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쿠와 세계"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
㈜엣나인필름
<서장_에도의 똥은 어디로?> _1858년 늦여름, 에도.
이야기가 시작된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어느 사찰 한구석, 공중변소 앞에서 두 명의 청년이 비를 피하는 중이다. 하지만 둘 중 한 청년은 다른 청년과 비좁은 처마 아래에서 어떻게든 간격을 띄우려 거듭 부질없는 시도를 이어간다. 자석의 양극처럼 붙었다 떨어지길 반복하는 청년은 폐지장수 '츄지'다. 그는 지물포에서 이면지를 수집해 되파는 장사꾼이다. 츄지가 간격을 벌리려는 상대는 '야스케'다. 츄지는 코를 막으며 필사적이다. 무슨 냄새가 나는 걸까? 알고 보니 야스케는 똥거름장수다. 그는 어깨에 걸친 지게로 공중변소의 똥을 퍼 농촌에 거름으로 판매하는 일을 한다. 자연히 야스케에게선 그가 취급하는 '상품'의 냄새가 깊게 배어난다.
비는 그칠 줄 모르는데 절을 나서다 비를 정통으로 맞은 젊은 여성이 급히 변소 처마 밑으로 합류한다. 누더기를 걸친 장사꾼 사이에 수수하지만 기품 있는 여인이 자리하니 분위기가 급변한다. 야스케는 그를 알아보지만 똥 냄새를 풍기는지라 그 여성, '오키쿠'는 야스케에게서 고개를 돌린다. 하지만 츄지에겐 우호적인 시선을 보낸다. 그러나 곧 오키쿠는 위기에 봉착한다. 배에서 신호가 온 것이다. 참다 못한 그는 다급하게 두 청년에게 자리를 피해달라 읍소한다. 상황이 파악된 둘은 장대비 속에 근처 정자로 자리를 피해준다. 시간대만 달리하면 이 캐릭터 조합은 현재의 SNS 쇼츠 설정으로 삼아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우여곡절 속에 영화의 주인공 셋이 만나는 순간이다.
츄지는 폐지장사로 생계가 풀리지 않는다. 그래서 야스케의 동업자가 일을 그만뒀다며 던지는 제안을 못이긴 척 응한다. 이제 둘은 지게와 수레를 끌고 대도시 곳곳의 공동주택과 무가 저택들의 변소에서 똥을 퍼내는 동업자가 되었다. 야스케와 츄지는 수로를 타고 에도로 들어올 때는 근교 농촌에서 채소를 받아 시장에 넘기고 돌아올 때는 수집한 똥을 농가에 판매한다. 오키쿠는 어느 날 아버지와 자신이 기거하는 공동주택에 똥을 가지러 온 츄지를 목격한다. 청춘남녀의 재회장면 치고는 퍽 잔인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제1장 무적의 오키쿠> _1858년 가을.
바다에 면한 에도에는 늦은 폭풍우가 몰아친다. 수위가 올라오자 오키쿠의 공동주택 변소도 덩달아 분출하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분뇨의 역류'다. 공동주택 이웃들의 원성과 집주인의 철면피 대처, 그 와중에 한 집에 거주하는 에도의 하층민들 신세타령이 해학적으로 펼쳐진다. 그런 왈가왈부가 진득하게 펼쳐지는 도중에 마침내 음지의 '히어로'들이 도착하다. 야스케와 츄지가 스레와 지게를 끌고 당도한 것이다. 그들의 활약으로 마침내 공중변소의 수위가 낮아지기 시작한다.
<제2장 원통한 오키쿠> _1858년 늦겨울.
한겨울 이른 시간에 츄지는 야스케와 구역을 나눠 오키쿠의 공동주택으로 출동한다. 하필 변소에는 오키쿠의 아버지가 변비로 끙끙대던 중이다. 원래 어엿한 무사였던 그는 잘나가던 시절에는 종이로 뒤처리를 했지만, 이제는 지푸라기로 대용하는 시세라고 씁쓸히 회고한다. 그러던 중 느닷없이 츄지에게 '세계'라는 단어를 아느냐 묻는다. 무학인 츄지로선 전혀 낯선 말이다. 곤혹스러운 그에게 오키쿠의 아버지는 선문답하듯 '세계(세카이)'란 말을 아는지 묻고, 세계에는 끝이 없다며 혹여나 훗날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이 세계에서 제일 좋아한다고 말해주라 전한다. 그날 오키쿠의 아버지는 불귀의 객이 되고 오키쿠는 목을 다쳐 말할 수 없게 된다.
<제3장 사랑에 빠진 오키쿠> _1859년 늦봄.
츄지는 오키쿠의 사정을 공동주택 이웃인 통장이 노인에게 듣는다. 목숨은 건졌지만 몇 달간 요양을 마치고 돌아온 오키쿠는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다. 오키쿠의 머리맡에는 단도와 목수건이 놓여 있고 어두컴컴한 실내에는 등잔 위 타들어가는 촛불만이 주위를 밝혀준다. 하지만 공동주택 이웃들은 밖에서 안부를 걱정하며 구운 정어리를 가져다놓고, 주정뱅이 노인은 오키쿠의 부친을 애도하자며 술을 들이킨다. 오키쿠가 생업으로 삼던 교습소 제자와 인연 깊은 스님이 방문해 교습소로 돌아오길 간청한다. 오키쿠는 어렵사리 목의 상처를 보이며 사양하려 하지만 스님은 그에게 해야 할 역할이 있다며 '역할'은 일을 나눈다는 뜻 아니냐 질문한다. 결국 오키쿠는 승낙하고 교습소로 돌아간다.
한편 야스케와 츄지의 일상은 변함이 없다. 츄지가 서민 공동주택을, 야스케가 무가 저택을 맡아 오늘도 분주히 똥을 수거하는 중이다. 언뜻 야스케가 좀 더 고상(?)한 구역을 맡은 것 같지만 고용살이하는 하인들조차 야스케를 천대하며 뒷돈을 올려주길 강요한다. 수모를 당한 뒤 거리를 배회하지만 누구나 코를 막을 뿐 그의 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하지만 우연히 마주친 오키쿠가 그를 위로한다. 그러나 울분에 싸인 야스케는 그런 오키쿠에게도 역정을 부리다 끝내 사과하고 사라진다. 그 만남을 통해 츄지는 오키쿠가 돌아왔음을 알게 된다.
<제4장 바보와 바보> _1859년 초여름, 카사이 영지
<제5장 바보 같은 오키쿠>
야스케와 츄지의 수난은 계속된다. 똥거름을 운반하던 중 수레가 부서지는 바람에 일일이 지게로 옮기는 수고를 겪었지만 지주에게 역성만 듣고 똥을 뒤집어쓰고 만다. 욱하는 성질에 무슨 사단이 날 줄 알았지만 야스케는 어쩌지 못한 채 분노를 삭이며 어설픈 개그로 견딜 뿐이다. 한편 어느 정도 일상을 회복한 오키쿠는 서책에서 '츄기(충의)'라는 단어를 보다 먹을 갈아 종이에 '츄지'를 쓴 뒤 아이처럼 즐거워한다.
<제6장 그리고 배는 간다> _1859년 늦여름, 나카 강
우여곡절을 겪지만 야스케와 츄지는 에도의 똥 수거를 책임지며 여전히 바쁘다. 배에 실어온 똥을 강변 움에 비축한 뒤 물을 부어 무게를 늘리는 야스케에게 츄지는 똑바로 살아야 한다며 타박하지만, 야스케는 거래처 무가와 상인들도 똥의 수거가격을 후려치면서 부당하게 이득을 취하는데 뭐 어떻나며 받아친다. 그렇게 티격태격 하다가 우리가 똥을 푸지 않으면 세상이 어떻게 될까 상상하며 웃어제낀다. 츄지는 언젠가 읽고 쓰는 법을 배우고 똑바로 살겠다고 다짐한다.
<제7장 세계의 오키쿠> _1860년 겨울
공동주택은 여전히 왁자지껄하다. 정답게 이웃이자 대가족임을 강조하던 집주인은 집세 독촉에는 예외가 없다. 그런 가운데 오키쿠는 츄지를 찾아가 마음을 전하려 한다.
<종장 오키쿠의 세계> _1861년 늦봄
야스케는 또다시 무가 저택에서 수모를 당하지만, 이번에는 유쾌하게 보복하는데 성공한다. 오키쿠는 교습소에서 '세계'에 대해 설명하는데 아이들 뒤편에는 어른들도 보인다. 그중에는 츄지도 있다.
1858-1861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