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영화 감독으로서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관객들 응원받는 게 더 중요하다. 이만큼 다른 걸 해보려 애썼구나, 정성이 갸륵하다는 평이 나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CJ ENM
해치라는 존재
사이버 렉카는 일종의 변죽 정도일 뿐, 이 영화의 핵심은 해치라고 할 수 있다. 공권력이 처단 못하는 이들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해치의 행동에 대중은 열광한다. 아무도 해치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와중에 영화 중반 해치는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다. 대중의 관심을 즐기고, 서도철 형사 및 동료들이 겪는 무력감에서 쾌감을 얻는 존재다. 이는 서도철 형사가 박선우라는 신참을 대하는 감정과도 연동된다. 자신과 비슷한 부류로 알고 그를 베테랑 팀으로 당겨오지만, 곧 그것이 악수가 되면서 서도철의 마음은 복잡해지고 만다.
"제가 어렵게 생각한 부분이다. 장르 영화 규칙으로 보면 해치의 정체를 일찌감치 공개하는 건 위험한 선택이다. 원랜 해치를 반전 요소로 사용하는 시나리오가 있었고, 해치가 어떻게 해서 탄생했는지 추적하는 버전의 시나리오도 있었다. 근데 그러면 서도철의 인간성이 드러나지 않더라. 해치가 빌런이냐 아니냐로 무게가 쏠리니까 말이다. 이 영화는 빌런의 정체보다 서도철의 선택, 그가 느끼는 딜레마가 중요했다. 아마도 서도철은 처음에 해치를 보고 MBTI가 자신과 같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젊은 시절 서도철 또한 어떤 선택을 했다면 해치처럼 됐을 수도 있다.
그 미세한 간격이 시간이 흐르며 크게 벌어진 거라 생각했다. 순간순간의 선택과 주변 인물들이 지금의 서도철을 만든 것이고, 동료의 소중함이나 정의를 몰랐던 박선우는 해치가 된 것이지. 제가 공포를 느꼈던 게 인과관계가 없는 사건이었다. 최근 시청역 차량 사고도 그렇고, 싱크홀에 갑자기 사람이 잘못되기도 한다. 이건 내 잘못으로 인한 게 아니잖나. 천벌을 받는 건가 생각할 수도 없고. 해치라는 인물이 영화에서 그런 존재이길 바랐다."
류승완 감독은 해치로 등장하는 신참 박선우 형사를 두고 나르시즘이 있는 사람으로 정의했다. 관심을 즐기고, 상황을 통제하려다 악마가 되는 셈. "그런 걸 즐겼던 박선우는 표면적으로 서도철과 비슷해 보여도 본질적으로 다른 인간이었다"며 "잘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지만, 즐기는 사람은 지킬 게 있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서도철은 지킬 게 있는 사람이었다"고 류승완 감독은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