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개의 우물"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
감 픽쳐스
영화의 제목 뜻이 무척 궁금했었다. "열 개의 우물"은 무슨 의미일까? 머리를 굴려본다. 항상 제목에 작품 전체의 함의와 주제가 함축되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저것 추리를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몇 가지 가능성을 재어보고 있던 순간, 답은 아주 싱겁게 설명된다. 이야기 속 주요 배경 중 하나인 '십정동'을 풀어쓰면 '열 개의 우물'인 것. 작품에만 온전히 집중하면 어렵지 않게 풀 의문을 혼자 끙끙 앓던 셈이다.
비류와 온조 형제가 고구려에서 내려와 새 나라를 정할 때, 온조는 지금의 서울 일대에 터를 잡았고, 비류는 바다의 이익을 얻고자 인천에 자리를 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비류가 간과한 게 있었으니 바닷가 주변은 물이 짜고 농사가 상대적으로 어려웠다는 점이다. 그 결과 동생의 판단에 뒤진 것을 부끄러워한 비류는 스스로 목숨을 거두고, 유민들은 온조에게 합류해 백제의 기원을 이룬다. 그런 인천 원도심 일대에서 우물이 열 개나 있었다면 그 동네의 유래가 제법 장구하단 걸 짐작할 수 있다.
또 다른 주요 배경인 만석동, 요즘 세대에겐 닭강정의 고장인 이곳의 지명 유래 역시 매우 간단했다. 만 석의 곡식이 쌓여 있던 곳, 고려와 조선 시대 국가 재정의 바탕이 된 조운선이 정박하던 포구에서 기원한 동네인 것이다. 영화의 제목도, 주요 무대도 모두 지정학적으로 의미심장한 선택에서 출발하는 셈이다.
영화는 역사적 실체를 풀어내기 위해 상당한 분량의 기록 자료와 사진을 첨부한다. 이런 유형의 다큐멘터리는 자칫 교과서적으로 지루하게 나열될 위기에 종종 처하곤 한다. 제작진은 그런 우려를 충분히 숙지하고 파훼하고자 고심한다. 그 결과물이 겉보기에는 소소해 보이지만, 세심하게 공을 들인 변주로 관객의 시선에 각인된다.
스크린은 자주 양면분할로 해당 지역의 과거 vs 현재를 대조해 주요 배경 공간을 또 하나의 주인공으로 승격시킨다. 해설과 증언으로만 박제되지 않고, 지금은 흔적도 없을지언정 과거에는 이렇게 생동하는 장소였다는 증명, 그리고 간혹 남아 있는 흔적과 여전한 활동은 마치 '살아있는 화석'처럼 좀 더 깊숙하게 다가오는 접근법이다. 꼼꼼한 배경 공간 해설이 설명에만 그치지 않고, 눈 앞에 펼쳐지는 시각 이미지 배치와 조응하며 인물들의 인터뷰에만 의지하지 않는 독자적 주역을 탄생시킨다.
그 덕분에 시종일관 꽉 들어찬 화면의 질감이 관객에게 방심할 틈을 주지 않는다. 대개 인물이 나오면 집중하고 공간을 훑어가면 지나가는 장면으로 치부하는 선입견은 낄 틈이 없다. 하지만 그러면 관객이 너무 피곤하고 쉴 짬이 없지 않을까? 제작진은 적절한 완급조절도 놓치지 않는다. 하지만 허투루 장면과 장면을 연결하는 공백을 두는 게 아니라 화두를 던지고 이를 관객 개별이 성찰할 기회를 제공하는 식으로 행간을 설정하는 배려를 제시한다. 그저 끌려다니지만 말고 사색하라는 제안이다.
이런 방식은 요즘 기록영화에서 화두가 되는 공간의 역사와 변화가 중심이 되는 작법에 대한 일종의 답변이기도 할 테다. 고전적인 독립 다큐멘터리의 원형질 그대로일 것 같지만, 형식적으로도 허술한 구석이 없다.
사람이 성벽이자 우물이 되어주던 도전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