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영화 <피아니스트>와 전쟁

북핵 위기 한복판에서 만나는 전쟁(?) 영화

03.01.01 13:12최종업데이트03.01.0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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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전단지 - 주인공이 폐허가 된 게토로 들어가 숨을 곳, 먹을 것을 찾아 다친 다리를 절뚝거리며 헤매는 모습입니다
ⓒ (주)감자,씨네월드
1.영화를 본 느낌

2002년 12월 31일 영화 하나를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꼭 잡고 보았습니다. 영화에 푹 빠지느라 영화를 보는 동안은 몰랐는데 저와 함께 영화를 본 이 옆에 있던 사람들은 "뭐 이렇게 재미없냐"며 "졸려 죽겠다"는 말을 영화가 흐르는 동안 세 번이나 말해서 성가시게 했답니다. 하지만 저나 사랑하는 사람은 두 시간 반 동안 흐른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눈길 한 번도 뗄 수 없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또 무엇을 얻고자 만드는 무기인지 모르겠습니다. 그 무기를 가지고 군대를 만들고 군대를 만들어서 이웃나라를 치면서 무엇을 하고픈지 모르겠습니다. 그 힘세고 튼튼한 군대 조직으로 쳐들어오는 나라를 막지 못해서 잡아먹혀야 하는 나라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먹이사슬에 따라 `힘이 없으니' 잡아먹히는 일이 올바를까요. 그리고 그처럼 잡아먹히면 자기를 잡아먹은 나라에 빌붙어서 살아가야 좋을까요.

폴란드라는 나라는 여섯 해를 반 식민지로 살았습니다. 우리는 서른여섯 해나 되니 얼마 안 된다고도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인도는 200년이 넘게 영국과 프랑스에게 시달렸고 말레이지아, 인도네시아도 네덜란드와 여러 유럽나라에게 짓밟혔고, 우리가 참전한 베트남도 유럽 나라들과 프랑스와 미국 때문에 엄청난 몸살을 앓았습니다. 쿠바는 미국에게 경제 식민지로 지내다가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혁명에 성공해서 미국 그늘에서 벗어났고요.

왜 이렇게 짓밟혀야 할까요. 왜 잡아먹혀야 하는 나라가 있어야 하고 짓밟으려 하고 잡아먹으려고 하는 나라가 있어야 할까요. 잡아먹히지 않고자 군대를 키우고 늘려서 모두들 군사 훈련만 해야 좋을까요? 잡아먹으려는 쪽은 잡아먹고자, 잡아먹힐 쪽은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군대를 늘려야 할까요?

그런 `전쟁' 한복판에 있던 나라 가운데 하나로 폴란드가 있었고, 그 폴란드에서 평범하다면 평범하고, 평범하지 않다면 평범하지 않은 `피아노 연주자'가 한 사람 있습니다. 하는 일로 보면 평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으로 볼 때는 그야말로 평범합니다. 나이든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고 다 커서 일을 하는 젊은 딸아들이 있는 집안, 이제 큰아들(피아노 연주자)도 장가갈 때가 되었고 그 밑 동생들도 머리통이 굵은 집안. 남달리 잘 살지는 않으나 음악을 좋아하여 음악가 집안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런 집안. 남다르게 빼어난 재주나 사회를 살아가는 힘이 없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전쟁통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식민지가 된 나라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좋을까요. 무엇을 하면서.

어떤 이는 그 틈에 기회주의자로 탈바꿈하고 어떤 이는 그 틈에 돈벌이를 꾀하고 어떤 이는 그 가운데 굶어 죽고 병들어 죽고 독일군에게 맞아 죽습니다. 이 모습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기회주의자로 친일부역한 사람이 있고, 마지못해 입에 풀칠을 하려고 친일부역을 한 사람이 있으며, 드러내놓고 반대도 못하지만 그렇다고 친일로 기울지 못한 사람도 많아요. 창씨개명을 하라고 할 때 어쩔 수 없이 한 사람이 있으나 나서서 한 사람도 있어요. 그 사람들은 무엇이 다르고 어떻게 달리 보면 좋을까요.

`피아니스트' 집안 아버지(할아버지)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따라하면서 목숨을 지키자는 주의입니다. 그래서 다른 식구들은 `유태인 완장'을 차지 말자고 해도 가장 먼저 차고 다니고 독일군이 옆을 지나가며 왜 자기에게 인사하지 않느냐고 주먹으로 때려도 미안하다고 말하고, 유태인은 거님길이 아닌 옆 도랑으로 걸어가라고 해도 그대로 따릅니다.

앞이 캄캄하고 어떻게 살아야 좋을지 모를 때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또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책을 읽으면 길이 보일까요? 피아노를 친다고 뾰족한 수가 있을까요? 장사를 해서 돈을 벌어도 엄청나게 치솟는 물건값을 짐져낼 수 없다면?

피아노를 연주해서 사람들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대로 저마다 자기가 잘하는 일을 하면서 자기를 흐뭇하고 즐겁게 하며 이웃과도 사이좋게 지내면 참 좋을 텐데. 그것은 말로만 쉽고 실제로는 어려운가요? 치고받는 싸움이나 서로 1등을 하려는 다툼보다는 함께 나누고 즐기는 일, 겨루기는 하되 1등을 하려고 무슨 짓이든 다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럼없이 어깨동무를 하면서 겨룰 수 있는 삶터를 만드는 일이란 참으로 힘들까요.

우리 사회는 전쟁 사회입니다. 전쟁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남과 북이 전쟁을 거쳐 갈라져서 갈등을 하고 미국이 세계 여러 나라에 자기네 군대를 들이밀면서 무역권을 얻고 잇속을 챙기면서 군수업으로도 돈을 벌고 다른 나라를 누릅니다. 무기를 만드는데 돈과 품을 들이면 들일수록 우리 사회에서 참다운 일을 하는 `일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그만큼 줄어듭니다. 군사비로 돈을 지나치게 쓰다 보면 교육비로도, 사회복지비로도, 사회기반시설을 짓는 데 쓰는 돈도, 문화사업을 살찌우는 돈도, 과학기술을 발돋움하는 돈도 제대로 쓰지 못합니다.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함께 나누면서 살아가는 데 쓸 돈도 제대로 못 쓰죠.

죽음의 수용소를 눈앞에 두고 울타리 안에 갇혀 있던 사람들. 그 사람들 무리 속에서 어떤 꼬마가 카라멜을 팝니다. 피아니시트 집안 아버지는 꼬마에게 "돈을 벌어서 뭐하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꼬마는 그런 물음에는 대꾸도 않고 `20 즐로티'라는 말만 되풀이합니다. 다들 죽음의 수용소로 끌려가는 판인데도 끝까지 장사를 해서 돈을 벌려는 사람들마저 있는 모습. 참말로 그렇게까지 그곳에서까지 돈을 벌어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하려는 걸까요.

영화 <피아니스트>를 보며 `전쟁'은 무기로 치고받고 죽이고 죽는 전쟁도 있겠지만 지금 우리 삶도 전쟁과 다름없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총을 쏴서 사람을 죽이지만 않지 지금 우리 삶도 전쟁이 아닌가요. 돈에, 집에, 일자리에, 공부에, 정치에, 교통에, 공해에, 환경에...

무엇을 바라보고 어느 곳으로 어떻게 나아가고 있는가요. 마음을 울리고 가슴을 적시는 피아노 음율처럼 우리를 살가이 보듬고 사랑도 믿음도 정도 희망도 나눌 수 있는 일이란, 또 그런 사회로 가꾸어 나가는 길이란 어떤 길일는지.

2.줄거리

피아노 하나를 잘 치지만 다른 일은 잘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는 사람이고 딱히 다른 재주가 있거나 옳은 일에 앞장서서 함께할 만한 힘이 있지도 않습니다. 그저 방송국에서 피아노 하나 잘 치는 솜씨로 사람들 마음을 푸근하게 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은 1930년대 폴란드 국영방송국에서 피아노 연주자로 일을 합니다.

그 피아노 연주자는 오늘도 어제와 다름없이 피아노를 칩니다. 그런데 먼 곳에서 울리던 포소리가 가까이까지 들려옵니다. 방송국에서 일하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내빼기까지 하는데 피아노 연주자는 끝까지 연주를 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자기가 연주하는 곳까지 포가 날라와 건물이 무너지려 하자 그제야 부리나케 자리를 벗어납니다.

제2차세계대전입니다. 독일은 이웃한 폴란드를 치고 들어가서 어렵잖이 차지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독일군을 피해 멀리멀리 짐을 꾸려서 떠나지만 피아노 연주자네 식구는 그대로 머무릅니다. 영국군과 프랑스군이 독일에게 선전포고를 했다고, 자기들에게 희망이 있다고 믿으면서 싸던 짐을 다시 풉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독일군은 폴란드 시내로 들어왔고, 폴란드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고 가진 돈을 내놓아야 했고 유태인을 억누르는 정책에 따라 온갖 괴로움을 겪습니다. `설마 그러려니' 하면서 따르지 않으려고 했으나 어쩔 수 없이 따르게 되고, 같은 유태계 폴란드사람끼리 `독일군 수하 경찰'이 되어 같은 겨레를 괴롭힙니다. 그 틈바구니에서 폴란드 어느 곳에 살고 있던 36만 명이나 되는 유태인들은 집단수용소로 끌려갔고, 거기서 죽지 못해 살아가고 시달리고 죽어가다가 경찰들에게 돈을 먹이거나 어찌어찌 몸만 겨우 빼낸 사람 스물 남짓만 빼고는 모두 가스실로 끌려갑니다.

우리 `피아니스트'는 가스실로 가는 열차에 실리지 않습니다. 피아니스트 동생이 어떤 일로 경찰에 잡혀갔을 때, 술집에서 피아노를 연주해서 받은 돈을 모두 `유태계 독일군 수하 경찰'로 일하는 동무에게 주면서 동생을 겨우 경찰서에서 찾았거든요. 그때 피아니스트가 자기에게 돈을 준 것을 나중에 그 `겨레를 등진 동무'가 다른 이들은 다 죽음의 수용소로 가는데 그 동무 하나만 빼서 살려줍니다.

그런데 우리 피아니스트는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모두 끌려갔고, 남은 사람이라곤 총에 맞고 칼에 맞고 굶어서 죽은 주검만이 널려 있는 거리에서요. `게토'에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높은 담장을 드리웠는데... 먹을 것도 없는데...

며칠 뒤 게토에 남은 사람을 모아서 잡일을 시킵니다. 우리 피아니스트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 그 자리에 남은 사람 가운데는 마지막까지 게토에 살아남은 사람들 안에서 독일군과 맞서려고 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여리고 결단하는 마음이 없는 피아니스트는 반군을 만들어서 맞서려는 동무에게 게토 밖으로 일을 나갔다가 돌아올 때 피아니스트가 지난날 알던 사람에게 수소문해서 자기를 그곳에서 빼내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게토에서 목숨을 걸고 함께 싸우려고 했던 단원은 그런 피아니스트에게 실망하지만 끝내 그 부탁을 들어 줍니다.

피아니스트는 옛 동무에게 도움을 받아 게토가 바로 보이는 건물에서 숨는 삶을 삽니다. 게토 옆 골방에서 숨어 살면서 게토 안에서 단원들이 독일군과 맞서 싸우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그 싸움이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전멸로 끝나 버리고 마는 모습을 가슴을 뜯으며 지켜봅니다. 싸움에 함께하지 못하고 그저 그렇게 도망 다니고 몸만 숨기면서 겨우 살아가는 자신을 돌아보면서 머리를 싸쥡니다.

그런데 게토 옆 골방에 있도록 돕던 이들이 붙잡히고 더는 도움을 줄 수 없게 됩니다. 그리하여 피아니스트는 추운 밤길을 떠돌며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자기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마지막 사람을 찾아갔고, 그곳 사람들이 피아니스트를 다른 골방에서 살게 마련해 줍니다. 그러나 그것도 어떤 사기꾼이 피아니스트를 돕는다며 다른 사람들이 냈다는 기부금을 가로채서 피아니스트는 병에 걸려 움직이지도 못했고, 그러다가도 겨우겨우 목숨만은 붙어서 살아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남아서 창 밖만 바라보는 갇힌 생활을 하며 독일군과 맞서 싸우는 반군, 아니 폴란드 시민군을 봅니다. 그런데 그 시민군은 커다란 독일군과 맞서 싸우기에는 너무 힘이 모자랍니다. 장갑차를 몰고 오고 탱크를 몰고 오며 온 거리 온 건물을 부수고 쓰러뜨리고 불지르는데 당해낼 수 없습니다. 끝내 폴란드 시민군마저 모두 쓰러집니다.

피아니스트는 그곳에서도 겨우 살아남습니다. 그리하여 폐허가 된 게토 안으로 다시 벽을 타고 들어가 그곳에서 그래도 안전하다 싶은 곳을 찾아 입에 풀칠할 먹을거리 하나를 잿더미 속에서 뒤지고 뒤져서 얻은 뒤 다락방에 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숨어 지내던 어느 날, 통조림을 따려고 하는 그 자리에서 독일군 장교가 앞에서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걸 봅니다. 흠칫 놀라며 그대로 얼어붙습니다. 장교는 우리 피아니스트에게 `도대체 여기서 무얼 하느냐'면서 `정체가 뭐냐'가 묻습니다. 총 한 방으로 쉽게 쏘아 죽일 수도 있을 텐데. 피아니스트는 텁수룩한 모습, 꾀죄죄한 차림으로 겨우 입을 열어 "피아노 연주하는 사람"이라고 "유태인이나 이곳 다락방에서 숨어 산다"고 말합니다. 독일군 장교는 그럼 한번 연주해 보라고 옆방에 있는 피아노 앞에 앉힙니다. 피아니스트는 숨어 산 지 여러 해만에, 그러니까 거의 다섯 해만에 처음으로 피아노 앞에 앉아서 건반을 두드립니다. 처음엔 천천히... 그러다가 비로소 건반이 손에 익자 무르익은 연주를 선보입니다.

독일군 장교는 연주에 감동하여 피아니스트가 다락방에서 숨어 살 수 있게 먹을거리를 주고 옷을 줍니다. 그렇게 지낸 지 오래지 않아 러시아군이 폴란드로 들어오고 독일군은 쫓겨납니다. 피아니스트는 기적과 같이 살아남았고, 쫓겨난 폴란드사람들, 수용소에 갇혔던 사람들, 억눌려 지내던 유태인들도 모두 자기 집, 자기 일터, 자기 삶터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피아니스트는 다시 방송국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옛 동료도 다시 만났고 눈물을 글썽이면서 피아노를 연주합니다. 자기 식구들 모두, 자기와 함께 지내던 많은 이웃들 모두 가스실에서 끔찍하게 죽었는데, 겨우 자기 혼자 살아남았는데, 자기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피아노를 연주하는 일뿐인데...

슬픔, 기쁨, 아픔, 즐거움, 평화, 전쟁, 사랑, 죽음, 삶, 믿음, 나눔, 배신, 도움, 부끄러움, 괴로움을 한 올 한 올 자기 건반에 담아서 노래를 들려 줍니다. 그렇게 피아니스트는 죽음의 잿더미 속에서 죽음을 살다가 죽음을 벗어나면서 자기에게 덮쳤던 모든 아픔, 부끄러움, 생채기를 악보에 담아 피아노에 실어 우리에게 들려 줍니다.

덧붙이는 글 | - 감독 : 로만 폴란스키
 - 주연 : 애드리언 브로디, 토마스 크레슈만

2003-01-01 15:15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 감독 : 로만 폴란스키
 - 주연 : 애드리언 브로디, 토마스 크레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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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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