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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냐 밥이냐... 고뇌하던 두 사람의 결말은?

[안지훈의 뮤지컬 읽기] 뮤지컬 <랭보>

24.10.22 13:13최종업데이트24.10.22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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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랭보> 공연사진
뮤지컬 <랭보> 공연사진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천재 시인이라 불린 아르튀르 랭보와 '시인의 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폴 베를렌느의 이야기를 다룬 창작 뮤지컬 <랭보>가 돌아왔다. 2005년 프랑스 공영방송인 <프랑스 2>에서 발표한 '가장 위대한 프랑스인'에 베를렌느는 70위, 랭보는 84위에 오른 바 있다. 프랑스의 걸출한 문학가들의 이야기가 한국에서 뮤지컬로 만들어졌다는 것부터 신기했다.

<랭보>는 2018년 초연 이후 2019년 재연, 2022년 삼연을 거쳐 이번에 사연을 펼칠 만큼, 단기간에 많은 관객을 만났다. 팬데믹 상황에서도 높은 객석 점유율을 기록했을 정도로 이미 대학로에서는 인기작으로 꼽힌다. 특히 올해는 랭보 탄생 170주년이라는 점도 돋보인다. 필자는 랭보가 태어난 10월 20일, 이 뮤지컬을 관람했다.

두 시인의 고뇌가 다다른 지점

어린 소년 랭보는 미지의 세계를 보는 시인이 되고자 했다. 문단은 랭보의 재능을 쉽게 알아주지 않았는데, 그러던 중 재능을 알아본 베를렌느를 만나게 된다. 랭보는 그런 베를렌느를 반가워하고, 베를렌느 역시 자신의 작품 세계를 이해해주는 랭보에게 호감을 느낀다.

둘은 모두 문단과 평단에 회의적이다. 랭보는 그들이 진실되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느꼈고, 베를렌느 역시 경우에 따라 자신의 시를 오독하거나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두 시인은 오직 작품 활동에만 집중하기 위해 떠난다.

곧이어 이들은 딜레마에 봉착한다. 둘은 모두 이상을 쫓았지만, 베를렌느는 현실적인 고민도 하는 인물이다. 시는 출판돼야 하고, 사람들에게 읽혀야 하므로 베를렌느는 문학계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고 관계가 틀어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또 경제적인 고민도 하고, 두고 온 가족도 생각한다.

 뮤지컬 <랭보> 공연사진
뮤지컬 <랭보> 공연사진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베를렌느는 예술가가 현실에서 겪는 각종 딜레마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인물이다. 물론 이런 딜레마는 예술가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보통의 사람들도 본질적으로는 같은 고민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위해 무언가를 내려놔야 하는, 지극히 평범한 상황은 관객의 시선을 베를렌느에게 머물게 만든다.

이상과 현실 사이 좁혀지지 않는 간극 탓에 랭보와 베를렌느는 갈등하고 멀어진다. 작품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베를렌느와 달리 랭보는 시를 쓸 시간이 없다며 노동을 거부하는 식이다. 베를렌느와 헤어진 랭보는 방랑 끝에 아프리카로 향한다.

아프리카에서 랭보가 마주한 것은 진실된 고통. 환경은 열악하고,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찾은 일자리는 고되기만 하다. 이 고통스러운 현실을 랭보는 기록한다.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고자 했던 랭보의 다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그 기록은 후에 친구 들라에와 베를렌느에 의해 발견되는데,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들라에와 달리 베를렌느는 '진짜 시'임을 알아본다.

랭보가 고행을 통해 자신이 꿈꿨던 작품 세계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서 필자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던 이상과 현실의 딜레마가 해소됐다고 이해했다. 적나라한 현실을 직면하고, 진솔하게 적어간 기록이 끝내 이상적인 작품이 됐으니 말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랭보는 현실을 과감하게 직시함으로써 딜레마를 해소할 수 있다는 일련의 교훈을 전하는 듯하다.

 뮤지컬 <랭보> 공연사진
뮤지컬 <랭보> 공연사진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한편, 탄탄하지 못한 서사는 아쉬움을 남긴다. 다만 서사의 빈 부분을 인물들의 치열한 내적 고뇌, 문학적 표현으로 채운다. 실제로 뮤지컬 <랭보>에는 두 시인의 시가 대사와 넘버로 등장한다.

랭보와 베를렌느에 비해 두드러지진 않지만, 랭보의 오랜 친구 들라에 역시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원하는 것이 명확한 두 시인과 달리 들라에는 아직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답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랭보>는 12월 8일까지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1관에서 공연된다. 랭보 역에 박정원·손유동·박준휘·김리현, 베를렌느 역에 김재범·김종구·김경수·김지철, 들라에 역에 송상훈·문경초·신은호가 각각 출연한다.
공연 뮤지컬 랭보 예스24스테이지1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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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사회를 이야기하겠습니다. anjihoon_5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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