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COMPUTER > 스틸컷
인디그라운드
02.
< COMPUTER >
한국 / 2023 / 극영화
감독 : 김은성
출연 : 김일지, 장지훈
일지(김일지)는 빨리 게임에 들어오라는 친구의 전화를 받고 지나가던 차를 얻어 탄다.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한 이유로 낯선 차를 공짜로 탄 것이 조금 미안할 정도다. 어떤 이유라도 괜찮다던 운전석의 남자는 '모든 존재는 본연의 위치로 이동하기 마련이고, 자신들 또한 앞으로 몇 번 더 만날 것'이라는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집에 도착한 그는 자신의 게임 중독 때문에 이별하겠다는 여자 친구 주연(김민서)의 쪽지를 발견한다.
김은성 감독의 영화 < COMPUTER >는 모든 지점이 기존의 영화적 구성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작품이다.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각각의 장이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부터가 그렇다. 심지어 장과 장 사이는 같은 신을 나눠 갖는 식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떨어지지 말아야 할 자리를 인위적으로 억지로 떨어뜨려 놓은 듯한 기분마저 느끼게 만든다.
이뿐만이 아니다. 중심인물인 일지의 시점으로만 전개되는 탓에, 영화의 전체 내용은 극 중 인물인 일지가 받아들이는 것과 관객이 받아들이는 것에 큰 차이가 없다. 이것은 영화가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한 정보를 추가적으로 더 제공할 의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완성된 작품이 주는 첫 감정은 괴이하다는 것이다. 어떤 정보도 없이, 화면 속 인물이 마주하는 상황을 그대로 똑같이 받아들여야 하는 관객에게 다른 감정을 꺼낼 여유는 없다. 여기에 때마다 발생하는 낯선 상황과 인물의 등장이 마치 게임 속의 돌발 이벤트처럼 주어지는 순간과의 조우는 비현실적인 감각까지 일으킨다. 여기에서 감독의 의도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상황을 이해하기도 전에 밀어닥치는 영화적 순간과 정돈되지 않은 감정적 상황의 연속은 이 드라마가 가진 일종의 서스펜스를 확보하게 하는 동력이 된다.
"본연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하는 거 선생님이 들고 있는 컴퓨터도 마찬가지거든요."
가장 쉽게 이 영화를 표현하자면 게임 중독으로 이별을 고한 여자 친구로 인해, 컴퓨터를 부수고자 하는 한 한 남자 정도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인물의 강한 의지와 반복되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인물들에 의해 끊임없이 되돌아오는 컴퓨터의 존재, 그 사건 자체를 자연 운동이라고까지 부르며 섭리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라 일컫는 영화의 설정을 보면, 표면적으로 드러난 내러티브 아래에서 '중독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인간의 반복되는 과오'를 이 작품이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전북 독립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바 있는 <우두>(2021)와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이었던 < Mercy Killing >(2022) 등의 작품을 통해 자신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펼쳐가고 있는 김은성 감독의 또 하나의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 J 비전상, 왓챠가 주목한 단편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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