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후 네시> 스틸컷
홀리가든
매일 오후 네 시만 되면 찾아오는 손님이 있다. 두 시간 동안 물음에 단답형 대답만 하고 차 마시다 가는 앞집 사람. 기묘한 행위, 무례한 말투, 상식을 뛰어넘는 막무가내 고집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 한두 번도 아닌 루틴이 된 잃어버린 두 시간은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은퇴 후 평화를 꿈꾸던 부부의 위기
영화는 존경받는 교수 정인(오달수)이 은퇴를 앞두고 전원의 한적한 새집으로 아내 현숙(장영남)과 이사가는 날부터 시작한다. 열심히 달려온 세월의 보상처럼 느껴지는 아늑한 집은 부부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제2의 인생을 반기는 듯했다. 자식이 없는 부부는 딸처럼 가까운 제자 소정(민도희)이 가끔 찾아오는 일을 기쁨으로 여기며 편안한 노후 생활을 보내려고 이곳에 내려왔다.
인사도 할 겸 앞 집에 산다는 의사 육남(김홍파)을 찾아갔지만 집에 없는 듯해 안부 편지를 보낸 게 화근이었다. 육남은 그날부터 오후 네시만 되면 부부의 집에 들어와 막무가내로 시간을 강탈하기 시작했고 부부의 일상은 지옥이 됐다.
영화는 강박적인 남자를 강제로 접대할 수밖에 없는 정인과 현숙의 불편함을 그대로 전달한다. 아멜리 노통브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다. 독특한 필체와 상식을 뛰어넘는 사고방식으로 국내에도 팬층을 겸비한 원작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한국을 배경으로 각색해 종국에는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대한민국의 표준이 된 주거형태 아파트는 대부분 사방에 누가 사는지 모른다. 하지만 부부는 은퇴 후 시끄럽고 복잡한 도심을 떠나 조용한 평화를 꿈꾸는 중장년층이다. 이웃과 잘 지내는 것도 편한 노후를 즐기는 인생 설계의 한 형태인 거다.
특히 호숫가에 단 두 채뿐인 이웃은 인사를 나누는 게 예의일뿐더러, 의사라는 직업은 안면 트는 게 이익이다. 점점 병원 갈 일이 잦아질 텐데 의사와 친해지고 싶었을 이유는 차고 넘친다. 교양과 학식을 두루 갖춘 교수와 교수의 아내라는 직업적 위신 때문이라도 먼저 인사를 나누려는 마음은 당연하다.
이후 이유도 모른 채 오후를 빼앗긴 부부의 일상은 의문, 두려움, 히스테리로 가득해진다. 교수라는 사회적 지위에 매몰돼 불편한 상황을 타파할 골든타임을 잃어버린다. 좋은 이웃이란 가면 때문에 진작해야 했던 말을 못 꺼내 내내 끌려다닌다. 대체 왜 이러는 건지 묻지 않았고, 부디 나가 달라고 말하지 않았으며, 들어오지 말라고 거절할 수 있는 용기를 내지 못해 시달린다. 끊어내지 못해 이웃, 지인, SNS 팔로우와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맺은 현대인의 자화상 같아 씁쓸하고 찝찝하다.
타인이란 지옥에 빠진 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