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건국전쟁'은 전날 5만1천여명(매출액 점유율 22.4%)의 관객을 동원해 박스오피스 2위에 올랐다.
연합뉴스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대한민국의 건국과 이승만 대통령의 역사.'
지난 1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의 부제다. 제목만 보고도 10여 년 만에 <백년전쟁>을 반박하는 작품이 나왔다는 생각에 내심 기뻤다. 사건이든 인물이든 역사적 평가가 긍정 또는 부정 일색일 수는 없다.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인정하고 성찰하는 게 후세의 몫이자 역사교육의 역할이라고 확신해온 터다.
그러나 헛된 기대였다. <백년전쟁>이 지금껏 알지 못했던 내용을 드러내 충격을 주었다면, <건국전쟁>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 충격을 주었다. 아무런 근거도, 전후 맥락도 없이 '국뽕' 수준의 영상과 음악을 활용해 감성적으로 화면을 가득 채웠다. 숫제 '이승만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라는 식이다.
"공은 '자신 덕', 과는 '남 탓'이라는 거잖아요."
영화를 함께 본 아이들의 한 줄 평이다. 노골적으로 이승만을 두둔하는 영화치곤 내용이 너무 허술하다며, 되레 그의 업적이 변변찮다는 방증 아니겠냐고 말했다.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게 아니라, '학교에서 배운 걸 통째로 부정하는' 영화라고 명토 박았다.
아이들 말마따나, 딱히 새로운 내용은 없다. 4.19 혁명과 6.25 전쟁, 3.1 운동 등 우리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장면마다 이승만의 업적을 부각시키기 위해 상세한 내레이션을 입혔는데, 우리 현대사를 조금이라도 공부한 이들이라면 궤변투성이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 등장하는 인터뷰이들의 적실성과 학문적 전문성도 부족하다는 느낌이 역력하다.
100분의 러닝타임 중에 10분가량을 할애한 해방 후 토지개혁 관련 내용이 대표적이다. 토지개혁을 통해 산업 기반이 마련됐고 기적적인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실제로 친일 지주들의 거센 반대를 무릅쓴 토지개혁은 이승만 정부의 정통성을 확보하는 데에 일등 공신이었다.
그러나 은근슬쩍 지워버린 사실이 있다. 1949년 이른바 '농지개혁법'의 제정을 이승만의 공적으로 추앙하기엔 어색한 구석이 많다. 이승만 정부의 초대 농림부 장관이었던 조봉암의 역할이 지대했던 까닭이다. 또한, 농민들의 열망에 따라 1946년 3월 38도선 이북 지역에서 전격 시행된 토지개혁에 대한 미군정의 대응 성격도 뚜렷했다.
그토록 강조한 토지개혁의 공로자인 조봉암은 4.19 혁명을 한 해 앞둔 1959년 이승만에 의해 '사법 살인'을 당했다. 평화 통일을 주장하는 등 이적행위를 했다는 죄목이었지만, 실제로는 1956년 3대 대통령 선거 때 혁신계 후보로 출마해 상당한 득표율을 기록했다는 점이 직접적인 이유였다. 민주당 신익희 후보가 갑작스럽게 사망했던 바로 그 선거다.
백 보 양보해서, 각료의 성취이니만큼 대통령 이승만의 공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4.19 혁명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3.15 부정선거의 책임도 이승만에게 있다고 보는 게 논리적이다. <건국전쟁>은 이승만에게 3.15 부정선거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85세 고령의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린 부패한 관료들의 비위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이승만의 공적, 황당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