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매큘레이트> 스틸컷
네온
작중 주인공 세실리아는 아직 이탈리아어에 능통하지 않은 미국 출신의 인물이다. 따라서 세실리아는 이야기 전개 내내 다른 등장인물들의 이탈리아어 대화를 알아듣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2003년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와 유사한, '언어적 소외'를 통해 외로움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이 성녀로 추앙받거나 창녀라는 소리를 듣는 세실리아의 여정을 보면, 여성·소수자 당사자들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 정치적 논쟁 현장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이외에도 <이매큘레이트>는 세실리아의 임신을 둘러싼 이견을 보이는 수녀를 정신병자로 몰아가는 상황이나, 예수의 상처를 예로 들며 '고난은 사랑이다'라고 강조하는 수녀원장의 모습을 통해 여성의 목소리를 원천 차단하는 종교적 억압을 강조하기도 한다.
비슷한 소재를 다룬 <오멘: 저주의 시작>이 악마나 빙의와 같은 장르적 특성을 통해 해당 요소를 부각한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한편 <이매큘레이트>는 초자연적 요소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자칫 약해질 수 있는 호러 장르의 특성을 이따금 '툭 튀어나오는' 점프 스캐어, 그리고 단단한 심리적 묘사로 대체한다.
시드니 스위니가 직접 나섰다
<이매큘레이트>는 작품 자체만 놓고 보아도 완성도 있는 영화라고 평할 수 있지만, 본작이 제작되기까지의 과정은 이 영화의 특별함에 한 층위를 더해 준다.
주연을 맡은 시드니 스위니는 본작의 프로듀서로도 참여했는데, 9년 전 <이매큘레이트>의 원안이 되는 영화 오디션을 보았으나 제작이 불발됐다고 한다. 이후 <유포리아> 그리고 <핸드메이즈 테일> 등의 작품으로 몸값을 올린 후 어린 시절 자신의 마음을 끌었던 각본을 다시 찾아, 약간의 각색 끝에 <이매큘레이트>를 다시 만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영화의 제작자로 참여하는 것이 단순한 '금전적 지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할리우드에서 프로듀서란 창작 과정에도 깊이 관여하는 존재다. 데이비드 린치 등 작가주의 감독들도 스튜디오·프로듀서와의 갈등 끝에 작품을 수정한 적이 있을 정도다. 이러한 프로듀서와 창작자 간의 괴리는 미 영화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기도 했다. 하지만 시드니 스위니를 비롯한 배우 당사자들이 프로듀싱에 직접 나서면서, 프로듀서-창작자 사이의 경계는 나날이 더 허물어지고 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포인트는 할리우드의 여성 배우들이 이러한 프로듀싱·창작의 세계에 직접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엠마 스톤은 최근 본인이 주연한 영화 <가여운 것들>의 프로듀서를 직접 맡았고, <듄: 파트 2>나 <챌린저스> 등으로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젠데이아는 영화 촬영장에서 제작에 대해 배우며 감독 데뷔작을 준비하고 있다는 인터뷰를 한 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