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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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영국왕실은 윈저 왕조(House of Windsor)로 불린다. 하노버 왕조(House of Hanover, 1635-1901)의 마지막 군주였던 빅토리아 여왕(1819-1901)은 독일 출신의 앨버트 공작과 결혼하면서 남편의 가문을 따라 '작센 코부르크 고타'로 영국 왕조의 성이 바뀌게 되었다.
하지만 2차대전 시기에 접어들며 영국은 독일과 치열한 전쟁을 치렀고, 본래 독일계 혈통이었던 영국 왕실은 독일과의 단절을 국민들에게 확실하게 보여주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독일을 연상시키는 작센 코부르크 고타라는 이름 대신 가장 영국적인 이름을 찾던 영국 왕실은, 별궁이었던 윈저성을 이름을 따서 왕조의 이름을 개명한 것이 오늘날의 원저 왕조다.
윈저 왕조는 엘리자베스 2세(1926-2022) 여왕의 치세에 전성기를 맞이했다. 엘리자베스 2세의 본명은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 윈저였다. 여왕은 즉위와 동시에 공식 선언을 통하여 '자신과 자녀들은 물론 결혼한 후손들까지 성을 윈저로 사용할 것'을 명령했다. 윈저 왕조의 정통성을 지키겠다는 엘리자베스 2세의 굳은 의지의 표현이었다.
엘리자베스 2세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왕실의 권위를 내려놓고 국민들과 가까워질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여왕은 영국 군주로는 최초로 미디어 친화적인 정책을 펼쳐 1953년 6월 2일 자신의 대관식을 TV를 통하여 생중계하는가 하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여 왕실의 평범한 일상을 공개했다. 베일에 싸여있던 로열패밀리의 모습에서 벗어나 국민들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하여 노력했다.
이는 한편으로 미디어를 활용하여 왕실을 영국을 대표하는 존재로서 각인시키려는 계획이기도 했다. 영국 왕실과 로열패밀리를 향한 전 세계 대중의 관심은 크게 높아졌다.
하지만 한편으로 적극적인 미디어 노출은 윈저 왕조에게 예상치 못한 부작용도 불러왔다. 그동안 신비주의에 가려져왔던 영국 왕실의 어두운 이면과 스캔들도 하나둘씩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기품있고 고귀한 로열패밀리로만 여겨지던 왕족들이 실제로는 오은영도 울고 갈 각종 문제아에 사고뭉치 투성인이 '금쪽이'였다는 사실들이 연이어 폭로되면서 왕실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엘리자베스 2세의 동생이자 조지 6세의 차녀였던 마거릿 공주는 젊은 시절 아름다운 외모와 자유분방하고 발랄한 성격으로 영국 사회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의 이름이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된 계기는 왕실 경호원이었던 피터 타운센드와의 스캔들이었다.
공주와 경호원의 사랑이야기라면 달콤한 로맨스 드라마의 한 장면을 연상시킬 것 같지만, 문제는 타운센드가 평민 출신으로 나이는 공주보다 무려 16살이나 연상인 삼촌뻘인데다, 이미 아이까지 있는 이혼남이었다는 것이다. 설상가상 타운센드가 공주와 교제하기 시작하면서 이혼했다는 사실까지 밝혀지며 두 사람의 '불륜' 의혹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엘리자베스 2세는 마거릿과 타운센드의 결혼을 반대했고, 당시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은 격노하여 타운센드를 벨기에 대사관으로 전출시키는 것으로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결국 마거릿 공주는 타운센드와 결혼할 경우 평민으로 강등되어 왕실 구성원으로서의 모든 권리가 박탈될 것이라는 압박에 부담을 느껴 결국 세기의 로맨스는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그녀는 타운센드와의 결혼을 포기할 것을 선언하며 "나는 나의 의무를 무엇보다 우선시했다"는 의미심장한 어록을 남기기도 했다.
이후 마거릿 공주는 1960년 왕실 사진사였던 앤서니 암스트롱 존스와 결혼한다. 엘리자베스 2세는 여왕 본인의 결혼식 이후 무려 13년 만에 치러진 로열패밀리의 웨딩 이벤트인 데다, 스캔들로 실추된 왕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하여 TV 생중계까지 허용하며 하나뿐인 동생의 결혼식을 성대하게 치러줬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못했다. 앤서니는 본래 여자관계가 복잡했고 결혼 후에도 숱한 불륜을 저지르고 다녔다. 이에 마거릿 공주도 맞바람을 피우면서 롤링스톤즈의 믹 재거, 배우 피터 오툴 등 숱한 유명인 남성들과 염문설에 휩싸였다. 두 사람은 결국 결혼 18년 만인 1978년에 이혼하게 된다. 또한 마거릿 공주 부부의 이야기는 미디어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영국 왕실 최초의 사생활 스캔들이라는 오명을 남겼다.
불륜과 죽음에 민심 잃은 영국 왕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