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오늘 LG정유(당시 호남정유)는 제13회 슈퍼리그 챔피언 결정전 3차전에서 한일합섬을 세트스코어 3:0으로 일축하고 슈퍼리그 6연패를 달성한다. '배구의 명가' LG정유는 구기 종목을 통틀어 가장 놀라운 성적을 거뒀던 팀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다. LG정유는 1991년부터 1999년까지 슈퍼리그 9회 연속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금자탑을 쌓았던 팀이다. 또한 이와 함께 92연승(91년 1월 - 95년 1월), 슈퍼리그 3회 연속 전승 우승(92-94 슈퍼리그)이라는 빛나는 기록을 갖고 있다. ▲ 1996년 2월 28일자 중앙일보 ⓒ 이정환 관련사진보기LG정유의 전성기는 우수한 선수들에서부터 시작됐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수는 장윤희(33). 장윤희는 90년대 5차례나 MVP에 오를 정도로 한국 여자 배구 사상 최고의 거포로 꼽혔던 선수다. 2000년 3월 은퇴했으나, 김철용 감독의 권유로 2001년 10월 전국체전에서 깜짝 복귀,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과시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코트의 여우' 이도희(35). 빠른 토스로 유명했던 이도희는 조직력 배구의 핵심이었다. 1996년 6연패 달성 후 화려하게 은퇴했으나, 3년 10개월만인 2000년 슈퍼리그에 팀 우승을 위해 코트에 복귀한다. 그러나 이도희는 10연패 문턱에서 현대 건설에 무릎을 꿇은 팀과 함께 눈물을 뿌렸다. 센터 홍지연 박수정 선수도 빼 놓을 수 없다. 팀의 살림꾼 역할을 톡톡히 해냈던 박수정(31)은 2000년 10월 무릎 수술 후 리베로로 변신, 2001슈퍼리그에서 놀라운 수비력을 과시했다. 국가대표 장신 센터로 각광 받았던 홍지연(33)은 2000년 3월 무릎부상으로 은퇴, 현재는 장윤창 배구스쿨에서 일반인들을 지도하고 있다. 1996년 LG정유의 슈퍼리그 6연패와 함께 대회 MVP에 올랐던 정선혜(30). 당시 실업 3년차로 챔피언 결정전 3경기에서 모두 MIP(가장 인상적인 선수)로 뽑힐 정도로 발군의 기량을 과시했던 정선혜는 어느새 팀에서 '왕고참'이 됐다. 연승 주역이었던 선배들을 모두 떠나 보내고 홀로 남은 정선혜는 2003 슈퍼리그에서 후배들을 이끌고 고군분투했다. 놀라운 연승 기록이 '좋은 선수들'만으로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LG정유는 어느 팀도 따라 올 수 없는 조직력을 갖고 있었고, 그 중심에는 김철용 감독이 있었다. 일신여상 재임 시절 118연승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던 김철용 감독은 1987년 당시 33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LG정유 사령탑에 올랐다. 김철용 감독은 혹독한 훈련으로 톱니바퀴 같이 돌아가는 조직력 배구를 창출했고, 종교를 통해 벤치와 선수들간 신뢰를 이끌어냈다. 경기가 끝난 후 동그랗게 모여 앉아 기도를 올리는 선수들의 모습은 LG정유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배구팬들에게는 익숙한 풍경이었다. 그러나 LG정유는 2000년 슈퍼리그에서 10연패 달성 실패와 함께 왕좌를 현대에 넘겨주면서 급속하게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모그룹의 투자 축소로 세대교체에 실패한 LG정유는 2003 슈퍼리그에서도 1차대회 3승 5패, 플레이오프까지 3승 7패로 부진했다. 게다가 차세대 거포 김민지를 영입하기 위해 흥국생명과 '서로 꼴찌'라고 다투는 모습을 보여 LG정유를 아끼는 많은 팬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한편, 2003 슈퍼리그에서는 1998년 한일합섬이 해체되면서 은퇴했던 이수정(32)이 LG정유 세터로 나와 눈길을 끌었다. 한일합섬은 LG정유 전성기 시절 줄곧 결승전 상대로 나섰다가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던 팀이다. 이수정은 주전 세터 부재로 고심을 하고 있던 김철용 감독의 권유로 코트에 복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