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랜드 오브 마인'
싸이더스
전쟁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가끔 사람들과 그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다행히 집근처의 지하철이 서울시에서 가장 깊은 곳이라 그 곳으로 대피하면 된다는 사람, 도로가 막혀있을 테니 자전거로 탈출을 감행하겠다는 사람, 차라리 산으로 올라가 동굴 같은 곳에 숨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사람 등등. 공통점은 대부분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인데 나의 대답은 다르다. 보통 나는 가족들에게 전화해 작별인사를 나누고 사둔 술중 가장 비싼 것을 마시고 취해 잠든 뒤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겠다고 말한다. 대량살상 무기가 동원되는 현대전에서 과연 살아남는 게 가능은 할까 싶어서다. 차라리 최대한 고통 없이 죽음이 다가오는지 인지하지도 못한 채 사라지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 아닐까.
또 다른 이유는 전쟁 이후의 세상을 마주할 자신이 차마 없기 때문이다. 국토의 대부분이 파괴된 나라에서 이전과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좁은 땅덩어리에 오밀조밀 지어둔 원자력 발전소가 과연 전쟁통 속에서 무사할 수 있을까. 내 생각에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더 두려운 것은 바로 사람이다. 전쟁은 사람의 목숨만 빼앗는 것이 아니라 인간성까지 파괴한다. 간접적으로나마 그 영향이 전후 세대에까지 이어져 올 만큼 힘은 막강하다. 듣자하니 한 보수 성향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이런 말도 나왔다고 한다. '전쟁을 대비해 비상용품을 챙겨둘 필요가 없다, 그냥 밖에 나가서 여자들이 준비해 둔 것을 뺏으면 된다'. 전쟁이 나기 전에도 이 모양인데 이후는 어떨까. 나는 이런 정서가 보편이 된 사회에서 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