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공연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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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 되기 위한 고군분투
김동연 연출가는 <젠틀맨스 가이드>라는 코미디 뮤지컬을 이야기하며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을 인용했다. 뮤지컬을 보다 보면 왜 연출가가 채플린의 말을 인용했는지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백작이 되어야만 하고, 백작이 되기 위해 자신보다 앞선 후계자들을 살해해야 하는 몬티 나바로, 그리고 몬티에 의해 살해당할 후계자들의 운명은 비극적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코미디로 포장되기에 희극처럼 보인다.
비극과 희극이 교차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몬티의 가난에서 시작된다. 몬티는 가난한 탓에 모두에게 무시당한다. 자신이 다이스퀴스 가문의 후계자임을 알게 되고, 다이스퀴스 가문에 도움을 청하는 서한을 보내지만 조롱만 당한다. 후계자 중 한 명인 '애스퀴스 다이스퀴스 2세'는 몬티에게 냄새가 난다고도 한다.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송강호 분) 가족을 상징하는 '가난의 냄새'가 연상되는 장면이다.
여기서 무시당하는 사람(몬티)보다 더 우스꽝스러운 무시하는 사람(다이스퀴스)의 모습은 웃음을 자아낸다. 오히려 몬티는 세련됐고, 후계자들은 어딘가 엉성하다. 웃으며 지나칠 수 있는 이 장면을 좀 더 들여다보면, 기득권자가 다른 이들을 무시하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사회학자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와 존 스콧슨은 "기득권자는 자신의 세계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낙인을 찍고 모욕을 준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극에서도 이런 장면은 꾸준히 등장한다.
이후 후계 순위가 점차 상승한 몬티가 은행원이라는 직업을 갖게 되고, 번듯한 옷을 차려입으니 사람들은 더 이상 무시하지 않는다. 몬티는 어느덧 기득권에 편입됐다. 사회학자 엘리아스가 자신의 대표작 <문명화 과정>에서 열거한 상류층의 문화를 조금씩 체득했기 때문이다. 계획대로 일이 착착 진행되는 몬티 앞엔 백작 지위와 인정만이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