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영웅본색>의 한 장면
조이앤시네마
오우삼 감독의 <영웅본색>은 '폭력의 미학'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오우삼 감독은 중국 무협 영화를 대표하는 장철 감독과 호금전 감독 외에도 프렌치 누아르의 거장 장 피에르 멜빌 감독, 폭력의 피카소로 불리는 샘 페킨파 감독 등 다양한 감독의 폭력 장면 연출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그는 총격신 중에 갑자기 느린 동작으로 변하는 초고속 촬영 기법, 춤과 무협물을 연상케 하는 부드러운 액션 안무, 쌍권총을 들고 있는 캐릭터 등을 활용하면서 액션 신을 아름다운 경지로 끌어올렸다.
그중에서도 마크(주윤발 분)가 보스 송자호(적룡 분)를 배신한 자를 처단하러 가는 '풍림각 장면'은 영화사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탄창이 떨어진 총을 버리고 화분에 숨겨둔 총을 잡는 동선, 총격전 중에도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여유, 복수를 끝낸 후 성냥개비를 입에 무는 무표정한 얼굴까지 이전 액션 영화들에선 볼 수 없었던 인상적인 요소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단지 폭력이 전부일까? 오우삼은 <영웅본색>의 성공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제작과 연출의 요인은 물론이고 영화의 내용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영화의 느낌은 특수한 심리상태(1997년 홍콩 반환으로 인한 불안감)에 놓인 홍콩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에 놓인 사실들에 대해 막막함을 느껴 어쩔 줄 모르는 그들은 자연히 이런 세태를 완전히 바꾸어 줄 수 있는 영웅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윤발이 맡은 '마크'와 같은 인물은 모든 사람이 가슴속에 바라고 있는 영웅의 형상인 것입니다."
- 책 <영화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 중에서.
<영웅본색>은 정의를 지키려는 주인공, 배신과 음모, 선과 악의 대립, 권선징악 등 무협 영화를 연상케 하는 구석이 다분하다. <영웅본색>의 인물들은 현대의 건물로 대체된 객잔에서 과거의 복식을 대신한 오늘날의 트렌치코트와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칼이 아닌 총으로 싸운다. 남자들의 우정과 의리를 지키기 위해 복수에 나섰다가 한쪽 다리에 큰 상처를 입고, 친구가 위험에 빠진 사실을 알고선 뱃머리를 돌려 같이 싸우러 왔다가 끝내 목숨을 잃기도 한다. <삼국지>나 <수호전>, 또는 이것을 기반으로 삼았던 숱한 무협 영화의 주인공 그 자체다.
오우삼 감독은 "강호의 도의는 사라진 지 오래됐네. 아무도 믿을 수 없지"란 극 중 대사를 통해 홍콩 반환 결정으로 인한 불안, 팽배한 정부 불신, 도덕성이 해이한 젊은이들이 저지르는 범죄 증가 등 그즈음 홍콩 사회를 보는 근심 어린 시각을 드러낸다. 그리고 해답으로서 의리, 우정, 가족 등 '인의(仁義)'를 지키고자 기꺼이 목숨을 던지는, 비극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영웅을 내놓았다. 그는 홍콩에 더 나은 내일(A Better Tomorrow)을 위해선 전통적인 가치의 회복이 필요하다고 믿은 것이다.
홍콩의 현실과 미래를 보여주는 주인공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