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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신문들이여, 수준 좀 높여라

국내 스포츠신문들의 문제점에 대하여, 그 세번째 글

02.12.30 06:05최종업데이트02.12.30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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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스포츠신문들을 들여다 보노라면 나도 모르게 탄식이 절로 난다. 기사감도 안되는 허접한 개인의 신변잡기들이 보란듯이 지면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모양새가 아둔한 내 머리론 도무지 적응이 안되는 탓이다. 심지어 어떤 것들은 아예 1면 톱으로 선정되어 발광체처럼 찬연한 빛을 내뿜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이들 신문지들이 잘못된 것인지, 헷갈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말해 보자.

12월 28일자 <스포츠투데이> '연예스투'란에 베이비복스의 심은진과 SES의 전 멤버 슈가 각각 "연예인과 첫키스해 봤다"거나 "중 2 때 첫 키스를 했다"고 고백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세상에! 이들이 언제, 어디서, 누구랑, 어떻게 첫 키스를 했는지 그게 나 혹은 우리와 무슨 상관인가? 우리가 시시콜콜하고 잡스러운 그런 것까지 일일이 알아야 하나? 심은진이 뭔데? 슈가 뭔데?

그 옆에 붙어 있는 "조성민이 짐쌌다"는 기사도 황당하긴 매 한가지. 최진실과 불화를 겪고 있는 조성민이 자신이 살고 있던 잠원동 집에서 자신의 옷가지 등을 트렁크에 정리해 들고 나왔다는 내용인데, 이들의 부부싸움을 생중계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젠 한쪽이 짐 싸서 집을 나가는 것까지 녹화방송하나? '트루만쇼' 같은 영화나 유럽식 몰카를 찍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하는 짓거린지 모르겠다.

<스포츠투데이>만 그런 게 아니다. 12월 28일자 <굿데이> 1면 톱을 장식한 기사는 가수 미나가 축구선수 김남일과 사귀고 싶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둘이 지금 사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한쪽에서 '마음이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는 건데, 이런 것을 당당히 1면 톱으로 배치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들일까? 아무리 스포츠신문이 황색지 취급을 받고 있다지만 그래도 명색이 신문인데, 해도 너무 하는 거 아닌가?

가슴을 드러낸 세미누드 사진과 더불어 최근 <색즉시공>이란 영화에 출연한 배우 진재영의 가슴이 '자연산이냐 인공이냐'를 희희덕거리는 기사나, 심은하가 모씨와 사귄다더라 하는 그런 류의 기사는 이제 너무나 흔해서 말하기도 귀찮다. 여자배우의 가슴이 자연산이면 어떻고 성형한 것이면 어떤가? 다 제 멋에 살고 죽는 것을. 또 심은하가 누구를 만나는 것까지 세세하게 보고해야 하나?

▲ (12월 28일자 디지틀 스포츠조선 1면톱을 장식한 오현경 임신기사)
<스포츠조선> 12월 28일자 1면 톱은 더 웃긴다. "오현경 임신 4개월." 탤런트 오현경이 임신 4개월에 접어들었다는 것, 그녀가 엄마가 된다는 그런 기사가 1면 톱을 장식하는 나라가 대한민국 말고 또 있을까. 혹시 내가 모르는 새 대한민국이 '오현경을 위한, 오현경에 의한, 오현경의' 나라로 바뀌고 말았나? 세상 모든 여자가 임신해서 엄마가 되는 건 자연의 순리인데, 오현경이라고 뭐가 다르나? 오현경이 여자가 아니라면 그땐 문제가 달라지겠지만...

그런데 그 다음날 같은 신문에 오현경이 임신하지 않았다는 정반대의 기사가 떡 하니 실렸다. 내용인즉, 오현경이 임신했다는 말은 '행복한' 모습을 보고 주변에서 추측한 헛소문이었다는 것.(오현경, '임신설 와전' 해명, 2002.12.29,13:51)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인가? <스포츠조선> 기자가 확인도 안한 채 사람들의 말만 종합해서 거짓기사를 작성한 것을 편집국에서는 1면톱에 올렸다는 말이 되는데, 정말 "대단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하랴.(읽는 수고를 덜기 위해 나머지 스포츠신문들의 경우는 과감히 생략한다.)

각설하고, 나는 이런 쓰레기 기사들도 나름대로 효용가치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문제는 그릇이다.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담아야 제격이다. 그것을 신문지라는 그릇에 담고 있으니 문제라는 거 아닌가. 신문은 신문다워야 한다. 스포츠신문이 지하철에서 심심풀이 대용으로 소용되고 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러나 그것이 신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한에서 어느 정도 여과장치는 필요하다. 누가 첫 키스를 언제 했고, 누가 짐 싸서 집을 나갔고, 누가 임신 몇 개월입네 하는 등의 천박한 기사로 말초신경만을 다스리기에는 신문에 지불하는 돈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제발 스포츠신문들이여, 수준 좀 높여라.

덧붙이는 글 | #. 하니리포터에도 송고했습니다.

2002-12-30 15:46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 하니리포터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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