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로 코스타를 상대로 앞차기를 시도하는 이스라엘 아데산야(사진 오른쪽). 아데산야는 거리를 두고 경기를 풀어가는 방식을 선호한다.
UFC 한국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제공
전 UFC 미들급 챔피언 '더 라스트 스타일벤더' 이스라엘 아데산야(34·뉴질랜드/나이지리아)는 스토리를 많이 만들어내는 파이터로 유명하다. 다양한 테크닉을 가진 정통파 스트라이커지만 상대적으로 넉아웃 파워가 살짝 떨어지는지라 파이팅 스타일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린다.
대신 부족한 부분을 특유의 스토리나 유려한 언변으로 채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애니메이션 및 영화광으로도 유명하다. 영화 <옹박>을 보고 파이터의 꿈을 꾸고, 일본만화 <나루토>의 주인공 우즈마키 나루토를 가장 존경하며 <데스노트>를 즐겨봤다고 밝혔다. 유명 격투만화 <파이터 바키>의 여러 장면을 스스로 흉내내며 SNS에 올리기도 했다.
만화 속 주인공은 시련을 겪지만 이겨내고 결국 정상에 선다. 아데산야 역시 종종 영화나 만화속 주인공에 스스로 빙의하기도 한다. 그런 아데산야를 향해 '오타쿠 같다'고 놀리는 이들도 있다. 아데산야 본인은 별반 신경 쓰지 않는다. 상상만 하는 것이 아닌 현실에서 결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격투 인생 최대 천적 잡아내다
지난해 4월까지 아데산야 격투 인생에서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는 알렉스 페레이라(36·브라질)였다. 일부에서는 '라이벌'이다고 포장해주기도 했지만 냉정히 봤을 때 아니었다. 그냥 일방적으로 당한 열세 관계였다. 중요한 순간마다 당했고 자신이 만들어 놓은 영광을 빼앗겼다. 아데산야 입장에서는 페레이라가 빌런 대장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었을 것이다.
재작년 11월 이전까지만 해도 아데산야는 '미들급 역대 최강'을 논하는 위치에 놓여있었다. 화려한 파이팅 스타일에 비해 판정 경기가 많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스트라이커, 레슬러, 주짓떼로 등 상대 유형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잡아내며 자신을 부정하는 이들과 싸워나갔다. 하지만 또다시 페레이라표 지뢰가 터졌다.
페레이라에 대한 아데산야의 원한은 깊었다. UFC 287대회 전까지 상대 전적 0승 3패였다. 킥복싱 무대서 2번, UFC에서 한 차례 패했으며 마지막 패배 과정에서는 미들급 챔피언 타이틀까지 빼앗겼다. 아데산야는 미들급에서 12연승을 거두며 무적의 챔피언으로 군림해왔다. 더 이상 해당 체급에서는 이룰 게 없어 보였다.
입식 격투가 시절부터 그를 괴롭혔던 숙적은 여유를 허용하지 않았다. 킥복싱 무대서 전장을 옮겨온 페레이라는 UFC에 입성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빠르게 아데산야와 매치업이 성사됐고 5라운드 TKO로 승리를 거두며 벨트마저 가져갔다. 격투 스포츠에서 최정상급 선수가 특정 상대에게 내리 3연패를 당하는 경우는 드물다.
더욱이 아데산야는 지난 세 번의 경기에서 분명 내용적인 면에서는 이기고 있었다. 그러나 페레이라의 전매특허인 왼손 훅이 폭발하며 막판 역전패를 허용하는 마무리를 반복했다. 페레이라의 약진과 함께 아데산야의 최강 이미지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런 점에서 페레이라와의 4번째 대결(UFC에서는 2번째)은 그야말로 격투 인생을 걸고 승리를 가져가야만 하는 한판이었다.
아무리 아데산야가 그간 이뤄놓은 게 많다고 해도 특정 상대에게 자꾸 지면 자신감이 무너진다. UFC 기준 2차전에서마저 진다면 팬들도 등을 돌릴 것이고 주최 측에서도 다른 흥행카드를 만지작거릴 공산이 컸다. 랭킹 쟁탈전에 들어가 밑에서부터 다시 치고 올라와야 되는 상황이 펼쳐지지 말란 법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아데산야는 해냈다. 아데산야는 2라운드에 다리에 데미지를 입은 척하며 페레이라를 유인했다. 직전 경기에서 다리에 충격을 받아서 스텝이 묶인 사이 맹공을 허용해 KO패 한 것을 역이용한 전략이었다. 아데산야의 준비된 낚시는 성공했다. 페레이라는 절뚝거리는 아데산야를 따라 들어가 피니시를 노리고 펀치와 니킥을 퍼부었다.
그 순간 아데산야는 페레이라의 타격 빈틈을 노리고 있었고 눈에 들어왔다 싶은 순간 전광석화 같은 오른손 오버핸드훅을 날렸다. 예상치 못한 한방을 허용한 페레이라는 큰 충격을 받고 휘청거렸다. 그리고 곧바로 오버핸드훅이 한번 더 터지자 실신한 페레이라는 더 이상 일어나지 못했다.
승리후 아데산야는 "복수는 달콤하다고 하던데, 실제로 해보니 정말 달콤하다. 여러분 모두가 이런 행복감을 느껴봤으면 좋겠다"라며 "원하는 것을 이루고 싶다면 무엇인가를 계속 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결코 이런 행복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아데산야의 말은 이후 타 종목, 타 업종에서도 종종 언급될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만약 아데산야가 끝내 페레이라를 넘어서지 못했다면 이러한 멘트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이겼기에 모든 것이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