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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이란-이스라엘의 오랜 악연

[리뷰] tvN 역사강연 <벌거벗은 세계사>

24.06.19 15:08최종업데이트24.06.19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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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Iran)과 이스라엘(Israel)은 중동의 오랜 앙숙이자 21세기 현대 국제사회에서 대표적인 국가간 주적(主敵, Main enemy) 관계로 유명하다. 지난 2024년 4월 1일, 이스라엘의 전격적인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 공습을 시작으로 악화된 양국의 분쟁은, 서로의 영토를 향한 연이은 보복공격으로 이어지며 '제 5차 중동전쟁'으로의 확전을 경계하는 국제사회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6월 18일 방송된 tvN 역사강연 <벌거벗은 세계사> 156회에서는 '친구에서 앙숙으로 이란-이스라엘 80년사'편을 통하여 중동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 이란과 이스라엘의 오랜 악연을 조명했다. 박현도 서강대 교수겸 유로메나 연구소장이 이날의 강연자로 나섰다.
 
이란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1948년 이스라엘이 UN(국제연합)의 승인을 받아 중동 지역의 팔레스타인 영토에 건국하면서 시작된다. 이슬람권인 대부분의 중동 국가들은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않았고, 이스라엘은 수 차례의 중동 전쟁(中東戰爭)을 치르며 중동국가들을 무력으로 격퇴해야 했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이란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지금과는 180도 달랐다. 당시 팔라비 왕조가 통치하던 시절의 이란은 백색핵명(급진적인 세속화 정책)을 추진하며 친서방적인 성향이 강한 국가였고, 중동국가로는 드물게 이스라엘에도 우호적이었다.
 
이란은 이슬람 국가로서는 튀르키예에 이어 두 번째 이스라엘을 국가로 승인하고 대사관을 설치하여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양국은 트랜스 이스라엘 파이프라인(Trans-Israel pipeline)을 건설하여 이란에서 건설된 석유를 이집트(수에즈 운하)를 거치지않고 이스라엘과 유럽으로 공급할수 있게 하여 경제적 협력을 강화했다. 또한 합동군사훈련과 공동 미사일 시스템을 개발하는 '프로젝트 플라워'을 추진하여 군사적으로도 밀접한 관계를 이어갔다.
 
하지만 1978년 이란에 '이슬람 혁명(Islamic Revolution)'이 발발하면서 상황이 안전히 바뀐다. 이슬람 종교 지도자들이 팔라비 왕조의 세속 왕정을 무너뜨리면서 이란은 국호를 현재의 '이란 이슬람 공화국(Islamic Republic of Iran)'으로 바꾸고 세계 최초로 이슬람 원리주의를 숭상하는 신정국가로 재탄생하게 된다.
 
이란은 중동 최대의 친미국가에서 하루아침에 반미국가로 돌아서게 되고, 미국과 밀접하던 이스라엘과의 관계도 적대적으로 바뀐다. 이란은 상징적인 조치로 테헤란에 있던 이스라엘 대사관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대표부'로 변경해 버렸고, 트랜스 이스라엘 파이프라인도 차단하며 모든 경제적-군사력 협력을 중단했다. 이에 이스라엘도 파이프라인 건설과 관련하여 이란에 갚아야 할 11억 달러 상당의 국가채무를 아직까지 갚지 않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양국의 갈등이 더욱 깊어진 계기는 '핵개발'을 둘러싼 대립이었다. 이란이 비밀리에 핵 개발을 추진해온 사실이 2002년 국제사회에 최초로 폭로되며, 이를 가장 강력하게 반대해온 이스라엘과의 관계는 더 악화된다.

또한 이란은 반서방-반이스라엘 노선을 강조해온 보수 강경파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지워버려야 한다"는 극언을 잇달아 내뱉었다. 이스라엘 역시 강경파를 대표하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13,17, 20대 총리)가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이스라엘의 최대 위협 세 가지로 오직 '이란'이라는 단어를 세 차례 반복할만큼 양국은 서로에 대한 적대감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2010년에는 이란의 핵개발 시설 프로그램이 스턱스넷(Stuxnet)이라는 인터넷 악성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아 심각한 피해를 입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는 악성 바이러스를 통한 사이버 공격이 물리적인 피해를 입히는 전쟁무기로 활용된 세계 최초의 사례이기도 했다. 이란은 이를 복구하느라 몇 년간 핵개발을 중단해야 했다. 이란은 그 배후에 이스라엘과 미국이 있다고 주장했으나 명확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2018년에는 이란 테헤란에 위치한 비밀시설에서 다량의 이란 핵기밀문서들이 이스라엘 스파이 요원들에게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은 네탸냐후 총리가 직접 기자회견에서 강탈해온 기밀자료들를 공개하며 이스라엘이 직접 자신들의 소행임을 인정했다. 이스라엘은 이란이 그동안을 거짓말을 하고 핵개발을 추진해왔다는 사실을 폭로하며 국제사회에 자신들의 정당성을 호소했다.
 
또한 핵개발 이후 이란의 주요 핵과학자들과 정보요원들이 의문의 암살을 당하는 사건들이 잇달아 발생한다. 특히 2020년 11월에는 '이란의 오펜하이머'로 불리우던 모흐센 파흐리자데가 총격을 받아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인공지능(AI)으로 표적을 파악하여 자동으로 기관단총이 움직이고 증거인멸을 위한 자폭 시스템까지 장착된 '킬러로봇'이 사용된 것으로 드러나 전세계인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범인의 정체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란 정부는 이 정도로 막대한 비용과 최첨단 기술이 동원된 암살작전의 배후에는 이스라엘이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한편 이란은 중동 지역의 반(反) 이스라엘 세력을 후원하여 대리전을 펼쳤다. 대표적인 사례로 '작은 이란'으로 불리우는 헤즈볼라(Hezbollah)는, 본래 레바논 남부의 무장투쟁조직으로 출발하여 2006년 이스라엘에 대한 로켓 공격으로 악명을 떨쳤다. 이란의 지원하에 세력과 명성을 키운 헤즈볼라는 이후 정당단체로 진화하여 레바논의 집권당까지 오르게 된다.
 
또한 이란은 헤즈볼라 외에도 시리아, 이라크,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등과 연대하여 이란을 종주국으로 하는 '시아 초승달 벨트'를 구축하여 중동에서 이스라엘을 포의하고 고립시키는 구도를 완성했다. 이들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있는 이란과 달리 이스라엘의 가까운 인접지역에서 압박하는 요충지를 차지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한편으로 이는 사실상의 비공식적인 '친이란 동맹'으로서, 이란이 중동의 어느 지역에서든 원하는대로 지원이 가능하고 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르단, 사우디, UAE 등 이스라엘을 곱게 보지않는 중동국가들조차 시아 초승달을 통하여 이란의 패권이 확대되는 것은 내심 경계하며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2010년대 들어 '아랍의 봄'과 함께 중동의 독재정권들이 잇달아 무너지기 시작했한다. 시아 초승달의 한 축을 담당했던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 역시 민주화 운동의 바람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란은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하며 반군에 맞섰고, 이스라엘은 반군을 지원했다. 여기에 미국과 러시아마저 개입하면서 '시리아 내전'은 사실상 강대국들의 중동 패권분쟁을 위한 국제적 대리전 양상으로 전락한다. 2013년 시작된 내전은 무려 11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사태 해결은 요원한 상황이다.
 
이란은 아사드 정권을 지원하며 시아 초승달 벨트를 지켜내는데 성공했을 뿐 아니라, 2014년에는 이란이 후원해온 또하나의 무장세력인 후티 반군이 예멘 집권에 성공하면서, 친이란 세력은 초승달에서 '시아 반달 벨트'로 규모와 영향력이 더욱 커지게 된다. 저마다 이해관계는 다르지만 이들의 공통적인 명분 하나는 이스라엘을 타도하고 팔레스타인을 독립과 해방시키는 것이다.
 
한편으로 이스라엘 역시 이란을 분열시키기 위하여 다양한 공작을 진행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쿠르드족이나 발로치스탄 등 이란으로부터 분리독립을 원하는 소수민족과 무장단체들을 은밀하게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4월, 이스라엘의 시리아주재 이란 영사관 공습 사건으로 인하여 그나마 간접적인 대리전 양상을 유지해왔던 양측의 대립은 이제 직접적인 전면전 양상으로 바뀌게 된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영사관이 아니라 민간 건물로 위장한 군사건물을 공격한 것"이라며 자신들의 공습을 정당화했다.

이란은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모하마드 레자 하자디 이란 혁명 수비대 지휘관 등 총 13명이 사망한다. 국제사회에서 영사관 공격은 주권국가에 대한 영토 침공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이란 최고 지도자인 알리 호세이니 하메네이도 이를 지적하며 이스라엘을 강력하게 규탄했다.
 
중동 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의 무리한 공습이 내부의 정치적 상황과도 관계된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네탸나후 정권은 2023년 시작된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으로 인한 무능과 책임론에 휘말리며 이스라엘 곳곳에서 퇴진시위가 일어날만큼 궁지에 몰려있었다. 네탸나후는 국내의 불만여론의 눈을 해외로 돌리기 위하여 확전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이란을 공격하는 도박을 걸었고, 실제로 이란 영사관 공습 직후 네탸냐후의 지지율은 잠시 상승세로 돌아선 것으로 나타났다.
 
분노한 이란은 보복을 예고했고 4월 13일 '진실의 약속'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이스라엘 본토에 드론 및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 지리적으로 떨어진 이란의 미사일 공격이 이스라엘을 타격하기 위해서는 인접국가들의 영공을 거쳐가야했고, 이란은 공격 72시간 전에 인접국가들에 사전 통보하며 영공을 비울 것을 미리 요청했다.
 
하지만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 역시 이란의 공격 사실을 미리 파악하고 있었다. 이스라엘 측은 자국이 자랑하는 최첨단 다중 방공시스템(아이언 돔, 다윗의 돌팔매, 애로우 2,3)으로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을 거의 대부분 격추했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이란의 공격은 이스라엘에 물리적으로 유의미한 타격을 입히지는 못했다는 게 군사 전문가들의 평가다.
 
다만 이란이 정말 노린 것은 따로 있었다. 이란이 이날 미사일 공습에 들인 비용은 한화로 약 330억에 불과했던 반면, 이스라엘이 최첨단 방공시스템으로 수비하는데 든 비용인 약 2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23년 기준 이스라엘 전체 국방예산(22조)의 10%에 가까운 비용을 단 하루만에 날린 셈이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공격은 막아냈지만 경제적으로는 오히려 적지않은 피해를 입은 꼴이 됐다.
 
국제사회는 이스라엘과 이란이 갈등이 격화하는데 우려의 시선을 금하지 못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중동국가들간의 직접적인 전면전은 이들이 최초인 데다 양국은 현재 다중동에서 1.2위를 다투는 군사강국들이다. 또한 이스라엘은 비공석적인 핵보유국이며 이란 역시 핵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오고 있는 국가다. 이란은 지난 4월 18일 '이스라엘의 모든 핵시설 위치를 파악하고 있으며 언제든 공격하여 이스라엘을 파괴할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은 4월 19일 이란의 핵시설을 포함한 주요 타깃에 보복공격을 단행했지만 이란이 어느 정도의 피해를 입었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일단 이란 측은 이스라엘의 공습을'장난감같은 공격'이라고 일축하며 핵시설 등 주요시설에 피해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으로 일각에서는 이스라엘이 이란을 상대로 더 큰 규모의 광범위한 보복 공격을 계획했으나 확전을 우려한 미국의 압박으로 공격규모를 축소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유대계의 정치적-사회적인 영향력이 강한 미국은 전통적으로 이스라엘을 배후에서 든든하게 후원해왔다. 하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 들어 중동 분쟁이 격화되면서 팔레스타인 민간인 학살 방치와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지원을 둘러싸고 지지층에서 조차 비판 여론이 격화되면서 최근에는 한 발 물러나 이스라엘과의 거리두기에 고심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란과 이스라엘 양측이 보복 공습전을 한번씩 주고받으며 일단 더 이상의 확전은 자제하는 분위기지만, 양국 국민들간의 적개심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현재 이란과 이스라엘 양국은 경쟁적으로 서로의 멸망 시기를 예언하며 저주하는 '종말의 카운트다운'까지 내걸 정도로 원한은 더욱 깊어졌다. 지난 5월 19일에는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헬기 추락 사고로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며, 또다시 배후세력을 둘러싼 음모론이 제기될만큼 양국의 긴장감은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달리고 있다.
 
"중동을 더 큰 전쟁으로 몰고가며 폭력의 소용돌이를 일으킬수 있는 모든 행동을 중단하기를 진심으로 호소합니다."

프란체스코 교황의 간절한 호소는 모든 세계인들의 공통된 염원일 것이다. 이란과 이스라엘 전쟁은 단순히 양 국가만의 분쟁이 아니라 넓게는 5차 중동전쟁과 세계 경제의 위기, 더 나아가서는 '3차 세계대전'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는 화약고라는 점에서 곧 지구촌 모두의 위기이기도 하다. 중동에 과연 진정한 '평화'라는 단어가 찾아올 날은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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