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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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우희는 <써니>의 광기 어린 불량학생 상미 역할을 소화하며 충무로의 떠오른 신예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 연출부 막내였던 스태프가 천우희의 연기에 감탄하여 "한국의 여자 게리 올드만(헐리우드의 성격파 배우)이 되어달라"고 쪽지로 응원의 덕담을 남긴 일화도 있다. 천우희는 "극중에서 써니 멤버들과 달리, 저는 주로 혼자 있으니까 외로워 보였나 보다. 스태프 분들이 저한테 편지를 많이 써주고 가셨다. 게리 올드만처럼 연기로 한 획을 그어달라는 말 같아서, 너무너무 감동이었다"고 회상하며 고마워했다.
<써니>는 천우희의 실제 인생에서도 중요한 전환점이 된 작품이다. "그 전까지는 행복하고 화목한 집안에서 착한 딸로 컸지만, 제 정체성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그런데 연기 현장에 와서 '천우희'라는 이름이 뭔가 쓰임이 있어지니까 그게 너무 좋았다. '내가 이 일을 계속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 역시 배우 천우희의 성장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천우희는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봉준호 감독이 '연기말고 이야기를 나누자, 나를 삼촌이라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해보라'고 하더라. 그래서 정말 일상대화하듯이 반말을 하면서 편하게 이야기했다. 그때 감독님이 '이 친구 참 특이하네'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라는 뒷이야기를 전하며 미소를 지었다.
한편으로 천우희는 오디션에 가서도 어떤 상황에서든 주눅들거나 당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하여 "그만큼 열심히 준비했으니까. 그래서 더 과감하게 할 수 있고 긴장하지 않는다"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천우희는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을 다룬 <한공주>를 통하여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는 쾌거를 이루며 톱배우의 반열에 오른다.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작은 영화가, 유명하지 않은 제가 상을 받다니"라고 말을 잇지 못하던 천우희의 솔직한 수상소감도 큰 화제가 됐다.
천우희는 <한공주>를 회상하며 "정말 제작비 없이 모든 분들이 마음 모아서 만든 작품이었다. 조금 어려운 이야기에 대중들이 귀기울여줄까 고민도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의 이야기가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천우희는 자신이 연기한 '한공주'라는 캐릭터가 지금도 유닌히 각별하다며 "단둘이서 기대고 의지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제가 항상 옆에 있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지금까지 제가 연기한 캐릭터들을 모두 떠나보냈지만 '공주는 내가 항상 지켜줘야지'라는 생각이 있었다. 소외되거나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나홍진 감독의 미스터리 공포영화 <곡성>에서는 선과 악이 모호한 미스터리의 여인 무명을 연기하며 또 한번의 과감한 연기변신을 선보이며 칸 영화제까지 입성했다. 같은 영화를 본 사람들 사이에서도 반응이 극명하게 엇갈릴만큼 다양한 해석을 낳은 작품이기도 하다.
대본을 읽을 때부터 너무 재미있어서 흠뻑 빠졌다는 천우희는, 인간을 벗어난 존재를 연기해야 했던 고민에 대하여 "이건 연기 스킬이 아니라 그냥 '존재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자신이 정의한 무명의 캐릭터를 설명했다.
천우희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대부분 평범하지 않고 극적인 성격이나 상황에 놓인 인물이 많았다. 그런 후배가 내심 걱정됐던 대선배 한석규는 천우희를 위하여 "사랑이란 게 가장 많은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인간의 다양한 면모를 담을 수 있는 게 사랑"이라고 설명하며 "네 나이 때 할 수 있는 사랑을 작품에서도 해보라"며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처음에는 사랑이야기를 굳이 연기로까지 하기에는 시시하다고 생각하던 천우희는 한석규의 조언을 듣고 "그래, 왜 그 생각을 못했지?"라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이후 천우희는 <멜로가 체질>에서 동시대 여성들의 감수성을 담아낸 코믹과 현실 멜로 연기로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