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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 끝난후, 난 할 얘기가 많이 생겼다

2002 한일월드컵 관전 소감

02.07.04 17:21최종업데이트02.07.04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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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축구광'이라는 사람들 중에서 나이가 한 사십은 넘었겠다 싶으면 내가 꼭 물어보는 것이 있다. "베켄바워가 뛰는 모습을 보셨나요?"

언젠가 월드컵 결승에서 한쪽 팔에는 깁스를 감은 채 그라운드를 누비며 서독팀을 진두지휘해 우승트로피를 획득했다는 그 전설 같은 이야기. 그 순간을 TV로나마 직접 보았다는 사람만 대면해도 나는 전설이 된 역사적 순간을 함께 한 눈과 몸이라는 경탄과 부러움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농구 얘기만 나오면, 나보다 좀 먼저 NBA에 맛을 들인 친구들에게 꼭 챙겨 묻는 질문이 있다. "마이클 조던이 매직 존슨을 수비하는 장면을 봤니?"

월드컵이건 NBA건 산넘고 바다건너 경기장까지 쫓아다녔던 한국사람이야 하나라도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를 일이지만, 그래서 그 순간 TV화면을 보면서 들이쉬고 내쉬었던 경탄과 한숨이야 베켄바워건 조던이나 존슨이건 알 리가 없겠지만, 그래도 그것은 엄청난 경험이다. 그 드라마와 역사와 전설이 창조되는 순간을 함께 호흡하고 느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마도 스포츠를 느끼고 즐긴다는 것은 '감상'의 차원을 넘어 '공감'하고 '함께 호흡'하는 차원의 문제일 것이다. 그래서 영화나 연극을 보는 것과 달리, '바로 그 순간'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이왕이면 녹화보다 실황을, 그리고 TV보다는 경기장, 그것이 안되면 거리에서라도 지켜보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서장훈이 참 대단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면 92년 농구대잔치 때 상무 팀에 있던 정재근이 서장훈 어깨 넘어로 꽂아넣은 덩크슛 장면을 설명해야 직성이 풀리고, 선동열이 얼마나 위대한 선수였는지에 대해 늘어놓는 사람을 만나면 '그건 그렇지만' 하는 사족을 곁들여 91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데뷔했던 김원형이 맞대결을 벌여 1:0으로 완봉승을 거둔 일도 있었노라고 끼워넣어야만 기분이 개운하다.

월드컵이 끝났다. 아마도 세네갈과 터키와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이 일으켰던 돌풍에 대해, 그리고 호나우두와 올리버 칸이 벌였던 세기의 대결, 그리고 결국 그림처럼 분전하던 칸이 결국은 무너져내려 목을 축이면서 골대에 기대어 앉아 혼자 슬픔을 삭이던 그 비장한 광경에 대해 되풀이 얘기될 이번 월드컵에 대해서는 나도 할 말이 아주 많이 생겼다.

특히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앞으로 지단이나 피구나 비에리의 위대함을 말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이번에야말로 목힘줄 세워가며 끼어들 얘깃거리가 생겼다. 2002년 한국에서는 김남일, 송종국과 이영표, 최진철이 그들을 손바닥 안의 개구리처럼 휘어잡고 농락했었노라고. 그리고 내가, 비록 경기장은 아니었지만 같은 온도와 습도의 공기를 호흡하면서 그 장면을 똑똑히 보아두었노라고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올가을에는 주말마다 축구장과 야구장에서 조그만 전설들이 커가는 현장을 지켜볼 계획입니다.

2002-07-04 17:27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올가을에는 주말마다 축구장과 야구장에서 조그만 전설들이 커가는 현장을 지켜볼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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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관한 여러가지 글을 쓰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맛있는 추억'을 책으로 엮은 <맛있는 추억>(자인)을 비롯해서 청소년용 전기인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80,90년대 프로야구 스타들의 이야기 <야구의 추억>등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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