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가 남녀 대표팀 모두 감독 자리가 공석이 된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남자 대표팀이 지난 2월 아시안컵을 끝으로 위르겐 클린스만이 경질된 이후 벌써 4개월이 되도록 아직 정식 감독을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여자 대표팀도 2019년 이후 4년 8개월간 함께 해왔던 콜린 벨 감독과의 계약을 상호합의하에 조기 종료하게 되면서 새로운 감독을 찾아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3월과 6월 남자대표팀의 북중미월드컵 2차예선 A매치 일정을 연이어 임시 감독 체제로 소화한 바 있다. 국내파인 황선홍 전 올림픽대표팀 감독(현 K리그 대전), 김도훈 전 울산 HD 감독이 '소방수'로 잠시 팀을 맡았다. 협회는 3월에는 국내파 감독, 6월에는 외국인 감독을 우선 순위로 하여 몇몇 후보들과 협상을 진행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무산됐다.
결국 원점에서 모든 협상을 다시 시작하기로 결정한 축구협회는 이번에는 국내피와 외국인 감독을 아울러 16명의 새로운 후보군을 선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KBS 등 일부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12인이었으나 21일 회의 이후 후보자를 좁히기는 커녕 오히려 16인으로 더 늘어났다. 협상 기간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여전히 후보군 정리도 이뤄지지 않은 모습은 우려를 자아낸다.
외국인 감독으로는 과거 전북 현대를 이끌었던 포르투갈 출신의 주제 모라이스 세파한 SC 감독, 국내파 중에는 6월 A매치에서 임시감독으로 대표팀을 이끌었던 김도훈 감독, 현재 K리그1 울산 HD를 이끌고 있는 홍명보 감독 등이 포함되었다는 소식이다.
공교롭게도 세 사람은 모두 K리그 전북과 울산의 전·현 감독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축구와 인연이 깊은 감독들인만큼 영입 가능성에도 '현실적인 후보'들이라는 평가다.
포르투갈 출신의 모라이스 감독은 세계적 명장 주제 무리뉴 감독(페네르바체)의 수석코치로 활약하며 포르투, 인테르밀란, 레알마드리드, 첼시 등 굵직한 팀에서 동행했다. 무리뉴와 일한 시기를 제외하면, 감독으로도 1999년부터 오랜 경력을 쌓아오며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등 여러 대륙을 두루 거쳤다.
모라이스 감독은 2019년부터 K리그 전북 현대의 지휘봉을 잡았다. 전북 시절은 모라이스의 감독 커리어에서도 가장 빛나는 시기로 꼽힌다. 모라이스 감독은 2년간 K리그1 2연패와 FA컵 우승 1회를 기록했다. 한국을 떠난 이후에는 중동으로 자리를 옮겨 사우디 알 힐랄을 거쳐 현재 이란 세파한의 지휘봉을 잡았다. 한국과 아시아 축구에 대한 이해도가 깊다는 것도 장점이다.
김도훈 감독은 울산 시절 2020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2022년 싱가포르 라이언시티의 감독직에 사임한 이후 한동안 공백기를 가졌으나, 최근에 임시감독으로 A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아 경기력에서 호평을 받으며 재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김도훈호는 싱가포르-중국과의의 A매치 2연전에서 무실점으로 연승을 거두며 3차에선 진출과 톱시드를 확정했다. 김도훈 감독은 대표팀의 최대강점인 손흥민과 이강인, 주민규, 황희찬 등 공격진을 모처럼 전술적으로 잘 활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홍명보 감독은 울산 HD를 리그 2연패로 이끌며 현재 K리그에서 가장 잘나가는 지도자다. 2012 런던올림픽과 2014년 브라질월드컵 대표팀을 이끌며 국제경험이 풍부하고, 축구협회 전무직을 역임하여 행정분야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노하우를 지녔다는 게 강점이다.
다만 축구팬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홍명보 감독은 이미 지난 3월에도 대표팀 감독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본인의 고사와 K리그 축구팬들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된바 있다. 홍 감독은 10년전인 브라질월드컵 당시 각종 구설수와 논란에 휘말리며 불명예 사임했던 아픈 기억이 많다. 무엇보다 현직 K리그 감독으로서 '축구대표팀의 감독 빼가기' 관행에 상처가 많았던 K리그팬들의 반응을 무시하고 또다시 후보군에 포함시켰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여론이 곱지 않다.
모라이스 감독은 커리어에서 보듯, 한 팀을 오랫동안 이끌지 못하고 여러 팀을 떠돌아다닌 '저니맨' 유형의 감독이다. 무리뉴의 코치 시절을 제외하고 그가 감독으로서 독자적으로 이룬 성과는 전북 시절이 거의 유일하다. 당시 전북은 최강희 전 감독이 구축해 놓은 우승전력을 그대로 물려받아 K리그를 연속 제패하던 최전성기였다.
전북을 떠나 단기계약으로 지휘봉을 잡은 알 힐랄에서는 단 3경기만에 리그 우승을 확정짓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유럽에서도 튀르키예, 그리스, 잉글랜드 3부 등 빅리그에서 감독직을 수행해본 경험이 없어서 선진축구의 트렌드를 접목시켜줄 만한 감독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김도훈 감독은 이전까지 이름도 거론되지 않다가 임시 감독 선임으로 갑자기 등장한 인물에 가깝다. 물론 임시감독으로서의 성과는 좋았지만, 아시아 최약체 2팀을 상대했던 2차예선만을 놓고 정식 감독에 앉히기에는 검증된 표본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축구협회는 지난 3월에도 임시 감독으로 태국 2연전을 이끌었던 황선홍 감독을 차기 정식 감독 후보로 검토했으나 정작 황 감독이 이끌었던 올림픽대표팀이 40년만의 올림픽 본선진출에 실패하면서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여기에 지난 5월에도 후보군에 포함되었으나 협상이 결렬된 스페인 출신 헤수스 카사스 이라크대표팀 감독도 또다시 후보군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굳이 한 번 실패한 인물에 손을 다시 벌리는 모양새도 궁색하고, 3차 예선을 앞두고 아시아 경쟁팀의 감독을 빼오려고 하는 모양새도 좋지 않다는 지적이다.
남자 대표팀은 9월부터 북중미월드컵 3차예선에 돌입한다. 톱시드를 받은 한국은 3차예선에서 조편성을 받아 6개팀중 상위 2위 안에 들어야 북중미월드컵 본선진출을 확정할 수 있다. 같은 톱시드의 아시아 최강인 일본과 이란은 피했지만 2-6포트에도 호주,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우즈베스키스탄, UAE 등 만만치 않은 상대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어서 방심은 금물이다.
3차예선부터 지휘봉을 잡아야 하는 신임 감독으로서는, 선수들을 점검하고 전술을 가다듬을 시간이 촉박하다. 축구협회로서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감독선임에 속도를 내야하는 상황이다. 축구협회는 차기 전력강화회의를 통하여 후보군을 좁히고 우선 협상대상을 선정하여 본격적인 협상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축구협회는 여자 대표팀 후임 감독 선임 일정에 대해서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지 않았다. 현재 전력강화위원회가 남자 축구대표팀 후임 감독을 찾는데도 정신이 없는 상황이라 여자 감독 선임은 당분간 뒤로 밀려날 가능성이 높다. 여자 대표팀은 파리올림픽 본선진출에 실패하며 당분간 출전할만한 국제대회 일정이 없고, 국제축구연맹(FIFA)이 정한 6-7월 A매치 기간에도 대표팀 소집과 경기일정을 잡지않았다.
또한 콜린 벨 감독이 마지막으로 지휘했던 최근 미국 원정에는 세계 최강 미국을 상대로 득점없이 7골을 내주며 2연패를 당하며 세계와의 격차만 실감해야 했다. 여자 대표팀 역시 여자 축구의 제한된 저변과 인력풀에서 세대교체와 국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새로운 코칭스태프 선임과 장기적인 계획 수립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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