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성의 희곡 <빵야>(주)알마
글을 쓰면서 나나는 끊임없이 자기 검열을 한다. 빵야와 함께 역사 이야기를 하면서 나나는 고민한다. 김은성의 희곡 <빵야>를 들여다보자.
"나는 이야기를 쓰기 위해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진심으로 함께 아파하고 있는 걸까?
이야기의 완성을 위해 그들의 고통을 내 마음대로 편집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김은성의 희곡 <빵야> p. 160)
마침내 나나는 글쓰기에 대한 의미 부여를 끝내고 확신한다.
"저는 쓰고 싶습니다. 성공하고 싶은 욕심 때문입니다.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쓰는 일이 마냥 좋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역사를 살아가는 그들과 지금을 살아가는 내가 만나는 일입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착각이 들 때 진심으로 행복합니다. 계속 쓰고 싶습니다. 일단 거짓말에 의지하기로 마음을 정리합니다. 기억하고 기록하고 증언하는 의미가 있다. 그런 의미 있는 작업을 하는 중이라고 스스로와 타협을 봅니다." (김은성의 희곡 <빵야>pp. 161~162)
연극 <빵야>는 나나가 쓰는 드라마의 트리트먼트로써 전개된다. 시놉시스가 작품의 기획 단계에서 쓰이는 짤막한 분량의 작품 의도나 줄거리라면, 트리트먼트는 제작과정에 필요한 상당히 풍부하고 방대한 서술이다. 연극에서는 나나의 '해설'로 연출된다. 나나의 글로써 나무 상자 속에 갇혀 있던 빵야에게 꿈을 실현할 수 있게 한다. 더불어 나나는 좋은 작품을 쓴 작가로 평가받게 된다. 나아가서 이 연극을 보는 사람에게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통한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고 한다. 우리는 앞서간 이의 증언을 듣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연극을 본다. 그러면서 기억하고 기록하고 되새긴다.
어떤 이는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말조차 희망 고문 아니냐고 비관한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팍팍한 현실을 살고 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언제 우리의 꿈이 이루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견뎌내고 버텨내는 일이다. 준비하는 자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했다. 꿈을 간직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간절한 꿈은 언젠가는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것까지 느끼게 해주는 연극이다. 장총 한 자루에 얽힌 사연으로 연극이 탄생했듯이 우리의 삶이 부족하고 힘들어도 아름다운 예술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지녀 보자. 예술은 삶으로부터 나온다.
누구나 가슴속에 꿈이 있다. 작은 꿈이든 큰 꿈이든, 우리의 삶을 지탱해 주는 것이 꿈이다. 좀 더 멋진 옷, 좀 더 맛난 음식, 좀 더 넓은 집, 좀 더 좋은 차, 좀 더 좋은 직장, 좀 더 좋은 작품, 좀 더 높은 명예. 세상의 숱한 꿈들이 있을 터이다. 꿈의 다른 이름을 욕망으로 볼 수 있을까. 인간의 욕망은 본능이다. 욕망이 지나치면 탐욕이 되고, 탈법과 불법을 저지르면 범죄가 된다.
요즘 우리나라는 때아닌 이념 논쟁, 친일 논쟁으로 시끄럽다. 뉴스의 정치면과 사회면을 장식하는 사람들. 역사를 잊은 그들도 이 연극을 봤으면 좋겠다. 잊힌 우리나라 역사가 떠오를 것이다. 고통받았던 선조들이 기억되고 민초의 아픔이 다가올 것이다. 고난 속에서 꿈을 이루는 '아름다운 사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깨어 있으면 꿈을 이룬다고 했다. 역사에 깨어 있으되 '대도무문'의 참뜻을 새기고 탐욕이 아닌 올바른 꿈을 향해 정진함이 어떠한가.
연극 <빵야>는 서울 예스24아트원1관(2024. 6. 18~2024. 9. 8),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2024. 9. 28~2024. 9. 29), 여주 세종국악당(2024. 10. 5)에서 공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