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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스포츠팬의 새해 소망

국가대표 선수들, 모두 화이팅!

04.01.01 10:05최종업데이트04.01.01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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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많고 탈많았던 2003년은 가고, 또다시 희망찬 새해가 밝았다. 늘 그렇듯 묵은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할 때면 어떤 기대감과 함께 설레임으로 가슴이 한없이 벅차 오른다. 그런데 나에게 2004년은 여느 해보다 더욱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바로 올림픽이 열리는 해이기 때문이다.

나는 스포츠팬이다. 겨우 구구단이나 깨쳤을래나? 코흘리개 시절부터 난 스포츠를 애인마냥 끼고 살았다. 덕분에 '나라이름 대기'에선 항상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선수이름 대기'에서만큼은 '절대지존'으로 군림했다. 또한 빅매치가 있을 때면 모범생(?)이라는 신분을 가차없이 내동댕이치고, '땡땡이'를 서슴지 않고 자행했다. 그리하여 '스포츠가 밥 먹여주냐?'는 얘기를 골백번도 넘게 들었지만 지난 4년간 스포츠로 그럭저럭 밥 벌어 먹고 살았으니 스포츠와 나는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된 것 같다.

무엇보다도 내가 올림픽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올림픽이 나를 진정한 스포츠의 세계로 인도해줬기 때문이다. 고백컨데 84올림픽 전까지만 해도 난 스포츠라고 하면 4대 구기종목(야구, 축구, 농구, 배구) 밖에 몰랐다. 그러니 모든 종목을 총망라한 '종합선물세트'같은 올림픽을 처음 봤을 때, 그 충격이 어떠했겠는가. 더구나 각 종목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들의 플레이를 안방에서 편안히 지켜볼 수 있으니 '이게 웬 떡이냐'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일개 스포츠팬인 나도 이렇게 설레이고 떨리는데, 4년을 기다린 선수들은 오죽할까.

고작 100m 뛰고도 헉헉거리는 내가, 감량의 고통도 모르고, 쉬는 날 놀 거 다 노는 내가, 어찌 선수들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있을까마는 선수들이, 정말 어디 한 군데 안 아픈 곳이 없고, 훈련이 너무 고되고 힘들 땐 당장이라도 운동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고 말하면서도 꿋꿋하게 참고 견딘 건 올림픽이라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제 올림픽의 해가 밝았다.

언론도 벌써부터 난리다. 신년특집으로 '아테네올림픽을 전망한다'는 식의 기사를 시리즈로 내보내며 선수들을 독려하기에 바쁘다. 올림픽만 되면 아마추어 종목에 '반짝 관심'을 갖는 언론을 하루 이틀 보는 것도 아니고,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탓할 생각은 없다(오히려 올림픽 때라도 관심을 가져주니 고맙다고 넙죽 절이라도 하고픈 심정이다) 다만 스포츠팬으로서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올림픽이 열리는 해에 언론의 최대 관심사는 '우리나라가 금메달을 몇 개나 딸까?'다. 물론 이것도 스포츠 강국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일지도 모른다. 메달보다도 참가에 의의를 두는 국가들이 훨씬 많으니까. 문제는 너무 순위에만 목매고, 집착한다는 것이다. 제발 게임도 하기 전에 '금메달은 떼논 당상'이니 하는 방정떠는 소리해서 초치지 말고, 좀 차분하게 지켜봤으면 좋겠다.

또 하나. 우리는 금메달 유망주가 금메달 못 따면 마치 죄인취급 하는 경향이 있는데, 올림픽 금메달 따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물론 보는 사람들도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 그런 거겠지만 가장 안타까운 건 선수 본인일 것이다. 은메달 딴 선수가 시상대 위에서 내일 당장 지구가 멸망할 것처럼 슬픈 표정 짓고, 고개 푹 수그리고 땅이 꺼질세라 한숨 푹푹 내쉬는 나라는 아마도 우리밖에 없지 않을까. 그렇다고 오버할 필요도 없고, 메달 딴 선수, 못딴 선수 모두에게 그저 '수고했다'는 말 한 마디 건네주면 그걸로 족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요즘 인기절정인 비, 권상우 같은 잘 나가는 연예인들보다 묵묵히 운동하는 선수들이 훨씬 멋져 보인다. 젊을 때 자신의 일생을 걸만한 뭔가를 발견한 사람은 누구나 행운아임에 틀림없는데, 그중에서도 선수들은 행운아 중의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젊음을 운동하는데 다 바친 선수들이 흘리는 땀은 그 무엇보다도 정직하고 순수하기 때문이다. 승패를 떠나 최선을 다해 싸우는 선수들의 진지한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에너지가 퐁퐁 솟구치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결과가 어찌됐든 간에 좌절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4년 후를 기약하며 이를 앙물고 또다시 훈련에 몰두하는 선수들의 굳은 의지가 바위보다 더 단단해 보이기 때문이다.

혹시 '라두칸'이라는 루마니아 체조선수를 기억하는가. 라두칸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 여자체조에서 2관왕에 올랐지만 무심코 먹은 감기약에서 금지약물이 검출되는 바람에 금메달을 박탈당했었다. 16세 어린 소녀의 낙담하는 표정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데, 그보다도 동료선수들이 보여준 반응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자국 동료들뿐만 아니라 이 일로 얼떨결에 동메달리스트가 된 중국선수도 라두칸에게 금메달을 돌려줘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낸 것이다. "체조선수들이 의지하는 건 오로지 자신의 기술뿐이'라는 말과 함께. 정말 멋지지 않은가. 아, 이번 올림픽에서는 또 어떤 드라마가 나의 가슴을 살포시 적셔줄까.

올림픽의 해에는 항상 그렇듯 올해에도 야심한 밤, 사방 이웃집에서 함성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듣고, 승리감에 도취해 만세삼창을 외치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을 것이다. 소시민적 연대감으로 똘똘 뭉쳐 졸린 눈 비벼가며 국민들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응원하고, 플레이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는 건 언제봐도 순박하고 정겹기 그지없는 우리네 모습이다. 상상만 해도 흐뭇만 미소가 저절로 번진다.

마지막으로 소망이 있다면 선수들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동안 흘린 땀방울만큼의 결실을 맺을 수 있길 바란다.
2004-01-01 13:29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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