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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새별이' 위한 영화 됐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영화 <샤인> 정은경·송지온 배우

24.08.02 15:52최종업데이트24.08.03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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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3일 오전 9시 50분]
 
 영화 <샤인>의 두 주인공 송지온·정은경 배우.
영화 <샤인>의 두 주인공 송지온·정은경 배우. 고요한
  
"세상의 모든 새별이를 위한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잠시 인터뷰에 동석한 박석영 감독이 특유의 푸근한 미소로 영화 <샤인> 속 아역 '새별'(송지온)의 의미를 되짚었다. 아역 송지온 배우 본인의 언어를 박 감독이 대신 전달해줬다. 또 그는 예전부터 이해인 수녀님을 동경해 언젠가 수녀님을 담는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는데, 다섯 번째 장편영화 <샤인>에서 이 바람을 이뤘다.
 
지난달 31일 개봉한 <샤인>은 '꽃 3부작' <들꽃>과 <스틸 플라워>, <재꽃>으로 독립영화계에 잘 알려진 박석영 감독의 다섯 번째 장편이다. <바람의 언덕> 이후 4년 만에 관객들과 만나는 신작이기도 하다. 제목과는 달리 거창한 조명도 거의 없이 등장인물들을 환하게 고루 비추는 <샤인>은 수녀와 고등학생들, 그리고 아이가 주요 인물인 단출하지만 깊이 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제주 북촌리와 제주 바다를 배경으로 한다. 각 인물의 선의 속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통해 인물들이 단단해져 가는 과정을 담아낸다. 상실로 상처를 겪은 아이를 위하려는 어른이 있고, 또 자신도 아이이며 더 어린아이를 돌보며 이별을 겪고 극복하려는 소녀가 나온다. 데뷔 10년 차 박석영 감독의 <샤인>은 그렇게 이별과 상처를 극복하는 사람과 제주의 바람과 빛, 꽃이 조화를 이룬 영화다.

영화에서 배우 정은경은 스텔라 수녀를 연기했다. 스텔라 수녀는 극적 갈등의 중심이 되는 인물인 예선(장해금)과 아이들을 '바라볼 줄 아는' 어른이다. 정은경 배우는 <샤인> 속에서 중심을 잡으면서 전개를 이어간다. <재꽃>, <바람의 언덕>에 이어 장편으론 박 감독과 세번째 만남이다. 

<샤인> 속 북촌리 마을과 수녀원으로 어느 순간 아름답게 들어온 새별을 연기한 송지온은 이번에 데뷔한 신인배우이다. 카메라 앞에 서 본적도, 연기자가 꿈인 적도 없는 송지온은 별도의 오디션 없이 제주에서 캐스팅한 귀한 배우다. 개봉 직후에는 서울에서 진행되는 관객과의 대화에 씩씩하게 참여하고 있다.
 
영화 개봉 직전인 지난달 29일, 서울 광화문 에뮤시네마에서 배우 정은경과 송지온을 만났다. <샤인>의 여러 인물들 중 가장 큰 어른과 가장 나이 어린 배우의 만남 속에서 두 배우는 따뜻한 대화를 이어갔다. 
 
수녀처럼, 배우처럼, 정은경처럼
 
 영화 <샤인>에서 스텔라 수녀를 연기한 정은경 배우.
영화 <샤인>에서 스텔라 수녀를 연기한 정은경 배우. 고요한
 
"(제주라는) 장소, 공간은 재밌었는데, 수녀 연기를 하는 일은 또 쉽지 않았어요(웃음)."
 
영화 속에서 수녀복을 단 한 번도 벗는 장면이 없으니 어려움을 토로할 만한데 그는 펜션에서 다 같이 먹고 자며 촬영한 현장은 재밌었다고 말했다. 박석영 감독은 아역 배우들의 여름 방학 기간에 맞춰 2년 전 여름 북촌리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정은경 배우에게 수녀 연기에 대해 물었다.
 
"테레사라는 수녀님이 '그냥 자유롭게 해도 된다'라고 했는데, 그래도 절제가 필요했어요. 내 감정보다 타인을 위하는 수녀의 감정을 가져가야기에 부담감이 좀 있었죠. 연기할 때, 정은경이라는 사람의 어떤 점은 버리고,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을 떠올려야 하니까요. 연기로 그걸 보여주는 건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문득문득 눈물이 나기도 했어요. 실제 나라는 사람은 굉장히 즉흥적이고 변덕도 심하고 직설적이거든요. 그래도 새로운 걸 하는 건 재밌었어요. 사람이 커지는 거 같기도 하고. 에너지를 분출해서 커진다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바라본다는 점에서요."
 
큰 어른, 수녀 역할을 맡은 그는 더 큰 감정이 필요했다고 했다. 가끔 '연기를 제대로 하는 건가'하는 의문이 들어 박석영 감독과 많은 얘기를 나눴다. 
 
"수녀님들이 옷으로 자기 몸을 다 가리잖아요. 그렇게 숨겨놓은 것처럼 드러내지 말고 연기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막상 해 보니까 대본에서 보거나 감독님한테 들었던 거 보다 너무 역할이 큰 거야. 근데 해 보니까 또 재밌어요(웃음). 저 같은 경우 굉장히 사적인 순간, 그런 관계들을 떠올리면서 연결하며 훈련했는데, 이번에는 좀 달랐죠."
 
전작 <바람의 언덕>에서 그는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감정을 드러냈는데, <샤인>은 달랐다. 그가 연기한 너털웃음이 인상적인 스텔라 수녀는 하느님의 손길에 순리가 있을 거라 믿는 존재다. 이런 믿음이 <샤인>을 지탱하는 감정이기도 하다. 무더운 여름 제주에서의 촬영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갱년기를 겪어 쉽지 않았지만 오랜 시간 함께한 감독과의 작품이기에 버틸 수 있었다. 
 
"감독님이 배우들에게 잘해주세요. 현장에서도 배우의 감정이 상할 만한 것들은 처음부터 차단하고. 그러다 보니 다른 현장 어디를 가나 박 감독님과 비교하게 돼요. 어린애 마음처럼 감독님한테 빨리 달려가고 싶고.
 
그렇게 마음을 의지하는데 또 감독님은 사적인 대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으세요(웃음). 오직 영화만을 위해서 얘기를 나누니까 어떤 냉정함을 느낄 때도 있거든요. 근데 알고 보면 알고 보면 감독님이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좋은 일도 많이 하셨어요. 배우와 스태프, 배우와 감독의 관계가 아니까 인간으로서 애정이 느껴지죠."

 
제주에서 닿은 인연, 마법 같은 순간
 
 영화 <샤인>에서 새별을 연기한 송지온 배우.
영화 <샤인>에서 새별을 연기한 송지온 배우. 샤인
 
때로 그 존재만으로 스크린을, 현장을 환하게 비추는 사람이 있다. <샤인> 속 스크린 안팎의 '새별이'가 그랬다. <샤인>으로 데뷔한 2017년생 송지온 배우다.
 
새별은 엄마와 떨어져 갑자기 성당에 나타나 수녀님, 예선과 함께 살게 된다. 영화 속 예선에게 선물과 같은 아이가 된 새별은 예선이 거짓말을 하게 만드는 존재이기도 하다. 새별은 선의의 거짓말을 하거나 욕망을 드러내는 아이들과 그런 아이들을 지켜가면서도 딜레마에 빠지는 어른들 속에서 반짝인다.

현실의 송지온 배우는 승마선수를 꿈꾼다. 지금 생활하는 제주도가 좋은 건, 숲도 있고 바다도 많아서 동물들을 많이 볼 수 있다고도 한다. 영화 찍을 땐 현장이 집과 멀어서 차를 타는 게 힘들었단다. 그래도 언제나 해맑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연기가 뭐냐고요?) 그냥 수녀님이랑 논 거(웃음). (촬영했을 땐) 내가 새별이로 변신하는 거 같아서 재밌었어(웃음). 새별이 놀이를 한 거예요. 역할놀이 할 때, 내가 공주가 되는 느낌인데 그런 것 같고요."
 
2년 전, 6살 때 촬영했던 '새별이'는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 됐다. 학교에서 친구와 선생님을 만날 때와는 다르게 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나는 '배우'가 됐다. 카메라 앞에서는 동선을 지키며 뛰어놀았다. 무대에서 관객과의 대화에 서기도 했다. 수줍어서 낯선 기자 앞에서 말도 잘 안 하는 아이는 어떻게 카메라를 잊고 연기할 수 있었을까. 정은경 배우가 대신 설명했다. 
 
"지온이는 촬영 때도 그렇고 말이 많지 않아요. 엄마하고 떨어지는 것도 힘들어하고. 이렇게 아기 같은데 막상 슛이 들어가면 엄마도 보지 않고 상황에 적응을 너무 잘해요. 카메라하고 굉장히 친한 것 같아. 카메라가 엄마 다음인 것 같고."
 
촬영장에서 수녀를 연기한 배우들과 놀던 새별이는 <샤인>에선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오디션 없이 새별이를 연기할 배우를 제주에서 만난 건 운명이었다. 송지온 배우도 박 감독이 볼 때마다 웃어서 좋았단다. 영화는 시나리오 변경돼 결국 '새별이들의 아픔을 치료해 주는 이야기'로 완성됐다. 초등학교 1학년 배우가 자신의 얼굴을 극장에서 보는 일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내 얼굴이 크게 나오니까 좋았어요(웃음). (GV 무대에 서니까) 나도 모르게 무서웠어요. 처음 본 어른들이 다 나를 쳐다보니까. (그 관객들은) 우리가 영화를 찍을 때는 없었잖아. (관객들은) 배우들이 보고 싶어서 온 것 같아요."
 
<샤인>의 미래 
 
 영화 <샤인>의 정은경 배우.
영화 <샤인>의 정은경 배우. 고요한
 
"박석영 감독님은 글을 쓰며 배우들의 진짜 모습들을 반영해서 작품을 만들어요. 내가 미처 모르는 어떤 내 모습을 아는 거 같아요. 그래서 자신을 좀 관리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요(웃음). <샤인>에서는 특히 대사가 참 좋아요. 감독님이 제게 준 대사들 하나하나가 다 아름답고 어떤 울림이 있었어요. 동시에 촬영 들어가서는 그런 대사들에 너무 깊이 감정을 담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실감을 줘야 하니까요. 또 대사 전달이 연기의 전부는 아니니까요. 수녀님이니까 너무 감정에 매몰되지 않으면서도 현실감을 주고 싶었죠. 그래서 되도록 나의 감정은 버리자고 생각했어요."
 
배우란 직업의 숙명이 그렇듯 연기할 때 긴장감, 현실감, 균형감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오랫동안 연극배우로 활동한 정은경도 마찬가지다. "영화를 볼 때마다 감독의 의도가 또 다르게 보인다"는 고백을 하는 정은경 배우를 바라보던 박석영 감독이 한마디 거들었다.
 
"영화를 찍기 전에, 내게 정은경 배우님이 있고 (스텔라 수녀를 연기한) 장선 배우님이 있으니까. 그리고 (영화에 나오는) 해금이는 같이 작업한 지 오래돼 마음으로 굉장히 의지해요. (촬영할 때의) 날씨도 그냥 받아들인다는 마음으로 하는데, 이 영화는 전체 매 순간을 인물들과 배우들을 온전히 받아들이면서 찍었어요."
 
<샤인>은 인물들의 마음과 그 마음을 자연 속에 담아내려는 진심을 정적인 화면과 따스한 음악으로 풀어낸다. 그 예쁜 마음들 속에서도 가끔은 어쩔 수 없는 갈등도 느껴진다. 예쁜 데다 사려 깊은 마음을 전하고 싶은 영화다.
 
<샤인>을 본 관객들은 궁금할 수도 있다. 과연 이 딜레마를 겪은 인간들이 어떻게 살지, 또 어떻게 살고 있을지. 새별이는 엄마와 행복할 수 있을지, 스텔라 수녀는 아프지 않고 여전히 씩씩할지 말이다. 박석영 감독이 오래 품고 있던 <샤인>이 배우들과 또 어떤 마법 같은 방식으로 진화해 나갈지, 혹시 '꽃 3부작'처럼 발전해 나가지는 않을지 벌써 궁금해진다.
 
 영화 <샤인>의 송지온 배우.
영화 <샤인>의 송지온 배우. 고요한
샤인 박석영 송지온 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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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현 영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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