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냉정과 열정사이> 중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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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의 냉장고 안 풍경은 단지 음식을 저장하는 공간을 벗어나지 못한다. 냉장고는 정서적 거리감과 사회적 단절을 상징하는 작은 캔버스가 됐다. 냉장고를 열면, 오로지 자신의 취향에 맞춤 된 몇 끼의 분량이거나, 간편하게 처리할 수 있는 식사 거리가 있다. 이는 타인과의 관계를 최소화한, 나아가 사회적 연결의 가능성마저 끊은 상태에서의 자족적인 생활 방식으로 연결된다. 히키코모리처럼 방 안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형태의 삶은 냉장고의 상태를 통해 더욱 명확해진다. 먹고 사는 문제를 넘어, 현대인이 기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부터 이탈하여 전혀 다른 형태를 창출하고 있다.
그렇다면 1인 가구의 냉장고 풍경은 어떤 사회적 변화를 의미할까. 사회적 관계의 중요성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현대인은 점점 더 관계를 회피하며 개인화된 삶을 살아간다. 그 결과, 냉장고 속 간편식처럼 우리의 일상은 간결하고 기능적인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가족 또는 공동체와의 식사가 중요한 사회적 행위였지만, 이제는 개인의 필요에 맞춘 최소한의 섭취로 대체되었다. 이는 단순히 사회적 관계의 변화가 아니라, 정서적 소통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타인과의 감정적 교류가 줄어들면서, 그 공백을 기능적이고 효율적인 생활 방식이 채우고 있다.
이런 현상은 현대인의 개인화된 소비가 어떻게 정서적 거리감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냉정과 열정 사이>의 주인공들이 느끼는 상실감이 연인의 관계에서 머물지 않고 사회적으로 확장된 시대로 돌입했다는 사실이다. 주인공은 서로에게 접근하려 하지만, 정서적 소통의 장벽은 둘 사이에 존재하는 틈새를 메우지 못한다. 이에 더 나아가 현대의 1인 가구들은 정서적 연결을 포기하고 공백을 혼자만의 기능적 생활로 채워간다. 이는 우리 사회가 정서적 소통보다는 개인의 자족적인 삶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