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것은 보이는 것과 다르다> 스틸컷
인디그라운드
03.
최희현 감독이 제기하는 또 하나의 물음은 다른 예술과 달리 현실 속에 더 직접적으로 가 닿을 수 있음으로 인해 획득할 수 있는 리얼리티에 대한 것이다. 다른 예술 포맷이 그림으로 그린 배경 가구를 갖춰놓은 무대나 다른 연극 무대 장치의 일부가 필요로 하는 것과 달리 사진은 현실 세계 그 안에서 존재하고 기능한다. 감독은 이를 자연의 풍광을 포착하거나 조작할 수 없는 사회적 리얼리티들의 현상을 포착하는 것이 영화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영화와 카메라가 이토록 현실과 가까이 놓여 있는 까닭에 사진 속에 존재하는 사회적 정치적 현상은 인간 상상력의 예측을 넘어서는 폭력적 리얼리티를 낳게 되기도 한다. 전쟁과 같은 것들이다. 현실로부터 발현된 자극은 이를 촬영하기 시작한 카메라와 필름 위에서도 이미 관객의 흥미를 사로잡기에 충분한 정도의 리얼리티를 발생시키고, 영화나 다큐멘터리라는 하나의 매체로 그 리얼리티를 고스란히 전이시킬 수 있다.
결과적으로 자신과 수단을 홍보하기 위해 코닥사가 '오랫동안 버튼을 누르기만 하라'고, '그러면 나머지는 버튼이 다 할 것'이라고 외쳤던 것은 그 뒤에 존재할 인간 존재의 활동을 무시하고 제거해 둔 것일 뿐이다. 세일즈와 마케팅의 관점에서다. 그리고 그것이 낳은 결과는 이 작품 속에 제시되는 1950년대, 1960년대 사진 속의 다양한 여성들의 모습. 이름을 알 수 없고 존재를 특정할 수 없는 이들에 의해 완성된 조금은 우스꽝스럽고 완성된 성상품화에 가까워진 이들의 모습일 것이다.
여기에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남는다. 이 모습은 그들 전체의 모습을 대변할 수 있는 대표성을 지닐 수 있는 것인가? 전체 배경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이 사진들을 접하게 되었을 때, 이들에 대한 오해나 편견을 가질 수 있지 않을 수 있다고 확언할 수 있는가? 하는 것들.
04.
앞서 이야기했던 두 가지 의구심을 영상 위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시도도 이 작품에서는 엿볼 수 있다. 사진 안에 담겨 있는 인물들의 모습이 변해가는 모습을 통해서 한 번, 사진이라는 물성 자체의 앞뒤를 전환시키는 동작을 통해서 다시 한 번이다. 이 두 가지 시도는 각자의 자리에서 스스로가 가질 수 있는 리얼리티를 부정함과 동시에 증명해 내는 과정 속에 놓여 있다. 특히 영화의 후반부에서 등장하는 영상 바깥의 영상과 처음의 장면으로 되돌아간 감독 자신의 모습은 본인이 제시한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하는 행위와도 같다.
전쟁 기간 동안 상영된 한 편의 뉴스릴과 다큐멘터리 '싸우는 숙녀'와 관련된 두 가지 사례의 제시 또한 마찬가지다. 이 사례들은, 특히 다큐멘터리의 사례에서 제시되는 기관총과 연동된 카메라에 대한 독립적 촬영에의 시도는 내내 의문을 가져왔던 물음을 일부 해소할 수 있는 사례가 된다. 이 과정에서는 총이 발사되는 기계적 움직임과 카메라의 자동적 움직임으로 인해 인간 존재의 활동이 제거될 수 있어서다. 앞서 이야기했던 코닥의 그것과는 완전히 반대다.
카메라와 필름, 영화가 가진 리얼리티에 대한 이 영화의 논의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오랫동안 많은 이들이 고민해 왔던 크리에이터들의 의도와 그 반영에 대한 것이다. 영화는 물론 심지어는 다큐멘터리까지도 포함되는 영역이다. 리얼 타임 영상이 아닌 이상, 모든 영상물은 수많은 촬영 분량 가운데 편집의 과정을 거쳐 극소수 분량만이 영화적 형식 안에 포함되고, 그 과정에서 의도는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게 된다. 이 작품이 처음에 가졌던 리얼리티에 대한 의문은 다시 여기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