일에 대한 강박관념이 없다.

오늘날 한국 영화는 보다 개인화되고 내면화되어지고 있다. 개인의 정체성과 소통에 관련된 질문으로부터 우리 사회의 본질적 모순을 파헤쳐가는 방식은 주류 영화가 암묵적으로 정해놓은 어떤 틀이나, 사회통념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이런 연유로 개성강한 감독들이 자신만의 주제의식을 분명한 방식으로 전달하는 영화들이 시선을 끌고 있다.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은 개인의 실존과 우리 사회의 정체성 상실에 관련된 질문을 긴 롱테이크에 담아 보여주는 고집스러운 고전주의자의 미학을 보여준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남성중심의 한국사회를 상징하는 군대라는 성역을 파헤치며 씁쓸한 희비극이 교차하는 미스터리 심리극을 만들어낸다.

▲ <러브 토크>
ⓒ PIFF
<러브 토크>는 이윤기 감독이 추구해온 고독한 현대인의 소외와 불안감이라는 테마가 더욱 더 깊어진 영화다. <여자, 정혜>가 주인공 한 사람의 전위적 시선을 바탕으로 일상을 담담하게 관조하는 영화였다면, <러브 토크>는 자신의 세계와 사회, 혹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혼란과 갈등에 주목한다.

이런 영화들은 궁극적으로 감독 개인의 성향이 묻어나는 자전적인 이야기에 기초하고 있으면서도 개인의 삶이 사회라는 틀 속에서 맺어지는 다양한 관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외면하지 않는다. 곧 영화 속에서 소통에의 갈망은 곧 현장에서 관객과의 새로운 소통을 성원하는 작가들의 문제제기이기도 하다.

경계의 극복, 개인의 실존에 관련된 정체성을 파고드는 최근 한국영화의 신경향은 주류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깊이와 실험정신의 역동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비주류의 영화들이, 주류권의 영화들에 끊임없는 자극을 주면서 시장에서 상호공존할 수 있을 때 한국영화의 다양성과 체력이 더욱 건강해진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005-10-16 08:20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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