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라디오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함께 제작한 특집 공개방송 “여름날의 재회”의 모습.
문화방송
이제 정은임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려올 차례. 오디오 기업 수퍼톤이 인공지능(AI) 기술을 지원한 덕분에 우리가 기억하는 정은임의 목소리를 흡사하게 들을 수 있다는 안내가 흐른 후, 정말로 익숙한 시그널, 영화 <아리조나 드림>의 OST, 'Old Home Movie'가 흘러나왔다. 오래 전 FM 영화음악의 그 시그널이었다.
그리고 정은임 아나운서는 '손 때'를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때'라는 단어는 긍정적이지 못하지만, 유일하게 '손 때'라는 말은 사람들에 좋게 받아들여진다는 이야기. 그리고 'FM 영화음악 정은임입니다'의 마지막 전파가 실린 이후 20년이 지났음에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가 '손 때'였음을 그의 목소리는 이야기했다.
20년 만에 돌아온 'FM 영화음악 정은임입니다'의 첫 곡은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의 Time. 본인이 다시 돌아왔음을 알리는,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의 소회를 이야기하는 정은임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여전한 듯 했다. 안테나를 뽑아 듣던 라디오는 음성인식도 되는 '카오디오'가 되고, 스마트폰 속 라디오 어플리케이션이 되었지만.
특히 사서함에 들어온 엽서와 '하이텔' 대신 인스타그램과 방송국을 통해 '아이디'로 접속한 사람들의 '20년 동안 그리웠다'는 사연을 말할 때, 그리고 '팟캐스트로 듣곤 했다'는 청취자들의 편지를 읽을 때는 정은임 아나운서가 지금 생방송 라디오 부스에 있는 듯했다.
'FM 영화음악 정은임입니다'의 일요일 새벽을 상징했던 코너, '귀로 보는 영화 한 편'도 이어졌다. 그것도 2013년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영화 < Her >로. 영화와 대사, OST에 맞추어 영화를 흐르듯 이야기해주는 정은임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인공지능을 다룬 영화를 이야기하며 마치 청취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했다.
너무나도 짧은 한 시간이 지났다. 정은임 아나운서는 비가 오는 계절에 반가운 사람이 찾아 잠시 머물다 가는 내용을 담은 영화라며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소개했다. 그러며 그는 "비록 짧은 재회였지만 잊을 수 없는 시간을 보낸 이의 손에 남은 것은 네잎클로버 하나"라며, 오늘의 한 시간이 행운과도 같은 시간이었음을 알렸다.
"오늘 한 시간의 행운을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저는 이제 돌아갈게요. 하지만 여러분께서 저와 함께 했던 순간을 떠올릴때마다 지금 흐르는 곡의 제목처럼 시간을 넘어서 다시 여러분의 마음 속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기억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저는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AI라고는 해도 울음을 참는 듯한 목소리에 이 방송이 지나면 진짜로 영영 'FM영화음악 정은임입니다'을 만날 수 없다는 생각이 엄습했다. 한 시간의 짧은 재회를 마친 '정영음'의 끝곡은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OST, '시간을 넘어서'. 감미로운 선율과 함께 휘발된 정은임의 목소리와 함께 여름날의 재회가 마무리되었다.
잊지 못했던 20년, 드디어 찾았던 '네잎클로버' 같았던 방송
이어 밤 11시 송출된 3부에서는 배우 정은채와 변영주·김태용·김초희까지, 세 명의 영화감독의 조합으로 지난 7월 진행되었던 공개방송 실황이 송출되었다. 'FM 영화음악 정은임입니다'을 둘러싼 추억, 변영주 감독의 '정영음' 출연 당시 에피소드가 오가는 한편, '정영음'을 기억하는 청취자들의 이야기도 이어졌다.
특별한 시상식도 이어졌다. MBC 안형준 사장이 정은임 아나운서의 아버지, 그릭 가족들에게 골든마우스 어워즈를 수상한 것. 보통 20년 이상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받을 수 있는 '골든마우스'지만, '정영음'과 함께 했던 씨네필들이 지금의 한국 영화를 이끄는 대들보가 되었기에 특별히 수상할 수 있게 되었다고.
<정은임 아나운서 20주기 특집방송 - 여름날의 재회>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3년 동안, 그것도 새벽 세 시부터 네 시까지의 '암흑 시간대'에 전파에 실렸던 라디오 프로그램을 여전히 사람들이 추억하고, 그리고 그 마음이 모여 큰 냇물을 이룰 정도였음을 느꼈던 기획이었다.
정은임 아나운서가 불의의 사고로 운명한 지 무려 20년이 지난 지금에야 결실을 맺었다는 것이 유일한 아쉬움이겠지만, 그럼에도 발전한 기술은 30년 전, 그리고 20년 전 전파에만 한정되었던 라디오와 '카세트테이프'로 만났던 그를 2024년의 AI로 되살려 내 인터넷으로, SNS로 다시 만났다는 점이 너무나도 반가웠다.
'영화에 진심이었던 DJ' 정은임을 잊지 못했던 사람도, 그리고 잠시나마 학창시절의 추억으로 잊고 살았던 사람도 딱 세 시간 만큼은 정은임이라는 이름을, 그와 함께 누구보다도 영화에 미쳤던 시절을 다시금 또렷이 떠올릴 수 있었다는 점. 그것 하나만으로 사람들에게 '네잎클로버' 같았던 여름날의 재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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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이야기를 찾으면 하나의 심장이 뛰고, 스포츠의 감동적인 모습에 또 하나의 심장이 뛰는 사람. 철도부터 도로, 컬링, 럭비, 그리고 수많은 종목들... 과분한 것을 알면서도 현장의 즐거움을 알기에 양쪽 손에 모두 쥐고 싶어하는, 여전히 '라디오 스타'를 꿈꾸는 욕심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