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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대학살'의 충격적 진실, 일본 양심세력의 돌직구

[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1923 간토대학살>

24.08.12 15:40최종업데이트24.08.12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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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9월 1일, 일본제국의 수도 도쿄 일대에 3차례에 걸쳐 대지진이 발생한다. 지진의 여파로 대화재가 일어난다. 도쿄는 물론 인근 지역은 괴멸적 피해를 겪는다. 화재로 발생한 사망자만 10여 만에 달했다. 천재지변에 이은 사회적 혼란은 공권력이 감당하기 불가능한 지경에 이른다. 도쿄 시가지의 4할이 초토화되고 대량 이재민이 발생한다. 시신을 수습할 일손도 모자란 판에 구호와 치안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수도 일대는 순식간에 혼란에 휩싸인다.

기이한 공문이 그 와중에 각지로 전달된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고 약탈과 방화를 저지른다는 것이다. 내무성(행정안전부) 명의의 통문과 언론이 유언비어를 그대로 옮긴 선정적 보도는 불안에 떨던 이들에게 기름을 부었다. 군대와 경찰은 민간인 자경단을 소집했고, 이들은 정부 공문을 기반한 유언비어를 몇 곱절 증폭시켜 나갔다. 공포가 공포를 불러왔다. 조선인은 예비검속의 대상이 되어 강제수용당했다. 식민지인의 설움이다.

구금된 처지가 차라리 나았다. 자경단은 조선인+중국인+오키나와인+일본인까지 싸잡아 폭력을 자행하기 시작했다. 조선인에게 당하기 전에 먼저 해치워야 한다는 공포와 혐오가 무차별 학살로 번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훗날 간토(관동)대학살이라 불리는 20세기의 제노사이드다. 오늘날 온라인을 떠도는 밈,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표현이 여기에서 나왔다. 하지만 이 참극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구체적인 피해 규모나 진상조사와 책임자 규명은 미흡하기 짝이 없다. 다큐멘터리 <1923 간토대학살>은 지난해 100주년을 맞이한 학살 참극에 대해 각 잡고 소개하려는 기획이다.

역사의 감춰진 진실과 대면할 때
 
"1923 간토대학살"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1923 간토대학살"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영화특별시SMC

 
영화는 크게 3가지 주제를 조합해 진행된다.

첫 번째. 간토대학살의 드러나지 않은 이면이 얼마나 참혹하고, 알려진 것보다 더 규모가 거대한 참극이었는가.

두 번째. 왜 100년 동안 일본 정부는 진상을 은폐하고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가. 현재 일본 정부와 집권당의 우경화 현상과 이는 어떻게 연동되는가.

세 번째. 일본 현지의 양심적 시민단체와 유가족들은 어떻게 대학살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분투해 왔는가.

이 3개의 초점이 톱니바퀴를 이루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야기의 방향타를 쥐고 직진한다. 가이드 겸 배우 김의성의 내레이션이 추가된다. 요즘에는 다큐멘터리라도 감정의 고양과 이완이 사이클을 형성해 관객에게 몰입과 휴식을 제공하지만, 이 영화는 딱히 그런 배려는 적은 편이다. 방대한 내용을 다뤄야 하니 균형감보다는 일단 꽉꽉 눌러 담는데 집중한 모양새다. 2시간 가까운 분량 동안 방송 다큐멘터리 구성으로 쭉 밀고 나간다.

보고 있자면, 오랜 취재와 자료 수집한 흔적이 확 묻어난다. 일본 현지 연구자와 학살을 기록하고 알리려는 사회단체, 정치인까지 상당한 중량급 인터뷰 상대만 봐도 확인 가능한 대목이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대신과 입헌민주당, '레이와 신센구미' 같은 진보 야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여럿 등장한다. 현재까지 학계에서 간토대학살 관련 연구성과도 온전히 포괄된다. 피상적으로 간토대학살에 대해 알던 이들에게는 세부 심화학습이라 해도 좋을 만큼 내용이 들어차 있다. 참고자료로 상당한 효용을 자랑할 만하다.

하지만 너무나 묵직한 내용 탓에 숨쉬기 곤란한 정도로 하중이 상당함에도, 방향성에 있어선 약간의 고민이 든다. 영화는 초급반과 고급반 사이 어딘가에 머문다. 간토대학살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는 입문자 대상이라면 간토대지진부터 출발해야 한다. 자연재해가 어떻게 사회적 참사로 돌변했는지, 왜 조선인을 학살의 대상으로 삼았는지 해설하는 게 올바른 출발점일 테다. 하지만 영화는 간토대지진 부분은 건너뛰고 곧바로 조선인 학살 제노사이드를 풀어낸다. 물론 중국인 등 다른 소수자 학살도 언급하지만, 지극히 적은 분량이다. 그 점 때문에 오히려 총체적인 이해가 제약되는 기분이다.

반대로 관련해 일정한 소양을 갖춘 이들에겐 동어반복 분량이 제법 있어서 밀도가 낮아진다. 숱한 증언과 기록이 등장하는 데다, 나열을 피하기 위한 삽화도 종종 삽입되어 늘어지는 것을 막으려 고심한 흔적은 곳곳에 역력하다. 그렇지만 아무리 역사의 진실이라도 감당하기 힘든 경악스러운 내용을 내내 버티는 건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물론 사건의 실체가 워낙 흉흉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관객의 내성을 조금 고려해도 좋았을 법하다. 영화 내내 어떻게 죽였고 얼마나 끔찍하더라 표현이 거듭 이어지니 힘든 게 사실이다. 물론 희생자와 유가족의 슬픔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지만, 타인의 고통에는 원래 둔감할 수밖에 없는 게 인간 아닌가.

100년 동안의 은폐 왜곡, 이면에 드리워진 파시즘의 그림자
 
"1923 간토대학살"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1923 간토대학살"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영화특별시SMC

 
하지만 그런 진입 턱에는 이해되는 구석이 분명히 있다. <1923 간토대학살>은 지금껏 해당 사안을 다뤘던 영상물에서 쉽게 도전하지 못해온 쟁점에 정면충돌한다. 간토대학살은 당시 일본 정부가 혼란을 수습하지 못하는 과정에서 조선인(과 소수민족)에게 그 책임을 전가해 시간을 버는 게 발단이었고, 그로 인한 민간 자경단의 폭주를 통제하지 못한 게 핵심이라 해설되어 왔다. 양심적/진보적인 의견 그룹 역시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영화는 일본 정부와 군경이 학살의 핵심 주범이라는 입장으로 돌직구를 날린다. 여러 학살 참여 당사자의 편지나 일기 등 사적인 기록 + 도쿄와 요코하마 등 대학살 발원지에 체류하던 외국인들의 증언과 해외 매체 보도 등을 공들인 자료 수집으로 근거화했다. 설마 정말 그랬을까 할 이들에겐 충격적인 내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비협조와 자료 유실로 인해 확고부동한 진실의 철퇴보다는 정황의 나열에 그치는 감이 있다.

일본 정부가 당시 제시한 (어쩌다 보니 애꿎게 발생했다는) 조선인 희생자는 200명대에 그친다. 반면에 당시 상해임시정부나 민간 연구자들의 집계는 6000명대에 이른다(2만여 명 넘는다는 추산도 있다). 조선인 외에도 '불령선인'으로 지목된 이들 역시 상당수 학살과 탄압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래서 간토대학살은 일본의 군국주의 폭주로 향하는 본격 출발점으로 간주하곤 한다. 영화를 만든 이들은 이 대목에 주목하고 현재에 대입하려는 주제의식을 감추지 않는다. 하지만 그로부터 일본제국 패망까지 과정을 풀이하기보다는 21세기 이후 우경화로 건너뛰어 현재 자민당 정권의 극우화 열풍을 조명한다. 100년 전의 학살로부터 반성하지 않고 또다시 강대국으로 도약을 꿈꾸는 일본에 대한 경계와 우려를 표하려는 태도다.

그런 제작진의 의도와 입장은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간토대학살 당시 두 개의 사건을 언급하고자 한다. 물론 대립이 아니라 보완의 의도이다.

첫 번째. '후쿠다촌(후쿠다무라)' 사건이다. 15명의 시코쿠 출신 약장수 행상이 치바 현을 지나던 중에 시골 마을에서 200여 명의 자경단에게 조선인으로 오해를 받고, 임산부와 어린아이들 포함해 떼죽음을 당한 참극이다. 일본인이지만 시코쿠 사투리 억양 탓에 일어난 일이다(이 사건은 2023년 일본에서 개봉해 반향을 일으켰던 모리 타츠야 감독의 <1923년 9월>이 생생하게 다뤘다).

두 번째. '아마카스' 사건이다. 일본군 특무장교가 대지진의 혼란을 기회로 삼아 한창 확산하던 사회주의/무정부주의 계열 활동가들을 고문 살해했다 발각된 사례다. 조선인이 '불령선인' 대표이긴 했으나, 다른 소수민족 및 국내 좌파 운동가에게도 전가의 보도로 악용된 것이다. 석연찮은 특사로 풀려난 아마카스는 괴뢰 만주국의 흑막으로 화려하게 부활한다. 제국주의 일본의 광기는 내국인 외국인 가리지 않았던 생생한 예시다. 영화가 대학살 전후의 일본 사회 내 지형을 조금 더 환기했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기억투쟁의 결과가 다가올 한일관계 미래를 규정하리라
 
"1923 간토대학살"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1923 간토대학살"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영화특별시SMC

 
그러게 거대한 재앙을 불러온 간토대학살이 100년이 지나 잊히고 있음을 제작진은 목놓아 호소하려 한다. 그렇지만 영화의 주역이라 할 일본 내 양심적 지식인과 풀뿌리 사회단체의 진실을 밝히고 기억하려는 노력은 아무리 숨기려 해도 진실은 결국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증명처럼 읽힌다. 재일동포와 유가족 외에도 평범한 시민활동가와 자발적 참여자가 수십 년 동안 끈질기게 수집한 자료와 일상에서 벌이는 활동은 결코 만만한 수준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일종의 '기억투쟁'이 형성되는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혐한 극우단체와 평화운동 단체는 곧잘 거리에서 충돌한다. 극우단체 이름은 '산들바람', 평화단체 이름은 '봉선화'다. 둘 다 긍정적인 어감을 띠지만, 그 본질은 딴판이다. 100년 전의 비극은 그저 바람에 실어 망각하자는 일본 내 우경화 광풍 vs 봉선화의 선명한 색깔처럼 과거의 상흔은 지울 수 없다는 역사의 교훈이 충돌하는 현장은 미래를 위해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관객에게 질문한다.

영화에선 일본 내 역사전쟁을 중심축으로 잡기에, 한국 사회 내에선 간토대학살에 대한 이견이나 논쟁은 언급되지 않는다. 하지만 참극으로부터 1세기가 지난 2024년 대한민국 내 상황은 영화가 그리는 일치된 여론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현실의 극적 변화가 영화의 제작 의도를 초월하는 사례가 될 테다. 기이한 역사 수정주의가 독립기념관을 감싸고 먹구름처럼 요설을 퍼뜨리려 획책한다. 한번 전염된 광기는 겉잡을 수 없이 폭주하게 마련이다. 역설적으로 민주주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그런 위험은 더 확대되었다. '이성이 잠들면 요괴가 눈 뜬다'라는 제목이 붙은 고야의 그림처럼 성찰할 용기를 갖춰야만 거짓 선동과 혐오를 방어할 수 있다. 일본 내 양심세력이 이를 악물고 매달리는 1923년의 교훈이 바로 그런 게 아닐까.

<작품정보>

1923 간토대학살
2024 | 한국 | 다큐멘터리
2024.08.15. 개봉 | 116분 | 12세 관람가
감독 김태영, 최규석
출연 니시자키 마사오, 세키하라 마사히로
제작: 김태영, (주)인디컴, 스튜디오 반
배급 ㈜영화특별시SMC
공동 기획 시민모임 독립
기획 홍보 문화예술기획 시선 (강욱천)
공동 제공 가톨릭문화원, 영화사청어람, (주)서울무비웍스
1923간토대학살 김태영감독 최규석감독 니시자키마사오 세키가라마사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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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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