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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복이 없었을 뿐, 연기는 잘했잖아?

[2004 신인배우] 내가 한가인에 주목하는 이유

04.12.10 08:00최종업데이트04.12.10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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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한민국 영화대상'을 지켜보며 가졌던 나의 기대는 가볍게 무너져 내렸다. 신인여우상 부문에서 내심(?) <말죽거리잔혹사>의 한가인이 불려지기를 바랐지만, 결과는 <가족>의 수애가 호명되며 싱겁게(?)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열렸던 '청룡영화상'에 이은 또 한 번의 고배다. 수애가 신인상을 받은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딴지를 걸고자 하는 마음은 결코 아니다. 그렇지만, 한가인을 외쳤던 마음 한편이 씁쓸해지는 기분까지는 어쩔 수 없는 듯하다.

혹자는 필자의 이런 반응에 대해 '한가인의 열성 팬 아니냐?'는 식의 시선을 보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유는 전혀 딴 곳에 있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2004년의 새로운 발견, 수애 그리고 한가인

2004년 한국영화계의 가장 큰 아쉬움은 눈에 띄는 신인배우가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를 훑고 훑고 또 훑어 봐도, 눈에 들어오는 신인배우는 남녀를 합쳐도 다섯 손가락을 넘지 않는다.

그나마 <빈 집> <가족> <말죽거리잔혹사>를 통해 등장한 재희와 수애 그리고 한가인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게 수확이라면 수확일 것이다. 특히 영화 <가족>에서 보여 준 수애의 연기는 신인배우라 하기에는 믿기 힘들 만큼 훌륭했다.

따라서 그녀가 '청룡영화상'과 '대한민국 영화대상'에서 연거푸 신인상을 거머쥔 것에 대해 그 누구도 이견을 달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수애에게 눌려 빛을 발하지 못한 한가인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상대적 패배 또는 시기적 패배

올해 '청룡영화상'과 '대한민국 영화대상'에서의 신인여우상은 누가 봐도 수애와 한가인의 대결이었다. 아마도 상당수의 사람들은 수애의 수상을 예상했을 것이다(그리고 결과도 그렇게 되었다). 그렇다면, 역으로 한가인이 단상에 오르지 못한 것 또한 누가 봐도 당연한 것이었을까.

영화 <말죽거리잔혹사>가 1월에 개봉한 덕에, 한가인은 각종 영화 시상식의 신인여우상 후보에 모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3월에 열린 '백상 예술대상'의 영화부문 신인여우상은 <올드보이>의 윤진서에게 돌아갔으며, 6월에 열린 '대종상영화제'의 신인여우상은 <어린 신부>의 문근영이 차지했다. 수애라는 배우의 이름이 없던 때에도, 한가인은 신인상 트로피에 자기 이름을 새겨 넣지 못한 것이다.

이것이 한가인의 연기력 부재에 따른 것이라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필자는 그것이 시기상 적절치 못했다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랬기에 연말에 열리는 시상식에서는 한가인이 한 번 정도 신인상을 거머쥘 수 있기를 바랐다.

이는 한가인의 팬으로서가 아니라, 관객의 입장에서 한가인이라는 배우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 동시에 영화에서의 그녀의 연기가 지나치게(?) 평가절하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영화 <말죽거리잔혹사>를 떠올려 보자. 영화 <실미도>가 관객 1000만 명을 향해 한창 순항하고 있는 시기에 개봉되었음에도, <말죽거리잔혹사>는 그 기세와는 별다르게 독자적인 행보로 관객과 평단의 관심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 '은주'라는 캐릭터가 빠진 <말죽거리 잔혹사>를 상상할 수 있을까.
ⓒ 소경수
한가인은 권상우와 이정진이라는, 이미 떠오른 두 남자배우의 틈 사이에서 신인으로서 꽤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역을 연기했다. 그러나 그녀가 연기한 영화 속 '은주'는 이들과의 대결에서 전혀 꿀림이 없었다.

혹자는 <말죽거리잔혹사>를 남성주의로의 회귀와 추억을 얘기하는 영화라 치부하면서, 그 안에 갇힌 한가인(의 연기)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한가인이 연기한 '은주' 없는 <말죽거리잔혹사>를 생각할 수 있을까. 이 영화는 '은주'라는 캐릭터가 있었기에 더욱 빛을 발한 영화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은주'는 단순히 '현수(권상우 분)'와 '우식(이정진 분)' 사이에서 치이는 캐릭터가 아니다. 두 남자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어느 한 쪽의 선택을 기다리는 캐릭터는 더욱 아니다. 오히려 '은주'는 두 남자의 관계를, 나아가 두 남자의 인생을 매몰차게 무너뜨리는 '팜므파탈'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캐릭터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우리가 한가인을 '올리비아 핫세'를 닮은 연예인으로 치부하기 보다는, '은주'라는 캐릭터를 잘 소화해낸 배우로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다. 동시에 배우 수애와는 또 다른 측면에서 2004년 신인배우로 한가인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 이후 한가인은 소리없이 그 여세를 몰아 지난 10월, 40%가 넘는 시청률로 막을 내린 드라마 <애정의 조건>에서 '은파'를 연기해 새롭게 등장한 여배우로서 시청자들에게 그 존재를 알렸다.

이제 막 연기에 물이 오르기 시작한 그녀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올해의 '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보다 더 큰 상을 바라고 있는지도. 그것은 바로, 그녀를 진정한 배우로 바라보는 관객들의 시선이다. 2005년 한가인의 행보에 촉각을 세워본다.
2004-12-08 01:23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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