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클럽"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
엠엔엠인터내셔널㈜
40년이 다 되어 지각 도착한 영화는 그 사연 많은 상륙 과정에 걸맞게 놀라운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체감한 것들을 활자로 '형언'하기란 지극히 어려운 노릇이다. 이미지를 언어로 전환하는 영화 문법과 이를 필사적으로 텍스트로 풀려는 과정 사이의 간극이 어느 때보다 더 심각하게 '통곡의 벽'처럼 작동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구구절절 설명을 붙이고 극중 누가 이랬다 저랬다 언급하는 건 그다지 의미가 없어 보인다. <태풍 클럽>을 보기 전인 예비관객들에겐 망설이지 말고 얼른 경험해보시라 권하면 족할 일이다. 그래도 노파심에서 몇 줄만 더 첨부하면 대강 이렇다.
① 40년 전 구닥다리 일본 청춘물은 그저 일본영화 역사 한 구석에 기록된 화석 같은 것 아니냐?
⇒ 어떤 영화는 시공간을 초월해 특정한 시기, 특정한 체험을 공유하는 이들에게 울림을 주는데 <태풍 클럽>이 바로 그런 영화다.
②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의 과거 세대 이야기를 지금 한국 관객이 과연 온전히 수용할 수 있을까?
⇒ 앞서 몇 차례 언급한 것처럼, 한국과 일본은 서로 앙금이 가득하지만, 역설적으로 서로 떼어내기 힘들 만큼 뒤엉켜 있기도 하다. 현재 한국 사회의 구조들, 특히 개선해야 할 문제들의 상당수가 일제강점기의 강제로 떠안은 유산이기에 시대를 초월해 익숙한 풍경으로 가득하니 걱정할 필요 하나도 없다.
③ 10대 청소년들의 고삐 풀린 일탈을 보는 데 거부감이 들 수 있지 않을까?
⇒ 이 영화는 15세 관람가다. 즉 실제 영화 속 주인공들과 동년배들이 아슬아슬하게 못 볼 수도 있다. 자극적이고 당황스러운 순간이 제법 있고 그 때문에 관념과 세태의 변화 영향이 없지는 않지만, 영화 속 선정적/폭력적 묘사는 모두 꼭 필요해서, 그리고 다양한 상징과 의미로 유추 가능한 '예술적 표현'의 영역에 속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1980년대 일본 사회에 대한 이해도가 조금 더 높거나, 관객이 개별적으로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보냈거나, 영화 속 시골 학교와 유사한 분위기를 체험했다면 좀 더 민감하게 <태풍 클럽>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체감할 수 있겠지만, 크게 중요하진 않아 보인다. 워낙 40년 전 일본 시골 중학교 청춘들이 겪던 문제와 같은 시기에 한국의 청춘들이 고뇌하던 문제는 큰 궤에서 별로 다를 바가 없고, 지금의 청소년들 역시 근본적으로 영화 속 그들이 처했던 상황과 동일선에 서 있기 때문일 테다.
겉으로는 풍요의 시대라지만 그 안에 곪아 있던 그저 안 보이게 봉합된 어른들이 망쳐놓은 세계에 곧이곧대로 순응하지 않겠다는 청년세대의 저항이 순수한 형태와 기운으로 이 영화 전체에 넘실대고 있다. 참으로 기이한 청춘 영화이자 어떤 궁극의 결정체를 목격하고 말았다. 아마 오랫동안 이 영화의 몇몇 장면들은 유령처럼 출몰할 것 같다. 시간의 풍화를 견디고 마침내 도착한 영화를 체험하고 나면 필자의 장광설이 솔직한 경탄에서 비롯된 점만은 공감하리라 확신한다.
마침내 수많은 현대 일본영화의 거장들이 이 영화가 있었기에 자신들이 존재한다며 상찬을 퍼붓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글자로는 불가능하지만,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야만 접근 가능한 '현대영화'의 모든 게 <태풍 클럽>에서 확인되기 때문이다. 과장 좀 보태자면 1960년대에 <네멋대로 해라>가 프랑스에서 등장한 것에 비길 정도다. 그저 경이로운 영화를 목격하는 행운을 며칠 먼저 누린 이의 호들갑으로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길.
<작품정보>
태풍클럽 Taifu Club
台風クラブ
1985│일본│드라마, 로맨스
2024.06.26. 개봉│114분│15세 관람가
감독 소마이 신지
주연 미카미 유이치(미카미 쿄이치 역), 쿠도 유키(타카미 리에 역),
미우라 토모카즈(우메미야 선생 역)
출연 베니바야시 시게루(시미즈 켄 역), 다테 사부로(오카베 역),
이시이 토미코(야기사와 카츠에 역), 코바야시 카오리(야기사와 준코 역),
마츠나가 토시유키(야마다 아키라 역), 오미 토시노리(코바야시 역),
오니시 유카(오마치 미치코 역), 사토 마코토(히데오 역),
테라다 미노리(시미즈 류조 역), 후치자키 유리코(모리사키 미도리 역)
수입/배급 엠엔엠인터내셔널㈜
1985 59회 키네마 준보 베스트 10 일본 영화 베스트 4위,
1980년대 일본 영화 베스트 10 6위,
올타임 일본 영화 베스트 10 공동 10위
1985 1회 도쿄국제영화제 영 시네마 컴퍼티션 '도쿄 그랑프리'
1985 10회 호치영화상 남우조연상(미우라 토모카즈)
1986 7회 요코하마영화제 감독상, 남우조연상(미우라 토모카즈), 신인여우상(오니시 유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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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