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세월"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
(주)시네마달
2016-2017년 촛불시위와 탄핵의 순간이 깃듭니다. 그리고 배반의 세월이 시작됩니다. 정권이 바뀌면서 이제는 모든 게 순리대로 흘러갈 것이라 기대했지만 '희망 고문'만 이어졌습니다. 온전히 해소되는 게 거의 없다 보니, 기대치가 높아서인지 배반감도 더 커집니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이제는 믿고 일상으로 돌아가도 되지 않냐며, 아직도 거리에서 그러고 있냐며 놀라곤 하는 비율이 늘어가던 시절입니다.
물론 타인들의 시각과 유가족의 생각이 같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쉽게 저울 위에 요구조건 목표치와 현실적으로 가능한 수준을 재곤 하지만, 시작부터 당연히 이뤄질 것이라 믿었던 조사와 후속 조치 중 무엇 하나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이들의 불신과 초조함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었으니까요. 그걸 무시하기 시작하면 결국 우리는 편의적으로 망각을 좇게 됩니다. 유가족의 영화 속 관점은 명확합니다. '가만히 있으라!' 하는 말을 믿었다가 죽었고,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더라는 경험적 진리를 체득한 이들입니다. 그래서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계속 뒤통수를 맞고 길거리로 나와 악다구니를 써야만 상황을 알릴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영화는 그런 유가족의 판단을 입증하는 경로로도 활용됩니다.
카메라를 든 유가족으로서 감독의 고뇌는 굳이 감독 본인이 드러내지 않으려 하지만, 몇 차례 거듭 겪은 배신의 순간 가운데 간혹 포착됩니다. 단원고 교내에 있던 '세월호 기억 교실'이 철거될 때 자식의 유류품이 든 박스를 옮기려다 책상에 주저앉아 큼직한 박스 뒤에 얼굴을 숨긴 채 부르르 떨던 문종택 님의 영상은 차마 보기 힘들 지경입니다.
그리고 부도덕한 정부와 책임을 회피하는 사회가 끊임없이 유가족에게 가한 폭력들, 분열과 갈라치기 과정의 증거들이 속속 화면에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폭식 투쟁'이라는 해괴망측한 야만적 폭거, 우리는 '노랭이'인데 왜 자꾸 '빨갱이'라 하냐며 웃고 넘기지만 지금도 이어지는 종북좌파 타령, 늘 유가족에게 결단을 요구하며 책임을 회피하지만 정작 제대로 해결할 의지가 없는 정치권에 대한 폭로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민낯을 기어코 붙잡아냅니다. 부끄러워하는 이들도 있지만 켕길 이들도 제법 있을 것입니다.
10년의 세월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입니다. 나치독일의 홀로코스트는 전후 현재까지 수많은 문화예술 작품으로 기억됩니다. 그중에도 프리모 레비의 이름과 작업은 대표적인 상징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이는 아무도 없다는 충격적인 선언을 남겼습니다. 육신은 용케 살아남았지만, 인간성의 상실과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자비한 외면, 그리고 지울 수 없는 상실감은 되돌릴 수 없기에, 생존자라도 그 주박에서 벗어나기란 불가능하다는 통찰입니다. 이후로 그의 말은 모든 '사회적 참사'에 적용되어 왔습니다. 그런 성찰과 기억의 힘을 잘 알기에 부도덕하고 무능한 권력이 그렇게 기를 쓰며 '참사'가 아니라 '사고'일 뿐이라며 억지 강변을 한 것이겠지요. 유가족들이 담담하게 말합니다. 노력하고 애썼지만 거의 모두 실패했는데 유일하게 성공한 게 합동분향소에 부착된 문구를 '사고'에서 '참사'로 1년 만에 교체한 거라면서 말이죠.
영화를 보고 나니 머릿속을 맴도는데 입 밖으로 꺼내기엔 망설여지는 '말'이 너무 많아서 주체하기 힘들어집니다. 영화 속 유가족들에 감히 비길 수 없겠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다들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슬픔의 공동체'를 통해서 도달한 사회적 통찰, 가까이는 1980년 5.18로부터 꾸준히 연결된 '국가폭력'과 '사회적 참사'의 교훈을 망실하고 외면하면 한국 사회는 후퇴했고, '타인의 고통'을 함께 나누려 할 때마다 부족하나마 발전할 수 있었던 역사적 진실을 영화를 보게 될 이들이 공유하길 간절히 바라며 만들었을 테니, 누수 없이 제작진들의 의도를 이해하고 공감해야 할 밖에요.
그래야만 살아 있지만 죽기만 못한 채로 그분들을 남겨두지 않고 우리의 이웃으로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 문종택 님도 넣을까 말까 망설였을 결정적 순간 중 하나이자 카메라를 든 이들의 숙명인, '내가 당신을 카메라로 찍는 도중에 죽으면 어떡하냐?'던 농담 같지 않은 농담을 목격하고 나면 순간적으로 소름이 돋을 것입니다. 그런 삶과 죽음의 경계를 10년간 넘나든 이들 앞에서 우리는 겸허해야만 합니다.
국가는 구조에는 한없이 무능하다가도
책임 회피와 여론 조작에는 놀랄 만큼 유능했다
무책임은 조직적이었고 책임 방기는 집단적이었다
위로 대신 탄압하고 지원 대신 감시했다
- 2022년 9월 10일,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종합보고서 中 -
영화의 후반에 어느 순간 이러한 문구가 화면 중앙에 자리를 잡습니다. 지난 10년간 우리가 목격하고 체험한 것의 총합에 가까운 내용입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온당한 해결을 가로막아온 이들이 그리도 기를 쓰고 온갖 부정한 술수로 진상규명을 은폐한 것은, 역설적으로 이 참사가 지극히 사회적인 주제라는 것을 증거하는 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 전체가 그들의 고통을 나눠가며 치유하고 개선하지 않은 결과는 이태원 참사를 비롯해 그 후로도 무수히 발생한 사회적 비극으로 이어집니다. 이를 막기 위해 우리는 기억하고 해결해야 합니다.
<바람의 세월>은 그들이 겪었던 온갖 바람을 견디며 살아남은 또다른 생존자들의 생생한 기록이기에 우리는 이 영화를 '체험'해야 합니다. 2024년 4월 16일이 다가옵니다. 2014년 그날로부터 3654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진실은 온전히 떠오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한국 사회는 더 나빠졌습니다. 우리는 그걸 잊지 않아야 합니다.
<작품정보>
바람의 세월 SEWOL: Years in the Wind
2024│한국│다큐멘터리
2024.04.03. 개봉│104분│12세 관람가
감독 문종택, 김환태
제작 연분홍치마
공동제작 다큐이야기
제작협력 (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공동배급 (주)시네마달, 연분홍프로덕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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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