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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만', 하늘에서 찍은 '타이타닉'

<박스오피스 리포트> 5월 넷째주

01.05.29 08:00최종업데이트01.06.0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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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국민감독'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임권택 감독. 그러나 임감독의 94년작 '태백산맥'은 그의 대표적인 실패작으로 꼽히고 있다. '태백산맥'이 지자 '서편제'의 영광도 한때 평가절하됐다. 임감독은 "이데올로기 문제로 고민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재해석하고 싶었다"고 변명했지만 "영화가 조정래의 원작소설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당연한 지적'부터 "역사 의식이 없다(좌파)", "공산주의자들을 인간적으로 그렸다(우파)"는 각양각색의 비판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결정타는 역시 "졸려 죽겠다" 아니었을까? '진주만(Pearl Harbor)'의 감독 마이클 베이가 영화를 내놓으면서 고민했던 것도 영화에 어떤 메시지를 담는 것보다는 얼마나 많은 관객들을 불러내느냐였을 것이다. 베이 감독은 이미 2년 전 '지구를 지켜내는 미국인'들을 영웅적으로 그려낸 '아마겟돈'을 통해 멋진 '불꽃놀이'를 선보인 바 있다. 이제 문제는 '진주만의 불꽃놀이'가 높아질 대로 높아진 관객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느냐이다.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쏟아붓는 헐리웃 최신작들에 익숙해진 필자에게는 적어도 '아니올시다'였다.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에 대한 비판은 그 다음 문제다. 2시간 동안 미국 군함 21척과 항공기 188대가 파괴되고, 2409명의 미군이 전사했다는 '진주만 공습'의 장관은 영화 시작 후 1시간 20분이 지나서야 시작된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려낸, 일본군의 폭탄을 줄곧 좇아가는 폭격 신 등 기술적인 진전에도 불구, 공습 신은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PG-13 등급을 얻기 위한 고육책인지는 몰라도 40여 분간의 공습 장면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펼쳐진 초반 20분 노르망디 상륙 작전의 '재현'에 비하지 못했다. '라이언 일병'의 총탄 소리를 들었을 때는 "독일군의 총탄이 적어도 나를 비켜가지 않을 수 있다"는 감정이입과 함께 "그나마 편하게 군 생활했구나"하는 남모를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독일군이 정말로 악의 화신이었는가'라는 질문을 하기에는 영화가 내 혼을 빼놓았다는 것이 적절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진주만'의 총탄은 주인공 레이프(벤 애플렉)와 대니(조시 하트넷)은 물론 주연배우들과 근거리를 유지하는 조연들의 곁을 용케도 피해간다. 주인공들이 공습 중에 비행장으로 스포츠카를 몰고 갈 때 일본군 폭격기는 '능숙하게' 차창에만 총탄을 퍼붓고 간다. 일본 폭격기 조종사는 민간인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위협사격만을 가한다는 황군의 교전수칙을 지키려고 했던 것일까? '스크림'에서 제시됐던 "뭉쳐 다녀야 산다"는 공식을 전쟁영화에도 적용할 수 있음을 입증하려고 했을까?
▲ 극장내부에 걸린 '진주만'의 홍보 포스터. 2차대전 당시의 징집 포스터들을 패러디했다. 영화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미국이 이후 일치단결, 전쟁에서 승리하고 세계 초강대국으로 발돋움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 Touchstone

레이프와 대니가 뒤늦게 출격해 일본군 전투기에 맞서 분전하는 공중전 장면 역시 전장의 긴박감보다는 컴퓨터 게임의 가벼움으로 다가온다. 이래서야 어디 전쟁의 참상을 고발해서 역으로 평화의 메시지를 강렬히 제시하는 전쟁영화의 본령을 유지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미군 승무원들이 침몰하는 군함에 애처롭게 매달리다가 바다 속에서 허우적대는 참상도 영화 '타이타닉'을 본 사람에게는 이미 익숙해진 장면. 심하게 말하면, '타이타닉' 수십 대가 침몰하는 모습을 공중에서 촬영했다고 해도 될까? 영화 '타이타닉'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스펙터클한 장면을 다뤘기 때문에 어중간한 스펙터클로는 관객들의 기대치를 따라잡기 힘들게 됐다. 앞으로 헐리웃의 영화 제작자들은 이같은 '타이타닉 효과'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큰코다칠 날이 올 듯싶다. (헐리웃은 이른바 '크기'로 승부를 건 '고질라'의 실패로 교훈을 톡톡히 맛보지 않았던가?) '불꽃놀이'의 감흥이 밋밋하다 보니 '불꽃놀이' 전후의 스토리에 대한 비판이 강도를 더하게 된다. 여주인공 에벌린(케이트 베킨세일)은 뉴욕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동료들에게 "신체검사를 하다 우연히 만난 레이프와 사랑에 빠지게 된 사연"을 공개한다. 그러나 영국으로 전출을 앞둔 중위와 간호원이 단 하루만에 사랑에 빠지고 헤어진 후에도 서로 몹시 그리워한다는 설정은 너무나 작위적이다. 친구의 애인인 에벌린을 사랑하게 된 대니는 그녀와 함께 하와이 주둔 태평양 함대로 파견온 후에도 속내를 드러내지 못한다. 그러다가 레이프의 '죽음'을 계기로 둘은 가까워져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게 된다. 이제 관객들은 레이프가 정말로 죽었는지에 궁금해하기보다는 언제쯤 그가 나타나서 새로운 갈등을 일으킬 지를 기다리게 된다. 운명의 공습이 있기 전날 밤, 레이프는 멀쩡한 모습으로 에벌린이 근무하던 병원을 찾아오고, 대니의 '배신'을 알게된 레이프는 술집에서 대니와 주먹다짐을 벌인다. 어설픈 플레이보이의 모습으로 에벌린에게 접근하는 레이프의 모습에 호감을 느꼈던 사람들도 술집 난동후 레이프가 대니와 '함께' 도주하는 장면에서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공습이 닥치자 둘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힘을 합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기 위해 밤새 그들을 같이 있도록 해 갈등을 줄이는 것이 스토리 전개상 설득력이 있겠지만, 그같은 억지 설정이 3인의 사랑 이야기를 더욱 비현실적으로 만든다. 진주만 공습으로 미 태평양 함대가 상당한 타격을 입었음에도, 미국의 '앵글로 색슨계 백인들'은 이를 계기로 단합하게 된다. 영화 내용을 기필코 확인하고 싶어하는 독자들을 위해 영화 후반부의 이야기는 상당부분 물음표로 남겨둔다. 한 가지, 레이프와 대니는 이듬해 4월18일 두리틀 대령(알렉 볼드윈)이 지휘한 어느 중대한 임무를 맡게 된다. 그러나 어려운 임무를 마치고 무사 귀환할 것으로 보였던 주인공들은 한 순간에 운명이 뒤바뀌고, 영화는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국은 더욱 더 강해졌다"는 에벌린의 나레이션에 이어 비행기로 하늘을 함께 누비는 부자의 다정한 모습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 영화 '진주만'중 미군 전함이 침몰하는 장면. 유람선이 전함으로 바뀌었을 뿐, '타이타닉'과 다른 게 무엇이란 말인가?
ⓒ Touchstone

'진주만'은 같은 주제의 '토라! 토라! 토라!'(1970)와의 비교를 의식한 흔적들이 군데군데 엿보인다. 미일합작영화였던 '토라'는 일본 도에이 사가 제작에 참여했음인지 일본 야마모토 제독의 취임식으로부터 시작,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 원인과 준비 과정, 일본의 선전 포고문이 늦게 전달된 과정 등의 역사적 사실들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반대로 '진주만'은 '토라'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현장 사람들의 모습'에 포커스를 맞춘 듯 싶다. 그러나 어설픈 러브스토리가 중심축이 되기에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도 가볍게 처리되었다는 아쉬움을 준다. 비중있는 활약이 기대됐던 쿠바 구딩 주니어. 구딩 주니어가 연기한 도리스 밀러는 공습중 2대의 일본 폭격기를 격추시킨 공으로 미국 역사상 최초로 무공훈장을 받은 흑인이다. 장교들의 심부름이나 하던 흑인이 인종적 편견을 딛고 전공을 세우는 과정에도 무게를 실었다면 '엉터리 러브 스토리'를 보며 실소를 터뜨리지 않았을 것이다. CF 감독 출신의 마이클 베이에게 '매그놀리아'의 폴 토머스 앤더슨 같은 이야기꾼이 되어달라는 것은 무리일까? 또 하나. 영화를 본 하와이 거주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지적처럼 하와이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했던 아시아계는 일본군 첩자나 부상병에게 멸시 당하는 의사, 지나가는 행인1 정도로만 처리된 것도 이 영화가 '미국의 영화'가 아닌, '미국 백인들의 영화'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만든다. 이래서야 어디 초강대국 미국에 대한 우려와 질시를 누그러뜨리고, "NMD는 몇몇 깡패국가를 겨냥한 것"이라는 선전이 먹히겠는가? ('진주만'이 '흥행 성패와 상관없이 미국인들의 애국심을 부추키기 위한 프로젝트'라는 그럴듯한 음모이론이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을 지배하는 앵글로색슨 백인들이 일본계 미국인을 다른 아시아계 미국인들과 구분하지 않는 현실을 생각하면, 북미 최대의 아시아계 민권단체인 '일본계 미국시민연맹(JACL)'이 "영화가 백인들의 반아시아 감정을 부추길 수 있다"고 성명을 발표한 것이 '강 건너 불'로 비치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인들을 두둔하기에는 그들이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그리고 한국 강점 기간 동안 같은 아시아 국가들에 저지른 만행들을 눈감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래저래 진퇴양난. '미개한 아시아인들'을 이끌려던 일본 군국주의에 동조, 침몰하는 미군 전함에 환호할 수도, 그렇다고 사상 최초로 적들, 그것도 '미개한 황인종들'에게 본토를 유린당한 것에 부득부득 이를 가는 앵글로색슨 백인들과 함께 눈시울을 적실 수 없는 한국인들의 선택은 단 하나뿐.
▲ 영화 '진주만'중 일본군 폭격기에 기관총 사격을 가하는 도리스 밀러(쿠바 구딩 주니어). 구딩 주니어가 주연한 도리스 밀러는 실존 인물로, 공습에서 살아남은 후 다른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실존인물이다. 가공 인물들의 러브스토리에 묻혀 역할이 축소됐다.
ⓒ Touchstone

"내용도 없이 길기도 더럽게 기네. 나중에 스트레스 쌓일 때, 비디오로나 한번 더 봐야겠다!" 당대의 흥행작 '주라기 공원'의 감독 스필버그는 속편을 제작하던 중 전세계의 수많은 어린이들로부터 "공룡을 좀 빨리 보여달라"는 전자우편을 받았다. 이같은 요청에도 불구, 스필버그 감독은 무슨 '심술'인지 속편 '주라기 공원2: 잃어버린 세계'에서 1편(시작후 20분)보다 더욱 느린 22분 40여초만에야 공룡을 보여줬다. 스필버그는 이후 3편의 메거폰을 '쥬만지'의 조 존스턴에게 맡기고, 이후에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A.I(인공지능)'처럼 흥행과 작품성을 두루 갖춘 영화들의 제작에 전념하게 된다. 스필버그 사단의 수제자였던 로버트 제미키스는 또 어떤가? '백투더 퓨처' 시리즈로 처음 이름을 날린 이 감독은 '포레스트 검프'와 '컨택트'를 거쳐 '왓 라이즈 비니스'와 '캐스트 어웨이'로 이야기꾼의 재능을 보여줬다. 마이클 베이 역시 스필버그나 제미키스 같은 '이미지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짧은 경력에 대작 영화를 연출했던 스타 감독은 유려한 영상미를 펼치는 이야기꾼에서 묵직한 주제를 솜씨 있게 다루는 작가로의 변신이 요구되고 있다. 영화 '진주만'은 평단의 혹평에도 불구, 영화의 완성도(솔직히 얘기해서 공습 장면)를 직접 확인하려는 인파들에 힘입어 전몰장병 기념일 연휴 동안 7510만 달러의 흥행 수입을 올렸다. 일부에서는 4일 연휴 동안 경쟁작이 없는 상황에서 9천만달러에서 1억달러의 흥행 수입도 가능하다는 전망을 내렸지만, 3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을 감안하면, 애초부터 무리한 전망이었다. 1년 중 최고 성수기인 4일 대목동안 '주라기 공원2'(9010만 달러)를 제외한 최대의 흥행수입. 2시간 반 이상의 대작으로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3060만 달러)의 흥행 기록 갱신. 3214개의 스크린을 잡고도 극장당 수입은 경이적인 23358달러. 기대에 못 미치는 흥행이라는 일부의 진단 속에 디즈니는 속으로 웃고 있다. 2위로 밀려났지만, 드림웍스의 '슈렉'은 이번 주 보이지 않는 승리를 거뒀다. 관객들의 입소문과 호평에 힘입어 극장 수를 늘린 가운데 5400만 달러의 수입으로 전주보다 무려 28%의 수입 증가를 기록했다. '진주만'이 마케팅에서 조금만 방심했어도 '슈렉'에게 일격을 먹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2주만에 총수입 1억1100만 달러로 종전 드림웍스사의 최고 흥행기록을 가지고 있던 '치킨 런'(1억700만 달러)을 가볍게 넘어섰다. 여름 흥행 전쟁의 신호탄을 올린 '미이라2'도 1910만 달러의 수입을 올리며 1억7천만달러의 총수입을 기록, 전편의 기록(155만 달러)을 넘어섰다. 아직 여름 시즌이 본격화되지 않은 가운데 5월 개봉작 5편중 상기 3편이 모두 총수입 2억달러를 넘을 것으로 예상돼 헐리웃은 올해 최고의 수입을 거둘 것이라는 장미빛 전망이 나오고 있다. 참고로, 작년 한해를 통틀어 총수입 2억달러를 넘긴 작품들은 '미션 임파서블 2', '그린치', '캐스트 어웨이'였다. 다음은 이번 주 박스 오피스 순위. ( )은 지난 주 순위, +는 데뷔작. 1 (+) Pearl Harbor ............ $75.1 million 2 (1) Shrek ................... $54.2 million 3 (2) The Mummy Returns ....... $19.1 million 4 (3) A Knight's Tale ......... $ 9.3 million 5 (4) Angel Eyes .............. $ 6.3 million 6 (5) Bridget Jones's Diary ... $ 4.0 million 7 (6) Along Came A Spider ..... $ 2.2 million 8(10) Memento ................. $ 1.9 million 9 (8) Blow .................... $ 1.3 million 10 (7) Driven .................. $ 1.2 mill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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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관의 <박스 오피스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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