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니 공연 장면
BAKI
< Pan & Opticon >이 펼쳐진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은 블랙박스 시어터다. 공연장의 특성을 십분 살려 가변석을 창작 방향에 맞게 조정할 수 있다. 그래서 안무가는 원형교도소의 콘셉트를 살리기 위해 무대 구성에 집중했다. 무엇보다 기존에 설치된 객석 위치를 뒤틀었다. 출연자는 교도관이 되고, 관객은 죄수가 된다. 내용상 알고 있는 둘의 상관관계가 완전히 역전됐다. 그래서 안무가는 이런 상황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었다.
동서남북을 오가는 카메라도 부족한지 천장에까지 카메라를 걸었다. 이렇게 사방에서 서라운드로 휘감는 장치는 감시자가 피감시자를 옥죄는데 제격이다. 무대조명은 비네팅으로 처리해 가장자리로 갈수록 어두워진다. 이것은 관객의 시선을 중앙으로 모으는데 큰 역할을 한다.
반응형 렌즈와 사방에 설치된 카메라는 무대 안에서 공연을 집중하게 만든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공연장 밖인 로비에서도 무용수의 동선을 쫓아가는 카메라에 묘한 쾌감을 느낀다. 관객의 시선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사각지대는 눈을 씻고 찾을 수 없다. 또한 단순히 카메라에 노출되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눈동자까지 초점을 맞춘 정교함은 놀라울 따름이다.
#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무너진 이머시브 공연
옥타곤 무대에서 펼쳐진 공연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대와 객석의 의미마저 사라지게 한다. 입장할 때 지나친 세 개의 출입문은 이미 객석에 앉는 순간 용도가 바뀌었다. 출입문은 등장과 퇴장을 하는 상수와 하수가 되고, 출입구를 정하지 않고 사방 어디에서나 등퇴장이 자유롭다. 객석과 객석 사이에서 무용수는 관객의 어깨를 스칠 정도로 경계가 무너졌다.
공연이 시작되면 경계의 붕괴속도는 점점 빨라진다. 관객을 통제하는 교도관의 쌍안경처럼 손가락을 동그랗게 쥐고 관객들에 집중한다. 무대를 둘러싼 의자를 헤집기도, 앉아있는 관객을 무대에 끌어들여 배우와 함께 동선을 맞추기도 한다. 이미 무대 위에서 여섯 명의 무용수들이 연기를 펼치지만, 예정에 없던 일곱 번째 등장인물에게 미션을 맡기는 모험을 시도한다.
# 알고리즘으로 덫에 빠진 인간의 고민
"핸드폰 없이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현대인은 마음이 편할까"
"기술의 발달이 주체적인 사고를 확장하는데 도움이 될까"
안무가의 질문은 이번 공연에 중요한 메시지가 된다. 단순히 관객 몰입형으로 참여를 독려시키는 차원이 아니다. 편리함과 불편함의 사이를 정신없이 오간다. 인간이 창조한 기술은 오히려 자신의 다리를 붙잡는 덫으로 숨쉴 틈을 주지 않는다. 이제 핸드폰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현실을 반성시키고 싶다.
인간의 조급함을 표현하기 위해 핸드폰 효과음이 적절하게 활용됐다. 출연자의 머리, 어깨, 손목에는 버튼이 있는데, 그들이 한 번씩 누를 때마다 옆 동료는 휘청거린다.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이런 패턴은 기계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반쪽짜리 실상을 폭로한다. 또한 무대에 등장한 관객은 무용수의 버튼을 직접 눌러봄으로써 이보다 완벽한 이머시브 공연이 있을까 되묻는다.
# 미래에 방향을 제시한 컨템포러리 발레는?
무용 분야의 '다양성'에서 저마다의 실험과 시도를 엿본 <아르코 댄스&커넥션>의 피날레는 < Pan & Opticon >이 맡았다. 그런데 이전에 선보였던 현대무용과 다르게 이번에는 발레다.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에서 백조편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발레복과 토슈즈를 신고 공연하는 장면을 상상하지만 발레의 선입견이 무너진다. 아무리 집약된 기술로 무대를 포장해도 안무가가 마지막까지 손을 놓지 않았던 것은 '발레'였다. 여섯 명의 무용수는 전통적인 무대에서 봤던 동작과 다르지 않고, 이것이 컨템포러리 발레라는 외침을 관객에게 외친다. 그만큼 차별화된 발레를 고민해온 이해나 안무가는 오히려 현대 창작발레가 나아갈 방향에 해답을 제시한다.
< Pan & Opticon >은 포스트휴머니즘 시대에 무용의 사회적 역할로서 '차별화된 참여형 컨템포러리 발레'를 고수한다. 이것은 동시대로 넘어와서 '알고리즘으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에 경종을 울린다. 트렌드가 급변하면서 예술가에게 숙제로 떨어진 '예술의 공간적 개념전환'을 고민한 이유는 여전히 고전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창작 발레의 한계 때문이다.
기존에 폐쇄적이고 일방적으로 보여주던 고전 발레는 젊은 관객들을 위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작품의 서사는 무용수의 동작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에 집중했다. 앞으로 발레가 지닌 전형적인 틀을 깨는데 일조하고 싶었던 안무가의 바람대로 멀게만 느껴지는 고급예술이 아니라 일상 가까이 존재하는 예술로서 발레를 감각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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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예술만 씁니다." 20년 넘게 문화예술계 현장에 몸담고 있으며, 문화예술 종합시사 월간지 '문화+서울' 편집장(2013~2022년)과 한겨레신문(2016~2023년)에서 매주 문화예술 행사를 전하는 '주간추천 공연·전시' 소식과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써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