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소피의 낙관이 나를 흔들다

하야오의 영화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04.12.29 15:32최종업데이트04.12.29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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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생각없이 접한 영화나 책 속에서 섬광과도 같은 깨달음 혹은 진리의 빛을 발견하는 순간이 간혹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최신작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나온 한 대목이 내게는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평론가들의 평가에서도, 흥행면에서도 그리 후한 대접을 받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적어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전작(前作)들에 비교해서는 확실히 그런 평가가 가능할 듯 싶다.

이 영화에 대한 비평은 분분(紛紛)하지만 정작 이글의 목적은 이 영화의 비평에 있지 않다. 내가 말하고 싶고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이 영화의 어떤 장면이다.

이 영화를 보면 여주인공 소피가 창졸간에 황야의 마녀의 주술에 걸려 18세 소녀에서 90세 노파로 변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진정 놀라운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신체의 변화를 겪은 이후 소피의 반응이었다.

물론 소피 역시 아무런 잘못도 없는 상태에서 경험한 신체의 변화-생각해 보라! 소녀에서 노파로의 변신이라니!-에 놀란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극적인 노화(老化)를 경험한 직후 소피의 반응은 놀랍게도 '침착하자!'와 '고민하지 말자! 고민하면 더 늙는다!'라는 독백으로 대표되는 자기절제였다.

소피가 기질적으로 낙천적인 사람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소피는 노파가 된 자신의 모습에 지나친 비관도 절망도 하지 않는다. 소피가 자신의 변화를 담담히 받아들이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하룻밤 정도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소피가 자신을 그렇게 망가뜨린(?) 황야의 마녀에 대해서 사무치는 적개심이나 증오의 염(念)을 품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는 후일 마법을 잃고 무력해진 황야의 마녀를 따뜻하게 대하는 소피의 태도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바로 위와 같은 소피의 건강한 낙관(樂觀)이 찰나의 순간에 나에게 꽂혔다. 그 운명의 순간, 그 깨달음의 순간만으로도 나는 이 영화를 보는데 들인 내 비용과 시간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소피의 목소리를 통해 극심한 불행과 절망 속에서도 살아야 한다고,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우리에게 속삭이고 있다. 또 그는 절망의 끝에 선 소녀가 의연히 현실을 이겨냈듯이, 당신들도 아픔과 고통을 과장하지 말고 현실에 맞서라고 주문하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해일(海溢)로 인해 모든 것을 잃은 동남아인들에게, 실직으로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한국의 노동자들에게, 점령군에 맞서 싸우고 있는 이라크인들에게, 생사의 기로에 선 세상의 병자들에게, 그 밖의 모든 불행한 이들에게 낙관을 품고 희망을 키울 것을 나직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영화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위대함을 본다. 그가 생각하는 영화는 세상을 올바로 보게 하는 창이어야 하고, 세상사에 지친 사람들을 따뜻하게 위무하는 손길이어야 하며, 마침내는 더 나은 세상에 대해서 꿈꿀 것을 제안하는 사유의 기계여야 한다.

그는 영화가 예술과 상품의 경계에서 위태롭게 동요하는 기계복제장치라는 것을 누구보다 예리하게 감득(感得)하는 자이며, 영화가 자본가들의 이윤추구욕망과 작가들의 상상력이 한치의 양보없이 격돌하는 장소라는 것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는 자이다.

"예술은 영화가 필요하지 않지만, 영화는 예술이 필요하다"는 브레히트의 명언을 마음속에 새기고 있는 사람이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세상은 점점 시시해가지만 그와 같은 영화감독이 있기에 아직은 살아 볼 만한 것이 아니겠는가!
2004-12-29 17:46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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