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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것을 밀어내 새로움이 탄생하고

02.12.30 13:07최종업데이트03.01.02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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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는 충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충돌은 에너지이며, 힘의 표출이다. 낡은 것은 그냥 물러서지 않는다. 새로운 것과의 충돌을 통해서, 새로움의 힘을 감지하고 나서야 그 모습을 감춘다 -충돌! 2002 서울독립영화제-

"한자리하기 힘든 영화들이 모여 정말 충돌하였다"
/ 곽기환 기자


방송국에서 전화가 오다

28일 오전 모방송국의 작가와 통화를 했다. 신년특집 프로를 만드는데 취재를 원한다는 전화였다. 뜬금 없는 전화에 경위를 물어보았다. 인터넷 뉴스와 뉴스 게릴라에 대한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뉴스 게릴라의 모습을 담고 싶다는 것이었다.

당황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호기심이 일었다. 하지만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는 문제였기에 연락을 주겠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주변에서 같이 뉴스 게릴라로 활동하시는 분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별로 내키지 않아 했다.

다시 방송국의 작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취재가 곤란할 것 같다고. 작가는 나를 취재하면 안되겠냐고 되물었다. 내가 취재하는 것을 취재하겠다는 이야기였다.

방송에 나갈 화면을 잡기 위해 예정에 없던 제4회 서울독립영화제 폐막식을 취재하기로 했다. 작가는 담당 PD에게 연락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영화제를 담당하시는 기자가 있어서 생각지 않고 있었던 취재였다. 그러나 마침 그 기자는 감기몸살 이라고 했다.

결국 공중파에 대한 유혹을 져버리지 못하고 취재 가겠다고 말했던 것이다. 왠지 무엇인가 팔아먹은 기분이 들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라고 무심결에 불렀던 유년기의 노래가 결코 무심결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스터디 모임에 처음 나가다

절친한 후배가 방송국 기자에 합격했다. 소위 말하는 언론고시에 단 번에 붙어버린 것이다. 선배도 아닌 후배의 합격소식을 접하고 90%의 축하와 10%의 시기심이 일었다. 90%의 시기심과 10%의 축하가 아니냐는 후배의 메일에 뜨금하면서 그 녀석의 노력보다 결과에만 관심을 가지는 내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졸업을 앞두고 진로에 대한 뚜렷한 준비도 없이 대학생활을 허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감도 들었다. 그 후배는 언론사 시험 준비를 권유했다. 하지만 토익 한번 보지 않은 상황에서 요원한 일이었다.

고민 끝에 기자가 되기 위해 다들 공부한다는 것에 대해 최소한의 성의는 보여야 되지 않을까 하는 결론을 내렸다. 어차피 문과이기에 글을 가지고 먹고살려면 그 정도 수양은 쌓아야 하지 않겠나 싶기도 했다. 그리고 언론사 입사 스터디 모임에 가입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지만 모인 목적이 분명했기에 어색하지 않았다. 6명의 스터디 구성원들은 각자 소개를 했다. 처음 스터디 하려는 사람도 있었고 해봤던 사람도 있었다.

내심 기사를 쓰고 있다는 우월감과 더불어 학번과 능력은 비례할 것이라는 얄팍한 자만심이 일었다. 그러나 이내 착각임을 알게 되었다. 불치하문이라 했지만 맘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만들어 갔던 논설문에 빨간줄이 쳐지고 정신없이 지적을 당했지만 그 시선은 객관적이었다. 스터디를 만들어 같이 공부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다시 방송국에서 전화가 오다

촬영팀이 이동하기 곤란하다는 전화를 받았다. 일요일날 다른 취재를 할 수 없겠느냐고 물어왔다. 하지만 예정에 없는 취재를 두 번이나 만들어내긴 어려운 일이었다. 작가의 목소리엔 미안함이 묻어있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하는 것은 바람으로 남겨두고 서울독립영화제 폐막식 현장으로 갔다. 오히려 홀가분했다. 사실 꼭 해야할 숙제였다. 바쁘다는 핑계로 외면하고 있었던 영화제였다. 하지만 그것은 외면이 아니라 일종의 배신이었다. 이번 부산영화제에서 결심했던 작은 영화, 독립영화에 대한 애정의 맹세를 나는 지키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독립영화와 영화제

영화에 대한 어줍잖은 기사를 쓰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독립영화와 영화제에 대하여 눈을 뜨게 되었다. 그것은 새로운 세계였다. 독립영화와 영화제는 세상을 다르게 인식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그만큼의 부담과 거부가 동반되는 일이었다.

내 인식이 편견임을 인정해야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쉽지 않은 일 뒤에는 상쾌함이 숨어있었다. 카타르시스는 비극의 뒤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독립영화와 영화제의 매력이 거기에 있었다.

▲ 2002 서울독립영화제 폐막식
ⓒ 김용운
제4회 서울독립영화제 폐막식

영화배우 방은진씨와 평론가 이효인씨의 사회로 진행된 폐막식은 시종일관 따뜻하고 가족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한국독립단편영화제에서 서울독립영화제로 명칭을 바꾸고 처음 개최된 이번 영화제는 한국독립영화의 현주소를 가늠할 수 있는 자리였다.

국내 유일의 경쟁 영화제로서 총 467편의 출품작 중 42편이 경쟁 부문에 올랐으며 인사동 미로 스페이스와 사간동 서울아트센터에서 12월 20일부터 28일까지 진행되었다.

영화제의 최고상이라 할 수 있는 본상은(상금 1500만원) 송혜진 감독의 <안다고 말하지 마라>가 차지했다. 상 받을 것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송감독은 언질이라도 받았으면 마음의 준비라도 했을 텐데 하며 수상에 대한 놀라워했다.

본상 <안다고 말하지 마라>

▲ 송혜진 감독

우리는 일상의 인간관계에서 서로간의 의견차이를 경험하곤 한다. 그것이 바로 작은 충돌임을 <안다고 말하지 마라>는 말하고 있다. 송혜진 감독의 영상원 졸업작품인 이 작품은 매우 담백하고 소소한 중편이었다. 의례 충돌이라면 서로간의 파국을 의미하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충돌에 대한 편견을 깬 작품이었다. 사촌누이인 장주에게 수학과외를 받으러 안동에서 과천으로 올라온 고등학생 장철은 장주와 사사건건 마찰을 일으킨다. 그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자그마한 충돌들을 통해 서로간의 차이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과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잡아내고 있는 영화였다.

남들보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영화를 좋아하게 되었다던 송혜진 감독은 충무로의 현장에서 일년정도 감을 익힌 다음 차기 작품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자신의 친가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송감독은 실제 사촌동생을 주인공의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수상을 통해 자신의 작업에 힘을 얻었다는 송혜진 감독은 앞으로도 솔직하고 성실하고 진지한 영화를 만들겠다며 환히 웃었다.
/ 김용운
최우수 작품상(CJ상)은 2편으로 박종철 감독의 <장애인 이동권 투쟁 보고서- 버스를 타자!>와 이지선 감독의 <아버지의 노래를 들었네>가 수상하였다. 이들에게는 각각 500만원의 상금이 수여되었다. 부분별 우수작품상으로는 단편 애니메이션 이애림 감독의 <연분>, 중편부분은 채기 감독의 <빛 속의 휴식>, 장편 부분은 홍형숙 감독의 <경계도시>가 수상하였다.

집행위원회 특별상은 총 500만원으로, 이미영 감독의 <먼지 사북을 묻다>와 오점균 감독의 <비가 내린다> 두 작품이 공동 수상했다. 심사위원이 아닌 관객들이 직접 뽑은 관객상은 홍형숙 감독의 <경계도시>에게 돌아갔다.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에 대한 이 작품은 지난 부산영화제때부터 화제가 되었던 영화로 이번 영화제 기간 중 국정원과의 마찰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다시 한번 큰 관심을 받았다.

독불장군상은 한국독립협회 운영위원회에서 주는 상으로 100만원의 상금이 <빛 속의 휴식>에게, 공식적인 수상과는 별도로 영화진흥위원에서 수여하는 해외 자막 프린트를 지원할 세 편의 작품은 박동훈 감독의<사이에 두고>, 원신연 감독의 <자장가>, 김남기 감독의<몸>,이 지원작으로 선정되었다.

본선심사위원이었던 변영주 감독은 참으로 다양한 영화들이 만나는 자리였으며 이런 자리가 아니었으면 같이 할 수 없을지도 모를 영화들이 많았다며 심사위원들간에도 의견 충돌로 인해 심사가 더 어려운 일이었다고 그간의 고충을 밝혔다.

느티나무 까페

제4회 서울독립영화제의 뒷풀이가 안국동 참여연대 2층 느티나무 까페에서 열렸다. 영화제 뒷풀이 자리였지만 이내 독립영화인들의 송년회 자리가 되었다. 한 해동안 각자의 현장에서 영화를 만들어온 독립영화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고 술잔을 부딪혔다. 자원봉사자들 역시 영화제 기간동안 쌓아놓은 추억을 나누며 영화제가 끝난 것을 아쉬워했다.

조영각 집행위원장은 영화제의 안정적 운영에 만족을 표했다. 매번 관객들과의 대화 속에서 느낄 수 있었던 수준 높은 질문에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비록 대중적으로 큰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한해 독립영화의 성과를 확인하고 그 수확을 관객들과 독립영화인들이 어울려 나눌 수 있는 자리였다고 행복해 했다. 내년에 보다 많은 관객들이 찾아올 수 있는 영화제를 만들겠다던 그의 표정은 밝았다.

한국사회에서 독립영화를 만들어 간다는 것. 그들의 영화는 세상과 타협하기보다 세상과의 충돌을 원했다. 그 충돌로 인해 세상은 균열이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균열된 그 틈에서 새롭고 신선한 기운이 생성된다. 그 기운으로 우리는 활력을 얻을 것이다.

그 활력이 때로는 사회에 대한 고민과 인간에 대한 성찰로 변형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프고 괴로울 수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활력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있음으로 해서 사회는 건강해진다는 것이다.

독립영화의 미덕은 그런 건강함에 있었다. 자본과 이익집단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건강함. 그런 건강함이 있기에 충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늦은 시간까지 뒷풀이는 계속 되었다. 자리는 모자랐고 사람들의 정은 넘쳤다.

기사를 쓰면서

5000원정도의 원고료 외에 더 받는 것이 있냐고 방송국 작가는 물어봤다. 어떻게 해서 뉴스 게릴라를 하게 되었는지, 취재 장비는 무엇인지, 기사는 어디서 쓰는지, 이동은 어떻게 하는지 물어보는 작가에게 별로 할 말이 없었다.

뉴스 게릴라를 하는데 구체적인 자격을 요하지는 않았다. 자기가 하고 싶으면 하고 안하고 싶으면 그만인 이 ‘바닥’에서 필요한 것은 오로지 자발성과 자율성이었고 참여의식이었다. 그리고 자기가 속한 환경 속에서 기사를 쓰면 되는 것이었다.

돈을 바라고 한다면 차비도 안나오는 취재를 가지 않을 것이다. 어떤 물질적인 보상보다 그저 스스로 재미와 보람을 느끼기에 하는 일이었다. 예컨대 내 돈 내고 영화를 본 다음 집에 와서 리뷰를 쓰고 인터넷으로 올리면 기사가 되는 것이었다. 가끔 수준미달의 글을 올린다고 항의메일을 보내오시는 분들도 있었다.

명색이 기자인데 그게 기사냐고. 하지만 <오마이뉴스>는 보통사람이‘기자’수준의 글을 써야하는 곳이 아니라 보통사람을 기자로 대우해주는 곳 아니었던가. 물론 기사를 자주 올릴수록 차츰 기사를 올린다는 것에 대해 책임감이 느껴지는 것은 분명했다. 그 과정 속에서 개인적인 성숙을 가져올 수 있다면 그것은 또 온전히 내가 얻어 가는 수확일 것이다.

우리의 충돌은 단순한 부딪힘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의 충돌은 파괴가 아니다. 낡은 것을 밀어내 새로움이 탄생하고, 정체와 관습에서 벗어나려는 역동성과 변화의 움직임을 찾아낼 것이다. 독립영화는 영화적 새로움과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의지와 신선함을 관객들에게 우리 스스로에게 전달할 것이다. -2002 서울독립영화제-

기사를 쓰면서 고민에 빠졌다. 언론에서 쓰는 정형화된 기사의 틀 속에서 독립영화제에 대한 기사를 쓸 것인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의 기사를 작성해볼 것인가. 그런 고민들이 내 안에서 충돌을 일으켰다. 생각을 정리하고자 다시 <오마이뉴스> 사이트의 <오마이뉴스> 소개글을 읽어보았다. 그 중에서 “기사의 공식을 파괴하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이러한 사적인 이야기와 공적인 기사가 혼재된 형태의 기사가 가능한 것인지 아닌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분명 독립영화제의 주제가 나에게 던진 화두였다.

기사라는 틀 속에서 그 틀이 가지고 있었던 답답함과 관습에 실증을 냈으면서도 또 그런 관습적인 기사쓰기를 익히고자 가입한 스터디 모임과 독립영화제 취재에서 느꼈던 것과 기존 언론의 관습에서 독립한 <오마이뉴스>의 방향성은 내 안에서 서로 부딪치고 갈등을 야기했다. 그리고 내 딴에는 그동안 시도해보지 않았던 방식으로 기사 쓰기를 해보았다.

그 결과가 어떤 것일지는 나도 잘 모른다. 그것은 온전히 글을 읽는 독자들의 판단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우리의 충돌은 멈추지 않는 에너지와 새로운 탄생을 의미한다. 다시 한 번 독립영화는 충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2002 서울독립영화제-
2002-12-30 20:07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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