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장이모의 <집으로 가는 길>

시간의 길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는 사랑이야기

00.10.16 10:25최종업데이트00.10.16 11:36
원고료로 응원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에서 겁 없이 무술을 휘두르며 강호를 갖으려 했던 장쯔이가 이번 장이모 감독의 '집으로 가는 길'에서는 동네에서 제일 베틀질을 잘하는 숫기 없는 시골처녀로 변신했다.

이 영화의 화자인 루오 유셍은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눈보라가 치는 어느 날 밤, 좁게 난 길을 따라 달려오는 차를 몰고 온다. 그러나 장례식 절차가 순조롭지 못하다. 친척들의 생각과는 달리 어머니가 아버지와 함께 마지막 길을 걸을 수 있는 재래식 장례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들 루오 유셍은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한다. 죽은 남편의 수의는 직접 만들어야 한다며 베틀 앞에 앉은 어머니를 감독은 뒤에서 지그시 바라본다.

주름진 어머니는 붉은 낙엽이 꽃보다 만개한 가을. 시골에 부임해온 20세의 선생님에게 한눈에 반하는 '쟈오 디'로 변한다. 디는 가부장적인 그 시대에 - 남자가 학교를 짓는데 부정 탄다고 여자는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할 정도 - 사랑을 표현하고자 너무나 애쓴다. 머리를 양 갈래로 땋아 폴짝 폴짝 뛰며 힐끗 힐끗 선생을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의 사랑스럽기만 하다.

공밥(중국요리 이름)을 항상 똑같은 그릇에 놓고 자신의 것으로 알아주길 바라며 멀리서 지켜본다. 그런가 하면 그가 지나가는 길에 우연히라도 마주치게 되길 바라며 늘상 기다리는 그 수줍은 디의 마음은 신달자의 '백치애인'과도 닮아 있다. "별볼일 없이 우연히, 정말이지 우연히 저를 만나게 될까봐서 길거리의 한 모퉁이를 지켜서 있는지를 그는 모른다. 제 단골 다방에서 다방문이 열릴 때마다 불길같은 애수의 눈을 쏟고 있는지를 그는 모른다."

그러나 너무나 무심했던 백치애인과는 달리 20살의 병아리 교사는 디의 마음을 알아차린다. 그러나 디의 어머니는 자라난 환경이 다른 사람하고는 안된다며 디의 마음이 더 커질 것을 염려한다. 그러나 디의 마음은 이미 말릴 수 없는 상태다. 그리고 그 선생의 마음도. 그러나 저녁을 먹으러 오겠다던 선생은 디에게 빨간 머리 핀과 음력 12월이 가기 전에 돌아오겠다는 말 한마디 남기고는 떠나버린다.

언덕받이를 계속 오르내리며 선생을 쫓는 디의 모습은 애절하기만 하다. 설상가상으로 사랑의 정표인 머리 핀까지 잃어버린다. 며칠동안 얼마나 찾았을까? 계속 핀만을 찾던 디는 집 울타리에서 삐죽 튀어나온 핀을 찾는다. 그리고 선생이 없는 학교를 예쁘게 꾸민다. 그 모습을 본 마을 이장은 디의 마음을 알아챈다. 디는 언제올지 모르지만 그가 돌아올 길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기다린다.

그것은 시간과 날씨에 상관없다. 겨울 날 어김없이 그 길에서 선생을 기다리던 디는 이내 쓰러지고 만다. 그러나 가까스로 깨어나도 도시로 가서 선생을 찾겠다고 길을 나선다. 그러나 다시 쓰러지고 만다. 그리고 깨어 보니 봄이고 선생이 돌아왔다.

'집으로 가는 길'은 헤어짐의 길이다. 그리고 다시 만남의 길이다. 죽은 아버지는 세상을 떴지만 어머니는 다시 처음 18세 그 시절 그 길에서 아버지와 다시 재회하고 싶은 것이다. 아들은 서둘러 돈을 마련하고 사람들을 불러모은다. 아버지의 관은 당신이 평생을 가르친 제자와 마을 사람들에 의해 그 길을 다시 걷는다. 혼자 남은 어머니. 당신이 평생을 들여 모은 돈을 이번에는 학교 증축에 내놓는다. 그리고 그 새로 지은 학교에는 예전에도 그랬듯이 자신이 짠 빨간 천을 걸어놓겠다고 약속한다.

장이모의 <집으로 가는 길>에는 고집이 묻어난다. 그것은 어머니를 통해서일 수도 있겠고, 극중 화자인 아들의 모습에서도 그렇다. 시골 마을의 유일한 선생이었던 아버지가 죽고 없자, 아들이 어머니를 위해, 그리고 아버지를 위해 일일교사를 자청한다. 세월만큼 이나 야윈 학교에서 아이들의 책 읽는 소리가 들린다. 몇 십년 전 그 소리를 듣고 학교로 달려나온 갈래 머리 18세의 디가 이제는 노모의 모습으로 틀어 올린 머리를 하고 학교로 나온다.

이 영화는 시간에 관한 영화다. 그리고 그것은 길로 형상화되어 있다. 그 길에는 노모와 죽은 선생, 그리고 18세의 갈래머리 소녀와 20세의 선생이 공존하며 추억한다. 그리고 그리움을 간직한 채 집으로 향한다.

초겨울 따뜻한 감동을 전해줄 이 영화는 11월 개봉예정이다.
2000-10-16 10:27 ⓒ 2007 OhmyNews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