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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이 시리즈를 시작한 후 독자들에게 듣는 푸념 중 하나가 "왜 할리우드 영화를 '대대적으로' 포장하느냐?"는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를 포장한 적이 없는 기자는 억울할 따름이다. 재미없는 영화는 재미없는 대로 까고, 재미있는 영화는 "꿀꿀할 때 보면 기분이 풀리니 특별한 취미가 없으면 이 영화 보십시오"라고 권한 죄밖에 없다. 단지 한국 영화보다는 할리우드 영화를 볼 기회가 더 많았고 이를 소개하다보니 할리우드 찬양론자 내지 심할 경우 '광신도'로 비쳤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할리우드 영화를 '편식'하다보니 한국 영화들과 자연히 비교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번 주말 북미 흥행 순위에서 1, 2위를 차지한 '주라기 공원3(Jurassic Park III)'와 '만인의 연인(America's Sweethearts, 국내 개봉시 '아메리카 스위트하트'로 명명될 가능성이 높다)'은 한국 영화에는 취약점이 될 요소들을 손에 쥐고 있다.
이미 미국과 동시 개봉되어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주라기 공원 3'는 단지 특수효과의 발전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 관객들이 몰리고 있다. 그러나 백여 년을 축적한 자본이 만든 할리우드의 기술력을 한국의 그것과 비교한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만인의 연인'이 보여준 소재의 개방성은 또 다른 문제다. 한국은 제도적 민주화의 진전에도 불구, 의식의 민주화는 이에 못 미치고 있다. '만인의 연인'은 '영화계의 자아비판'으로 비칠 수 있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고 있다. 이같은 소재를 자유분방하게 다룰 수 있는 풍토가 아직 한국에는 조성되어 있지 않다.
'만인의 연인'이 들여다본 할리우드의 이면은 생각만큼 추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인간적이지도 못한 곳이다. 우선, 함께 공연한 9편 중 6편을 1억달러 이상의 블록버스터로 만든 스타 커플 에디 토머스(존 쿠색)와 그웬 해리슨(캐서린 제타-존스)이 있다. 이들은 18개월 전 8600만 달러를 들인 SF대작 'Time Over Time' 촬영 중 그웬이 라틴계 조연배우 헥터(행크 아자리아)와 바람이 나는 바람에 파경에 이르고 만다. 에디는 평정을 찾기 위해 명상수련원에 들어가고, 헥터와 결합한 그웬은 이후 출연작들이 번번이 흥행에 실패한다.
에디-그웬 커플의 마지막 공연작을 만든 영화사 사장 데이브 킹먼(스탠리 투치)은 개봉을 앞두고 이들을 재결합시켜 언론의 주목을 끈 후 대박을 터뜨리려고 한다. 심지어 "언론 대상 시사회날 에디가 돌연 자살을 하면 흥행에 도움이 될 텐데..."라는 썰렁한 농담도 마다하지 않는다.
개성파 감독 할 와이드먼(크리스토퍼 월킨)은 편집이 완료되지 않은 영화를 인질로 삼아 "영화가 스타 커플이 참석한 가운데 라스베가스에서의 대대적인 기자회견을 통해 세상에 알려져야 한다"고 고집을 피운다. 그는 결국 영화 막바지에 일을 저지르고 만다.
'라스베가스 시사회 성사시 복직'을 약속받은 홍보책임자 리 필립스(빌리 크리스털)는 스타 커플을 재결합시키기 위해 갖은 말을 늘어놔야 한다. 심지어 야밤에 에디가 당한 불상사조차 홍보에 이용하려고 애를 쓴다. 여기에 커플의 재결합 가능성에 촉각을 세우고 라스베가스까지 달려온 헥터와 그웬의 개인사를 일일이 돌봐주는 매니저 키키(줄리아 로버츠)가 있다.
브루스 윌리스와 데미 무어, 데니스 퀘이드와 멕 라이언, 탐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 등이 줄줄이 이혼한 마당에 파경한 스타 커플의 사생활은 분명 대중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소재이다. 문제는 이 민감한 얘깃거리를 어떻게 포장하느냐이다. 할리우드 풍자극은 역사도 오래 된 만큼 언론과 물주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책도 능숙해졌다. 1941년 언론 재벌 허스트를 비꼰 '시민 케인'은 무참하게 무너지고 말았지만, 11년 후 만들어진 '사랑은 비를 타고'는 가벼운 터치의 뮤지컬 코미디로 위장, 예봉을 용케 피해냈다.
조연에 제작, 각본까지 맡은 빌리 크리스털은 이 작품을 위해 아카데미상 시상식 사회까지 마다할 정도로 공을 들였다. 공동 각본을 맡은 크리스털과 피터 톨란은 "웃자고 하는 얘기니 노여움을 푸시라"고 하면서도 '변방의 관계자'인 언론까지 건드리는 모험을 감행한다. TV 토크쇼 '래리 킹 라이브'에 출연했다가 시청자들로부터 힐난을 받은 그웬은 "래리 킹이 미워죽겠다"고 이를 갈다가도 방송국 스탭이 다가오자 표정을 싹 바꾼다. 이 세상에서 언론이 가장 무섭다는 푸념은 한국 정치인들만의 전유물은 아닌 것 같다.
영화 중 그웬-에디 커플의 인터뷰때 심각한 표정을 던지던 한 기자는 사석에서는 에디에게 "당신 연기를 좋아합니다"라고 비굴한 표정을 짓는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인터뷰 장면에 나온 기자들의 일부는 배우가 아니라 현역 기자들이라는 사실이다. 이들이 영화에 대해 어떻게 썼을지가 자못 궁금하다. 물론, 영화와 언론의 관계가 주요한 대립축이 아니지만, 글을 쓰는 기자 입장에서는 "실제로는 좋은 영화지만, 기대에는 못 미친다"는 투로 얼마든지 비꼬아 보복이 가능할 듯싶다.
줄리아 로버츠와 존 쿠색, 캐서린 제타-존스의 3각 관계와 빌리 크리스털, 행크 아자리아, 스탠리 투치 등 조역들의 재기 넘치는 연기는 무거운 소재가 주는 긴장감을 누그러뜨린다. 그렇다고 영화가 '역사에 남을 할리우드 풍자극'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단지 "이런 소재도 다뤄질 만큼 할리우드는 관용이 있구나"하는 인상을 줄 정도. 또는 "이런 소재도 허용할 만큼 할리우드의 제작자들은 돈에 굶주려있구나"하는 비판도 가능하다.
2년전 '노팅 힐'에서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는 스타를 연기한 로버츠는 '만인의 연인'에서는 거꾸로 스포트라이트에서 빗겨난 '미운 오리 새끼'를 연기한다. 홍보 과정에서 그녀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은 것이 흥행에 장애를 줄지는 미지수이지만, 현재로서는 '연기력과 스타 파워를 두루 갖춘 최고의 여배우'라는 평가에 이견을 달기 힘들 것 같다.
마이클 더글라스와 결혼한 이후 몸매가 불어난 것으로 보이는 제타-존스는 자신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고 최근작 '트래픽' 등에서 쟁쟁한 배우들 속에 은신하는 현명함을 보인다. 그녀는 적어도 영화 속의 그웬보다는 배우로서 장수할 것으로 보인다.
46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인 '만인의 연인'은 이번 주 3100만 달러의 수입으로 2위로 데뷔했다. 최근 2년간 로맨틱 코미디로는 역시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런어웨이 브라이드(3510만 달러)'와 멜 깁슨의 '왓 위민 원트(3360만 달러)'에 이은 좋은 성적이지만, 샘 닐이 주연으로 복귀한 '주라기 공원 3'(5030만 달러)에 1위를 내줬다.
지난 18일 일찌감치 개봉한 '주라기 공원 3'은 5일간 809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2편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1편의 개봉수입(5020만 달러)에 버금가는 좋은 성적. 9200만 달러의 제작비는 조만간 추월할 것으로 보인다. '엑스맨'(5450만 달러)과 '맨 인 블랙(5110만 달러)'에 이어 역대 7월 개봉작 중 세번째로 높은 개봉수입을 기록한 '주라기 공원 3'은 이로써 4편 제작이 확실시되지만, 다음주 또 다른 SF 대작 '혹성탈출(Planet of the Apes)'의 강력한 도전을 받게 된다.
리즈 위더스푼이 주연한 '리걸리 블론드'는 '만인의 연인' 개봉으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무려 46%나 관객이 빠지며 1110만 달러로 3위. 그러나 초반 흥행 호조로 제작비(1800만 달러)의 4배인 약 7천만 달러의 총수입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10위권에서 밀려난 '슈렉'은 지난 한 주 동안 수입을 꾸준히 올려 '배트맨(2억5120만 달러)'을 누르고 '조스(2억6천만 달러)'에 이어 역대 15위의 흥행작으로 기록됐다. 탑 10 영화들은 작년 '왓 라이즈 비니스(2970만 달러)'와 재작년 '혼팅(3340만 달러)'가 각각 1위로 올라선 시기에 비해 각각 5%, 22%의 흥행 신장을 보였다.
다음은 이번 주 박스 오피스 순위. ( )는 지난 주 순위, +는 데뷔작.
1 (+) Jurassic Park III .................. $50.3 million
2 (+) America's Sweethearts .............. $31.0 million
3 (1) Legally Blonde ..................... $11.1 million
4 (2) The Score .......................... $10.8 million
5 (3) Cats & Dogs ........................ $ 6.8 million
6 (6) The Fast and the Furious ........... $ 5.3 million
7 (5) Scary Movie 2 ...................... $ 4.4 million
7 (7) Dr. Dolittle 2 ..................... $ 4.4 million
9 (4) Final Fantasy: The Spirits Within .. $ 3.5 million
10(8) Kiss of the Dragon ................. $ 2.9 million
덧붙이는 글 | 영화관에서 영화를 직접 보는 묘미 중의 하나가 예고편을 보는 것이죠. 이번 주 극장에는 '스파이더 맨'과 '알리'가 선보였습니다. 알리는 그렇다치고, 내년 5월에 개봉할 '스파이더맨' 예고편을 무려 10달 앞서 띄우는 것에는 두 손 들었습니다. '스파이더맨'은 트레일러라기 보다는 티저에 가까왔습니다. 강도들이 은행을 털고 헬기로 유유히 도주하다가 건물 사이의 거미줄에 걸려 꼼짝못한다는 설정...
'알리'는 트레일러만 보고 얘기하기는 그렇지만, 마이클만의 영화라기보다는 스파이크 리의 '맬컴 X'를 떠올리게 합니다. 빼빼한 몸의 윌 스미스는 떠벌이 알리 역으로 일단 합격점을 받은 듯. 크리스마스에 개봉됩니다.
다음주는 설명이 필요 없는 '혹성탈출'입니다. 혹성이 일본식 조어라는 지적이 있었는데, 워낙 전작의 타이틀이 강렬한 인상을 줘서인 폭스 코리아가 '행성'이 아닌 '혹성'으로 갈 모양입니다. 어쩔 수 없죠...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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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7-23 1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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