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지옥에서 온 판사> 스틸컷
SBS
14화 동안 <지옥에서 온 판사>는 여러 상황과 연출로 복수의 면면을 구현했다. 흔히 '복수'란 현실적인 해법으로 풀 수 없는 상황에 등장하는 단어다. 그래서 드라마는 교제 폭력, 아동학대, 노사 괴롭힘 등 현시점에서 가장 대두된 사회적 문제지만, 법적 제도의 부재로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사안들을 건드렸다. 이 지점에서 시청자는 탄식한다. 억울하고 답답하지만, 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이때 빛나가 등장한다.
빛나는 다른 의미로, 악마 같은 판사다. 현실 속 판사들이 온갖 이유로 감형과 무기징역 판결을 내리는 '악마'라면, 빛나는 악마 같은 술수로 가해자를 처단한다. 환각을 일으켜 가해자의 몸을 자르는 시늉을 하고, 피해자가 겪은 방식 그대로 가해자에게 되갚아주며 "피해자가 용서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죄"라고 답한다. 지나칠 만큼 잔혹한 방식으로 가해자에게 복수하지만, 사법제도보다 나은 판결에 시청자들은 "통쾌하다"고 평했다.
여기까지는 평범하고 흔한 '사이다' 드라마다. 그런데 복수극을 표방하던 <지옥에서 온 판사>는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힘을 풀었다. 12화~14화에선 빛나의 연인 '다온(김재영)'의 가족을 비롯해 13명을 살해한 연쇄 살인마 J를 심판하는 과정이 담겼다. 원한 서린 사이인 만큼 가장 자극적인 복수가 행해질 줄 알았지만, 드라마는 방향을 틀었다.
12화에서 다온은 형사로서 자신의 가족을 살해한 연쇄 살인마 J를 체포한다. 그러나 또 다른 피해자를 들먹이며 자신을 도발하는 살인마에 살인 충동을 느낀다. 두 손으로 소화기를 높이 들던 다온은 "경찰의 임무는 죄를 밝히는 것이지 주는 것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네가 경찰이라는 걸 잊지 말라"는 선배의 말을 떠올리고 이성을 되찾는다.
사적 복수가 아닌 공적 재판을 선택한 다온은 형사로서 직업적 소명을 다하며 동시에 유가족으로서 존엄을 지켰다. '용서하지 않되, 똑같은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한 그는 마침내 연쇄 살인마 J를 재판장에 세웠다. 그는 "모르는 일이다", "그런 적 없다"며 범행을 부인했고, 일부 범행은 공소시효가 만료돼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이에 빛나는 "유가족들이 탄원서를 제출했다. 그들은 사형 선고로 지난 세월을 보상받고 싶은 것이 아니라 상처를 치유 받기를 원할 뿐이다. 결국 그들이 원하는 건 피해자에 대한 애도와 위로다. 피해자와 피해 유가족이 용서하지 않는 죄는 법 또한 용서하지 않는다"라며 사형을 선고한다. 너무나 쉽게 용서를 강요하는 사회에서 "함께 용서하지 않겠다"는 빛나의 한마디는 유가족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우리의 방식을 되돌아보게 한다.
사회가 당신을 용서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