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튼 아카데미>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영화는 그들의 외로움을 포근히 안아준다. 그게 바로 바튼 아카데미의 힘이다. 각자 말 못 했던 상처(비밀)를 하나씩 꺼내며 연대하고 서로를 응원한다. 특히 폴과 툴리는 바튼을 떠나 잠시 보스턴에서 겪은 일련의 사건사고로 전우애를 쌓는다.
세대는 다르지만 둘은 하얀 거짓말로 실수를 덮어주고, 네 잘못이 아님을 깨닫게 도와주며,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다독인다. 인생은 닭장의 횟대와도 같아서 언제나 위태롭고 더럽기 마련이고, 나 혼자 잘 살자고 태어난 게 아니기 때문에 부대끼면서 알아가야 하는 법을 깨우쳐 준다.
하지만 진입장벽도 있다. 과거 인종(문화)의 용광로라 불렸던 미국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영화적 재미가 반감될 수 있다. 크리스마스 연휴에 생긴 일은 <나홀로 집에>를 연상케하기 때문에 홀리데이 시즌 영화의 클리셰를 따라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영하의 추위, 넉넉지 않은 식재료의 한계 속 버텨야만 한다는 설정도 식상함이 느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영화는 천천히 스며들어 내면의 소용돌이를 만들어 낸다. 별일 없이 산다는 말을 온전히 체감하게 만들다가 감동을 안긴다. 고독, 외로움이라는 상처를 유난 떨지 않고 넌지시 달래준다. 묵묵하게 들어주는 경청, 아무렇지 않은 듯 툭하고 휴지를 내미는 관심이 이 영화의 미덕이다.
역사 선생님 폴의 입으로 전해지는 다양한 문헌, 명언도 인상적이다. 역사(과거)는 현재를 알아가는 가장 중요한 열쇠기 때문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인류의 DNA다. 폴은 이성에게 매력을 어필하긴 글렀지만 훌륭한 선배, 괜찮은 어른, 좋은 친구, 영화의 스토리텔러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꼰대 같아 보여도 가장 꼰대 같지 않은 인물이 폴이다.
헤어짐은 또 다른 만남인 것처럼 '또 보자'라는 인사는 다시 만나자는 약속인 셈이다. 진정한 친구란 단점을 말해주는 사람임을 종종 잊어버리고 산다. 돌고 돌아온 깊은 애정임을 조금 늦게 알게 되는 뭉클함이 <바튼 아카데미>에 담뿍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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