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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감독이 주목하는 것, 리얼리티와 위계를 전복시키는 힘

[2023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10] 큐레이션 03 극장에서 쓰는 편지 <이것은 보이는 것과 다르다>

24.03.23 10:18최종업데이트24.03.23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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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이것은 보이는 것과 다르다> 스틸컷
영화 <이것은 보이는 것과 다르다> 스틸컷인디그라운드
 
*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프레임의 안팎, 스크린의 안쪽과 바깥쪽, 그 경계를 나누는 카메라의 시선에 대한 논의는 오랫동안 진행되어 왔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영화나 다큐멘터리가 포함된 영상물의 총체를 관객의 입장에서 본다고만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스크린 위에 영사될 작품을 카메라 뒤에서 바라보고 있을 창작자 역시 대상을 바라보는 존재에 속한다. 어쩌면 극장의 관객과 카메라 뒤의 창작자는 스크린이라는 하나의 물성을 사이에 놓고 서로를 마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서로가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심지어는 상대의 목적이나 의미를 찾는 일에 생각보다 큰 목적을 두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최희현 감독의 실험 영화 <이것은 보이는 것과 다르다>에는 1950년대 한국에 주둔하던 미군들이 촬영한 한국 여성의 사진들이 등장한다. 이를 바라보는 감독 자신의 모습을 통해 과거에 존재했던 사진이라는 물성과, 그 물성 안에서 언젠가 살아 숨 쉬고 있었을 (어쩌면 지금도 어디선가 그 생을 이어가고 있을지도 모르는)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들 자신의 개인적인 사정이나 이야기를 이끌어내거나 어떤 담론을 형성하기 위함은 아니다. 이를 통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영화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카메라의 리얼리티다. 아니, 그 리얼리티의 존재성을 의심하는 일이다.

02.
"사진의 리얼리즘이 상상적 리얼리티를 창조하도록 사용되는 경우에서처럼 리얼리티에 대한 카메라의 지위는 힘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 감독은 몇 가지 측면에서 카메라가 가진 힘과 그 본연의 역할에 대해 의구심을 드러낸다. 가령 위에서 제시된 문장과 같은 것이다. 여기에서 상상적 리얼리티라는 것은 영화나 필름이 갖고 있는 허구적 이야기에 해당된다. 하지만 허구는 카메라에 의해 물성으로 전환되는 순간 일종의 믿음을 발생시키고, 허구가 대중의 믿음을 얻게 되는 순간 카메라의 지위 또한 그 힘의 원천이 된다.

이는 다른 예술 형식에서 예술가들이 자신이 창조하는 예술작품을 만드는 도구와 리얼리티 사이의 중개자가 되는 것과 달리 사진의 경우 자신 스스로가 리얼리티를 획득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는 이유와도 연결된다. 중요한 것은 물체인 카메라가 스스로 작동할 수는 없기 때문에 허구가 믿음을 얻고 하나의 리얼리티가 되는 과정에서는 분명히 인간 존재의 활동, 누군가의 개입이 따르게 되는데 그 누구도 여기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거나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는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뜻은 카메라 뒤에 놓인 사람의 정보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뜻과 같다.
 
 영화 <이것은 보이는 것과 다르다> 스틸컷
영화 <이것은 보이는 것과 다르다> 스틸컷인디그라운드

03.
최희현 감독이 제기하는 또 하나의 물음은 다른 예술과 달리 현실 속에 더 직접적으로 가 닿을 수 있음으로 인해 획득할 수 있는 리얼리티에 대한 것이다. 다른 예술 포맷이 그림으로 그린 배경 가구를 갖춰놓은 무대나 다른 연극 무대 장치의 일부가 필요로 하는 것과 달리 사진은 현실 세계 그 안에서 존재하고 기능한다. 감독은 이를 자연의 풍광을 포착하거나 조작할 수 없는 사회적 리얼리티들의 현상을 포착하는 것이 영화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영화와 카메라가 이토록 현실과 가까이 놓여 있는 까닭에 사진 속에 존재하는 사회적 정치적 현상은 인간 상상력의 예측을 넘어서는 폭력적 리얼리티를 낳게 되기도 한다. 전쟁과 같은 것들이다. 현실로부터 발현된 자극은 이를 촬영하기 시작한 카메라와 필름 위에서도 이미 관객의 흥미를 사로잡기에 충분한 정도의 리얼리티를 발생시키고, 영화나 다큐멘터리라는 하나의 매체로 그 리얼리티를 고스란히 전이시킬 수 있다.

결과적으로 자신과 수단을 홍보하기 위해 코닥사가 '오랫동안 버튼을 누르기만 하라'고, '그러면 나머지는 버튼이 다 할 것'이라고 외쳤던 것은 그 뒤에 존재할 인간 존재의 활동을 무시하고 제거해 둔 것일 뿐이다. 세일즈와 마케팅의 관점에서다. 그리고 그것이 낳은 결과는 이 작품 속에 제시되는 1950년대, 1960년대 사진 속의 다양한 여성들의 모습. 이름을 알 수 없고 존재를 특정할 수 없는 이들에 의해 완성된 조금은 우스꽝스럽고 완성된 성상품화에 가까워진 이들의 모습일 것이다.

여기에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남는다. 이 모습은 그들 전체의 모습을 대변할 수 있는 대표성을 지닐 수 있는 것인가? 전체 배경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이 사진들을 접하게 되었을 때, 이들에 대한 오해나 편견을 가질 수 있지 않을 수 있다고 확언할 수 있는가? 하는 것들.

04.
앞서 이야기했던 두 가지 의구심을 영상 위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시도도 이 작품에서는 엿볼 수 있다. 사진 안에 담겨 있는 인물들의 모습이 변해가는 모습을 통해서 한 번, 사진이라는 물성 자체의 앞뒤를 전환시키는 동작을 통해서 다시 한 번이다. 이 두 가지 시도는 각자의 자리에서 스스로가 가질 수 있는 리얼리티를 부정함과 동시에 증명해 내는 과정 속에 놓여 있다. 특히 영화의 후반부에서 등장하는 영상 바깥의 영상과 처음의 장면으로 되돌아간 감독 자신의 모습은 본인이 제시한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하는 행위와도 같다.

전쟁 기간 동안 상영된 한 편의 뉴스릴과 다큐멘터리 '싸우는 숙녀'와 관련된 두 가지 사례의 제시 또한 마찬가지다. 이 사례들은, 특히 다큐멘터리의 사례에서 제시되는 기관총과 연동된 카메라에 대한 독립적 촬영에의 시도는 내내 의문을 가져왔던 물음을 일부 해소할 수 있는 사례가 된다. 이 과정에서는 총이 발사되는 기계적 움직임과 카메라의 자동적 움직임으로 인해 인간 존재의 활동이 제거될 수 있어서다. 앞서 이야기했던 코닥의 그것과는 완전히 반대다.

카메라와 필름, 영화가 가진 리얼리티에 대한 이 영화의 논의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오랫동안 많은 이들이 고민해 왔던 크리에이터들의 의도와 그 반영에 대한 것이다. 영화는 물론 심지어는 다큐멘터리까지도 포함되는 영역이다. 리얼 타임 영상이 아닌 이상, 모든 영상물은 수많은 촬영 분량 가운데 편집의 과정을 거쳐 극소수 분량만이 영화적 형식 안에 포함되고, 그 과정에서 의도는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게 된다. 이 작품이 처음에 가졌던 리얼리티에 대한 의문은 다시 여기로부터 시작된다.
 
 영화 <이것은 보이는 것과 다르다> 스틸컷
영화 <이것은 보이는 것과 다르다> 스틸컷인디그라운드

05.
영화의 처음과 끝 장면은 거의 동일하다. 완전히 같지는 않다는 뜻이다. 몇 장의 사진을 넘기는 감독의 모습은 완전히 같다고 치더라도, 그의 오른쪽에 남겨진 거울 속의 모습, 현재의 장면을 촬영하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에는 차이가 있다. 한쪽에는 존재하지 않고, 다른 한쪽에는 존재한다. '리얼리티란 무엇인가?' 어쩌면 이 영화의 끝자락에 놓여 있는 리얼리티에 대한 물음은, 그 자체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그 역할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영화의 타이틀인 '이것은 보이는 것과 다르다'에는 그런 의미가 있다.
덧붙이는 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설립하고 한국독립영화협회에서 운영 중인 인디그라운드(Indieground)는 2024년 2월 15일(목)부터 총 18개의 큐레이션을 통해 ‘2023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선정작 92편(장편 22편, 단편 70편)을 소개/상영할 예정입니다. 세 번째 큐레이션인 '극장에서 쓰는 편지'는 3월 16일부터 3월 30일까지 보름간 인디그라운드 홈페이지를 통해 회원 가입 후 무료로 시청 가능합니다.
영화 인디그라운드 이것은보이는것과다르다 독립영화 최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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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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