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일(현지시간) 카타르 알라이얀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4강전 한국과 요르단 경기가 끝난 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과 차두리 코치가 손흥민을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쩌면 능력 문제보다 더 심각했던 것은 '태도'였다. 역대 대표팀 감독들도 저마다 크고 작은 공과는 있었어도 최소한 직업인으로서의 기본적인 소양이나 프로의식을 의심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클린스만은 단순히 무능한 것을 넘어서, 국가대표 감독으로서의 직업윤리와 사회적 공감능력이 결여된 무책임한 모습으로 일관했다.
클린스만은 이미 한국대표팀을 맡기 이전부터 '근무태만'으로 여러차례 구설수에 올랐던 인물이다. 국가대표팀 감독이라면 해당 국가에 체류하며 선수 파악에 전력을 다하는 것은 기본적인 상식이자 의무다. 하물며 클린스만은 한국 선수들과 아시아 무대가 낯선 외국인 감독이었다. 그럼에도 클린스만은 그 시간에 주로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주로 시간을 보냈고, A매치가 있을 때만 잠시 한국에 돌아오는 식이었다. K리거에 대한 직접 점검은 코치들에게 위임하고 주로 편집된 영상과 문서 자료로만 선수들을 파악하는 데 그쳤다.
이에 대하여 클린스만은 "대표팀 감독은 국제적으로 활동해야 한다"는 핑계를 앞세워 자신의 소임에 충실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대표팀 감독과 무관한 해외축구 평론활동이나 어차피 붙박이 선발멤버인 유럽파만 보러 돌아다니는 모습들은, 그 진정성에 의문부호를 자아냈다. 오히려 부임 직후 일찌감치 고정화된 선수선발과 전술의 단조로움은 결국 아시안컵 참사까지 이어지는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클린스만이 본인의 주장대로 정말 한국대표팀 감독직에 충실했다면, 몇 달간 소속팀 경기에도 출장하지 못하던 선수를 뽑는다거나, 팀의 주축인 손흥민-이강인을 활용하는 전술 하나도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다는 미스터리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입버릇처럼 아시안컵 우승을 목표로 한다면서 정작 한국이 아시안컵에서 상대해야 할 아시아 팀들에 대한 전력분석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도, 잦은 외유가 근무태만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또한 클린스만은 말바꾸기도 서슴지 않았다. 2023년 2월 부임 당시 기자회견에서 클린스만은 분명히 "한국에 상주하며 대표팀 감독직을 수행할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아시안컵 개막 전에는 "아시안컵 우승으로 평가받겠다. 성적으로 책임을 지는 것이 감독의 숙명"이라고 여러번 언급했지만, 탈락한 직후에는 "4강에 올랐는데 왜 비판받는지 모르겠다"며 사실상 자진사퇴를 거부하는 것으로 말을 바꿨다.
심지어 "한국으로 돌아가면 축구협회와 함께 아시안컵 결과를 분석하고 논의하겠다"던 발언과 달리, 귀국한 지 불과 며칠도 되지 않아 홀연히 미국으로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자신이 직접 한 약속도 아무런 책임감없이 언제든 180도 뒤집어버리고, 그때 그때 말을 바꾸는 신의 없는 인물에게 어떻게 한국축구의 미래를 계속 맡길 수 있을까.
무엇보다 클린스만에게는 감독으로서 자신의 문제점을 스스로 성찰하고 발전하려는 자성 의지도, 외부의 비판을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감능력도 보이지 않았다. 이는 클린스만이 앞으로도 달라질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클린스만은 소속팀 울산 현대에서 SNS를 통한 '인종차별' 사건으로 한창 논란에 휩싸였던 박용우를 국가대표로 발탁하여 A매치에 데뷔까지 시킨 바 있다. 또한 사생활 논란으로 물의를 일으킨 황의조 역시 대표팀에 계속 중용하겠다고 밝혔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기도 했다. 결국 협회의 결정으로 황의조는 국가대표 자격을 잠정적으로 박탈 당하기는 했지만, 클린스만이 국가대표 선수로서의 품위나 한국의 사회적 여론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 '불통'임을 드러냈다.
특히 지난 아시안컵 말레이시아전-요르단전 졸전 이후와 입국 기자회견 등에서 연이어 불거진 '미소' 논란은, 클린스만이 한국 대표팀 감독직을 그동안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고 있는지 보여준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그 장소가 축구장이든 교실이든 법정이든, 누구나 때로는 진지하고 심각해져야 하는 순간이 있다. 그러나 클린스만은 그동안 자신을 둘러싼 비판을 한 번도 진지하게 받아들인 적이 없다. 아시안컵 탈락 이후, 선수들이 좌절감을 감추지 못하고 팬들에게 먼저 사죄 릴레이를 하는 동안에도, 정작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감독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오히려 선수들의 뒤에 숨어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느새 대표팀 운영의 모든 기준은 '클린스만이 편한대로'가 우선순위가 되어버렸고, 그동안 대표팀 운영 시스템에서 당연하게 여겨졌던 상식이나 원칙은 모두 무너졌다. 클린스만은 한국축구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데, 왜 한국축구에게만 일방적으로 자신의 방식을 존중해달라고 뻔뻔하게 요구하는 것일까.
이처럼 아무리 살펴봐도 클린스만에게 한국 대표팀 감독직을 계속 맡겨야 할 만한 이유는 전혀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이제 협회의 최종 결단 뿐이다.
만일 협회가 아직도 클린스만의 경질을 주저한다면, 그 이유로는 '위약금' 문제 등이 거론되고 있다. 협회는 클린스만과의 계약내용을 정확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연봉은 220만 달러(29억원) 안팎으로 추정되며 현재 2년 반 정도의 임기를 남겨두고 해임할 경우에 축구협회가 물어줘야 할 위약금은 60억 원 안팎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이다. 여기에 애초에 선임절차부터 의문스러웠던 클린스만을 감독으로 선택한 배경을 두고도 각종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만에 하나라도 협회가 클린스만을 유임시킨다면, 여론의 화살은 이제 정몽규 회장과 축구협회를 정면으로 향할 가능성이 높다. 클린스만은 어차피 대표팀 감독으로서 이미 권위와 신뢰를 상실해버린 '식물 감독'이 될 수밖에 없다. 보란 듯이 여론을 무시하고 미국으로 돌아가버린 것도 이미 경질을 예상하고 위약금이나 챙기려는 도발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클린스만에게 협회가 끌려다니며 운명공동체가 되겠다는 것은, 자충수를 두는 꼴이다.
축구협회가 클린스만과 어떠한 방식으로 계약을 맺었는지는, 이번에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정상적인 계약이라면 부임 이후 줄곧 국내에서 거의 체류하지 않고 직무유기를 저지른 클린스만에게 먼저 귀책 사유를 물어야 한다. 하지만 만일 계약조건에 이러한 클린스만의 행태를 묵인하는 내용까지 포함되었다면, 계약해지와 위약금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부실계약을 주도한 관계자들과 최종 결정권자인 정몽규 회장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또한 클린스만을 경질하면 과연 누구를 새로운 감독으로 뽑는가 하는 문제도 간단치 않다. 당장 다음 A매치인 태국과의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일정까지 한 달여 밖에 남지 않아서 시간이 촉박하다. 또한 새로운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기에는 비용 문제도 만만치 않다.
결국 다음 경기는 일단 클린스만 경질 이후 2012년 최강희 전 감독 때처럼 '임시 감독' 체제로 치러질 가능성에 무게가 쏠린다. 또한 정식 감독을 선임하더라도 국내파 감독이 우선 순위가 될 것이 유력해보인다. 황선홍 올림픽대표팀 감독, 박항서 전 베트남 대표팀 감독, 최용수 전 FC서울 감독, 김판곤 말레이시아 대표팀 감독 등 국내파 중에도 충분히 자질있는 지도자들은 많다는 점에서, 대안이 없다는 핑계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결말이라면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필요가 없다. 북중미월드컵까지 남은 2년여의 시간을 더 이상 헛되게 낭비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난 1년여간 클린스만 체제에서 망가진 국가대표 감독 선임과 운영의 시스템을 복원하는 데 있다. 한국축구에 악몽이 되어버린 '클린스만 사태'는 과연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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