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롱레그스>의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
극 중에서 롱레그스는 자신을 가리켜 '어디에나 있는 아래층 사람'이라고 한다. 어디에나 있다는 점에서 인간의 취약함을 파고드는 악마의 습성이 보이고, 아래층에 있다는 점에서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파멸의 감정을 상징하는가 싶다. 지하실로 내려갈 때면 누구라도 심연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궁극적인 공포심이 온몸을 덮칠 것이다.
롱레그스는 그 자체로 악마임과 동시에 악마가 파고들 만한 인간의 나약함 내지 취약함 등이기도 하다. 악마라는 형상은 홀로 존재할 수 있어도 악마라는 실체는 홀로 존재할 수 없다. 그들은 인간의 욕망을 먹어야만 살 수 있다. 그 욕망이라고 하면 죄책감, 공허함, 걱정과 불안 등과 연관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 감정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소우주라고도 칭하는 한 인간이 한 가지 혹은 몇 가지 감정과 욕망에 사로잡힐 정도라면 오랜 시간 특정 환경에 노출돼야 할 텐데 한순간에 바꾼다고 해결될 것 같진 않다. 오랜 시간이 필요할 텐데 그때 역시 악마의 속삭임에 취약하다. 그러니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단단한 타인의 도움이 말이다.
스스로 나약해졌고 취약한 상태라는 걸 인지조차 하지 못하니 만큼 곁에서 물심양면 도와주는 게 필요하다. 새로운 감정이 피어날 테고 악마가 파고들 여지가 줄어들 것이다. 악마는 어디에나 있다고 하지만 그 말인즉슨 어디에서도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영화가 일련의 본능적인 공포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고 캐릭터 확실한 연기가 확실하게 뒤를 받쳤다. 근래 보기 드문 수작 공포 영화임에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