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시네필이 몰렸던 1996년 2회 서울국제독립영화제 개막식. 대학로 동숭아트센터에서 열렸다.
인디라인 김대현 제공
저자에 따르면 시네필은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예술영화 제도화 과정에서 탄생한 이상적인 관객 개념이다. '시네필리아'는 영화에 대한 사랑을 뜻하며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담론을 전파하는 방식이다. 모두 서구에서 온 개념이지만 한국에서는 1950~1960년대 시네팬(cinefan), 1970년대 영화광, 1980년대 영화주의자, 1990년대 영화마니아 등으로 불렀다.
1990년대 후반 문화학교 서울이 '시네필'로 호명하기 시작한 이후 2000년대 들어 정성일 평론가에 의해 영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로서 우정과 연대를 뜻하는 용어로써 '시네필' 사용이 제안됐다.
한국에서 '시네필'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를 전후로 한 시기였다. 이들을 가벼이 볼 수 없는 이유는 2000년대 이후 한국영화가 세계적인 위상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박찬욱 감독과 봉준호 감독은 1980년~1990년대 영화에 심취했던 시네필 출신으로 첫 감독이 된 세대다. 이후 시네필 출신 영화인들은 한국영화의 중추로 발돋움해 왔다.
<시네필의 시대>는 한국의 시네마테크 문화를 현실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여기서 현실적이라는 건 서구적 기준과 시네마테크의 원칙적 기준과 달랐던 상황을 일컫는다. 물론 저자는 기존 연구를 존중한다는 전제를 깔고는 있으나, 시대적 분위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국적 특수성을 인정하고 재정립하려는 것은 기존 연구와는 다른 시선이다.
이선주 교수에 따르면 한국의 시네필 문화는 필름과 극장으로 이뤄진 문화가 아닌 비디오광 문화에 기반한다. 개인적인 비디오 관람이 아닌 공동체적으로 비디오테크에 모여서 영화보기가 시네필 문화의 심장이었다.
집에서 영화를 즐길 수 있는 홈비디오는 서구에서 1950년~1960년대 영화보기 경험의 고유함을 인식시키는 계기였다. 또 1990년대 예술영화관에서 주목받은 영화들의 경우 제작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 한국에 선보인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이를 한참 늦게 따라 한 것이어서 한국의 시네필 문화를 '시체 사랑'을 뜻하는 네크로필리아로 비유하는 시선도 있었다.
'압축성'과 '불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