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들 수다 재밌다 모임전 해님여성회가 자수정(자매들 수다 재밌다)로 명칭이 바뀌었다. <열 개의 우물>의 한 장면
감 픽쳐스
<열 개의 우물>에 눌러 담듯 꽉 채워진 돌봄은 가난한 동네에 공부방을 세운 이들의 이야기에만 담겨 있지 않다. 굴 따서 파는 엄마의 고생을 보며 "빨리 키가 커서 저 동일방직에 들어가는 게 내 인생 목표였어"라고 하는 마음, 상의 탈의 투쟁 끝에 경찰 버스에 끌려간 동료들이 남겨놓고 간 옷가지를 하나둘 챙기는 손. 누군가를 감싸고 어르고 챙기고 돌보는 일은 어디서나 계속 된다.
그러던 안순애가 노동운동은 더는 못하겠다고, "내 인격이 재처럼 바스러지고 있다는 느낌"에 도망치듯 트럭을 타고 사는 곳마저 떠났을 때, 그 트럭에서 올려다본 하늘이 참 고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이후 그가 자신을 돌보며 긴 세월을 보내겠구나 싶었다. 풀포기 하나 없이도 돌봄에 대해 말하는 건, 나를 돌보는 일을 어렴풋이 알고, 알고자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지난 시간을 돌봐야 한다.
"내가 그때 이야기 못할 것도 없어요."(안순애)
"저는 그때 이후에 삶이 더 궁금해요."(김미례)
"이후의 삶?"(안순애)
안순애와 감독과의 대화를 들으며 그 세월을 쫓아 들어간다. 여자 이장도 나오고, 꽹과리도 나오는 그 시간들 사이에서, 나는 어쩐지 감독과 안순애가 아직 만나기 전인 그 통화에서 했던 말에 머문다.
"지나고 보니까 그게 전부 다더라고요."(안순애)
그때 그 시절 공부방 자모회에서 어렴풋이 만났다는 꿈. 나도 그들 덕분에 조금은 꿈을 가져본다.
"꿈을 가지셨어요?"(김미례)
"네. 조금 가져봤어요."(박순분)
그때 그 시절보다 돌봄이 흔히 말해지지만, 그만큼 돌봄이라는 말이 평이해지는 요즘, 무해하지 않은 운동을 하였고, 송곳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주름진 얼굴로 잘 웃는 저 여자들을 보며 사는 일의 단서를 얻었다고나 할까.
그러니 마음을 붙들어 본다. '누가'를 묻고 돌아보는 사람이 되어야지. 눈을 감고 꽹과리를 치면서도 그 꽹과리를 버리지 못하는 사람을 귀하게 여겨야지. 도망치듯 떠나는 트럭에서도 하늘을 올려다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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