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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게임하다 죽은 남성, 블로그에 부고 소식 알렸더니...

[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

24.10.30 16:31최종업데이트24.10.30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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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7월 노르웨이에서 태어난 마츠 스테인, 그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가 보균자로 희귀병인 뒤셴형 근육위축증을 앓았다. 근육이 서서히 줄어들면서 점차 몸이 약해지는 병이었다. 남들보다 발달이 느렸고 특수 휠체어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으며 결국 죽고 말았다. 2014년 11월, 그의 나이 불과 25세였다.

부모와 여동생은 넋이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와중에 문득 게임이 생각났다. 마츠가 살아생전 마지막 10여 년 동안 하루종일 매달린 게임 말이다. 그 게임은 바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 게임 역사에 길이남을 대명작이지만 그들에겐 그저 마츠가 할 수 있고 또 하고 싶어했기에 특수 장비까지 달아 준 게임이었다.

하여 그곳에 마츠의 부고 소식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다다른 것이다. 그렇게 마츠가 운영했던 블로그 '인생 사색'에 글을 남겼고 가족의 연락처를 남겼다. 형식상으로 남긴 글이라고 생각했으나 오래지 않아 메일이 쏟아졌다. 마츠를 두고 '이벨린'이라고 부르며 하나같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비는 내용이었다. 아울러 마츠, 즉 이벨린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예상할 수 있는 말들이었다. '이벨린은 많은 이에게 기쁨을 줬다'는 것.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영화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이 살아생전 마츠 혹은 이벨린이었던 그의 이야기를 건넨다. 마츠는 비록 뒤셴형 근육위축증으로 움직이기조차 힘들어 갔지만, 게임 속에서 이벨린은 많은 이의 진정한 친구이자 조력자였으며 조언자였다. 또한 분위기 메이커였고 경청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많은 이에게 도움을 준 이벨린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영화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의 한 장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영화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의 한 장면.넷플릭스

작품은 마츠가 8년 동안 길드 스타라이트에서 텍스트로만 나눈 대화, 4만2천 쪽에 달하는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이벨린의 인생을 재구성해 보여준다. 애니메이터들이 게임 속 모델로 생생하게 구현했고 마츠의 목소리와 비슷한 배우가 낭독했다. 마츠의 삶을 상당 부분 구성하고 규정하는 게임 속 이야기를 제대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다.

마츠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내에서 '이벨린 레드무어'라는 이름의 우락부락한 외모의 남성 캐릭터로 활동하며 탐정으로 일했다. 어쩔 수 없이 매사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현실과는 달리 게임 내에선 활발하고 적극적이었다. 또한 매우 활동적이기도 했다.

게임 내에서 이벨린과 친하게 지냈던 소녀. 성적이 떨어지자 부모님이 컴퓨터를 앞수하는 바람에 우울증까지 앓게 된 그녀의 유일한 버팀목은 마츠였다. ㅁ츠는 그녀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렸고, 그녀는 마츠와 함께 게임을 하며 지난한 학창 시절을 견뎌낼 수 있었다.

한편 자폐로 4년 동안 방 밖에 나오지 않은 아들과 유대감을 쌓으려는 한 엄마의 고민을 들은 마츠는 모자 사이를 이어지게 해 줬다고. 그녀는 마츠에게 고맙다며 덕분에 아들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었다고 전했다.

게임 덕분에 할 수 있었던 가치 있는 일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영화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의 한 장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영화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의 한 장면.넷플릭스

이쯤 되면 마츠 그리고 이벨린의 이야기는 '게임'의 순기능 논의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마츠의 부모는 본인들이 마츠에게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가장 힘들어했다. 마츠그 사랑에 빠지지 못할 것이며, 사회활동도, 사회공헌도 할 수 없고, 타인의 삶에 영향력도 끼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달랐다. 아울러 작품에도 나오듯 마츠가 무너져 가는 몸으로 힘겹게나마 게임을 할 수 있었던 건 특수 장치들 덕분인데, 바로 그 특수 장치들을 어떻게 이용했는지 세미나도 열어 비슷한 병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공유하려 했다.

이벨린, 즉 마츠는 생애 마지막 순간으로 치달을수록 죽음에 대한 극심한 공포를 견디며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었는지를 고민했다. 스타라이크는 매년 마츠의 기일에 한데 모여 추도식을 열었는데 이는 연례행사로 거듭났다.

마츠의 실화가 감동적이어서일까, 작품이 감동적이어서일까.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2024년 선댄스 영화제 월드시네마 다큐멘터리 부문에서 감독상과 관객상을 수상하며 일찍이 화제를 뿌렸다. 또한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됐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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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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