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검은 소년>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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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어린 나이 홀로 감당하기엔 벅찬 현실과 마주한 훈의 심적 변화를 미세한 움직임조차 놓칠 수 없다는 듯 현미경처럼 샅샅이 훑는다. 시종일관 안정감 있게 극을 끌고 나간 배우 안내상과 윤유선 덕분에 안진호의 연기는 날개를 단다. 안진호는 고립감 속에서 좌절과 혼돈을 감내하는 훈의 내면을 섬세한 연기력으로 승화해냈다. 앞으로가 기대되는 배우이다.
엄마와 아빠는 훈에게 오직 자신만 생각하라며 타이르지만, 정작 훈이 원하는 게 무언지 아무도 묻지 않는다. 두 사람의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달으면서 훈의 고립은 더욱 깊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훈은 무진을 떠나 소연에게 오라는 청을 완곡히 거절하고,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무진의 곁을 끝까지 지킨다. 가족의 소중함이 절실한 훈에게 아빠와의 동거란, 어쩌면 유일하게 남은, 가족을 이을 일말의 가능성 같은 것이었다. 훈은 무책임한 어른보다 마음 씀씀이가 깊은 아이였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997년 외환위기 무렵이다. 훈의 절친 병태 가정처럼 수많은 이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던 시절이다. 영화 <검은 소년>은 열린 결말로 끝을 맺지만, 결국 희망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비록 지금은 어두운 터널을 힘겹게 지나가고 있고, 기철로 상징되는 검은 유혹이 그를 계속해서 도발하지만, 그 어려웠다던 환란 시절을 어떻게든 헤쳐나온 서민들처럼 결국 훈은 모든 걸 떨쳐내고 터널 끝을 웃으면서 빠져나올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