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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성 없는 클린스만호, 자유 방임 축구의 참혹한 결말

[2023 아시안컵 결산 ①] 한국 축구, 64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 실패

24.02.13 09:16최종업데이트24.02.13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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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장 손흥민이 아시안컵 16강 사우디전에서 드리블하는 모습
주장 손흥민이 아시안컵 16강 사우디전에서 드리블하는 모습대한축구협회
 
64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을 차지할 절호의 기회였다. 손흥민, 황희찬 등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득점 랭킹 상위권에 올라있는 공격수를 2명이나 보유한데다 이강인, 김민재는 각각 빅클럽 PSG와 바이에른 뮌헨에서 핵심 자원으로 활약 중이었다.

이밖에 이재성, 정우영, 황인범, 홍현석, 오현규, 양현준, 김지수까지 역대 아시안컵에서 가장 많은 11명의 유럽파가 출전했다.

그래서 이번 2023 아시안컵은 어느 때보다 기대감이 높았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4강이라는 성적만 놓고보면 완전한 실패라고 간주할 수 없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경기력은 참담한 수준이었다.

연승 행진에 가려진 약점

지난 3월 클린스만 감독은 한국 대표팀 사령탑 부임 첫 기자회견에서 공격 축구를 선언했다. 첫 번째 소집인 3월 A매치 콜롬비아-우루과이와의 2연전에서 직선적이고 빠른 공격 전환을 선보여 시원시원하다는 평가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경기를 거듭할수록 오히려 퇴보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비교적 클래식컬한 4-4-2 시스템을 운용했는데 좌우 풀백을 최대한 높이고, 좌우 윙어는 터치라인으로 벌리는 형태다. 이는 2명의 중앙 미드필더에게 굉장한 과부하가 걸리는 구조다.

사령탑 부임 초반 5경기 연속 무승(3무 2패)의 부진한 성적과 맞물려 클린스만 감독의 재택 근무 및 외유 논란이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그러나 지난해 9월 사우디 아라비아전부터 튀니지, 베트남, 싱가포르, 중국, 이라크를 상대로 연승을 거두자 이러한 비판론을 조금씩 불식시켰다.

그럼에도 위험요소는 남아있었다. 약체와의 경기에서 대승을 거둔 탓에 약점이 가려진 것이다. 빌드업 체계와 공격 진영에서 디테일한 전술 부재, 넓은 공수 간격의 문제점을 개개인의 퍼포먼스로 상쇄했기 때문이다.
 
 조규성이 16강 사우디전에서 종료 직전 동점골을 넣고 동료들과 환호하는 장면
조규성이 16강 사우디전에서 종료 직전 동점골을 넣고 동료들과 환호하는 장면대한축구협회
 
매 경기 최악의 졸전, 90분 기준 1승 4무 1패

클린스만호는 이번 아시안컵에서 조별리그부터 삐걱거렸다. 첫 경기 바레인전에서 3-1로 승리했을 뿐 이후 매 경기가 고통의 연속이었다. 요르단, 말레이시아를 상대로 후반 추가시간까지 가는 혈투를 벌여야 했다. 심지어 승리조차 챙기지 못했다.

16강 사우디 아라비아, 8강 호주전에서는 후반 추가시간 극적인 동점골로 승부를 연장으로 몰고 갔다. 일부 언론에서는 '좀비 축구', '정신력'으로 포장했지만 냉정하게 최악의 졸전이었다. 플랜A 실패로 인해 어렵게 경기를 끌고간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4강 요르단과의 리턴매치에서는 모든 면에서 변명의 여지없는 완패였다. 슈팅수 8-17, 특히 유효슈팅 0개는 역사에 남을 굴욕이었다.

이번 대회에서 90분 기준으로 6경기 동안 1승 4무 1패에 그쳤다. 이 중 5경기는 상대에게 리드를 당하는 상황을 연출했다.

아시안컵 역사상 전반전 슈팅 0개는 8강 호주전이 최초였으며, 2골차 이상 패배는 1996 아시안컵 이란전(2-6패) 이후 28년 만이다.

수비 불안-집중력 부족

한국은 이번 조별리그 3경기에서만 6실점을 허용했는데, 아시안컵 역대 조별리그 최다 실점 기록이다. 대회 직전 7경기 연속 무실점을 이어나가자 이기제-김민재-정승현-설영우로 구성된 포백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강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클린스만호는 아시안컵 본선에 돌입하자 6경기동안 10골을 내줬다.

김민재를 제외한 센터백 파트너로 김영권, 정승현이 번갈아가며 나섰지만 모두 부진했으며, 좌우 풀백도 시행착오를 겪은 탓에 대회 도중 설영우-김태환으로 정착됐다.

특히 조별리그 3경기 모두 선제골을 넣고 나서 전반 막판이나 후반 초반에 동점골을 내줬다. 1-0의 리드를 단 한 차례도 지켜내지 못한 것이다.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의 경기 운영 능력은 최악에 가까웠다. 

심지어 요르단, 말레이시아에는 역전을 허용하며 패배 위기에 내몰렸다. 말레이시아전에서는 1-2에서 3-2로 재역전에 성공했지만 종료 직전 어이없게 실점하며 다 이긴 경기를 놓치고 말았다. 매 경기 실점하다보니 1경기라도 편하게 가는 법이 없었다.  
 
 이번 아시안컵에서 클린스만 감독이 보여준 전술 능력은 최악에 가까웠다.
이번 아시안컵에서 클린스만 감독이 보여준 전술 능력은 최악에 가까웠다.대한축구협회
 
전술 대처 능력 부재

클린스만 감독은 조별리그 3경기에서 투 스트라이커를 배치하는 4-4-2 포메이션을 가동했다. 주로 조규성과 손흥민을 전방에 포진시켰다. 

하지만 공수 라인 간격이 40m에 이르면서 선수간의 거리가 멀었다. 언제나 후방 빌드업 상황에서 하프 라인 밑에는 2명의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1명이 남겨지는 상황을 초래했다. 중원이 텅텅 빈 채로 경기하는 양상이 90분 내내 지속됐다.

상대팀들은 이미 이러한 한국의 약점을 간파하며 공격수들과 윙어들이 좌우 간격을 좁히고, 강한 압박을 시도해 패스 경로를 차단했다. 수비진영에서 끊임없는 패스 미스와 소유권 상실이 이뤄진 이유다. 공을 빼앗기는 즉시 위험 상황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아시안컵에 참가한 모든 팀들이 철저하게 상대를 분석하고 대비했다. 무엇보다 클린스만 감독은 이에 대한 대처법을 전혀 내놓지 못했다는 데 있다. 

준비된 전술은 없었고, 경기 도중 즉흥적인 변화를 시도할 뿐이었다. 대회 전 한 번도 훈련하지 않은 스리백을 사우디 아라비아전에서 가동하거나, 장신 수비수가 즐비한 호주를 상대로 조규성을 전방에 내세웠다. 4강 요르단전에서 처음으로 4-3-3을 꺼내든 것 모두 대실패였다. 무의미하게 포메이션만 바꿨을 뿐 선수들의 동선은 엇박자를 보이며 졸전을 펼쳤다. 

선수 선발-대회 준비-운영 능력 문제점

사실 대회 시작 전부터 실패의 조짐이 드러났다. 지난해 12월 대표팀 첫 소집 당시 대한축구협회의 파주트레이닝센터 사용 계약이 종료됨에따라 서울 호텔에서 실내 훈련에만 매진했다. 피트니스 센터에서 일반인 투숙객들과 함께 같은 공간을 사용한 것이다.

심지어 선수들은 공을 만져볼 기회조차 없었다. 당초 기후가 따뜻한 남부지방에서 운동장을 대여할 계획이었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컨디션 점검을 위해 실내훈련에 매진한다고 발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황희찬, 김진수는 대회 직전 부상을 당했다. 김승규는 훈련 도중 십자인대 부상으로 1경기만 치르고 중도하차했다. 훈련 시스템에 대한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선수 선발도 아쉬움이 따른다. 26인 엔트리를 폭넓게 활용하지 못했다. 유망주인 센터백 자원 김지수, 김주성을 비롯해 문선민, 이순민, 골키퍼 송범근까지 총 5명의 출전시간은 0분이었다. 3차전에서 부상 회복해 15분을 소화한 왼쪽 풀백 김진수를 토너먼트에서 기용하지 않은 점 또한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패하더라도 16강에 오를 수 있는 말레이시아와의 3차전에서 로테이션을 돌리지 않고 주전들을 풀가동한 여파는 토너먼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16강, 8강에서 모두 연장전 혈투를 벌이며 체력을 소진, 결국 4강 요르단전에서 맥없이 패했다. 주전에게 의존한 채 한정된 자원으로만 대회를 운영한 셈이다.

클린스만 감독은 정우영, 권경원, 김문환 등 카타르 월드컵에서 활약한 선수들을 철저하게 외면했다. 반면 박용우, 이기제, 정승현 등 벤투호 체제에서 중용받지 못한 얼굴들이 클린스만 감독의 선택을 받았는데 이들 모두 이번 아시안컵에서 부진을 면치 못했다.
 
 이강인이 바레인과의 1차전에서 득점한 이후 기뻐하는 모습
이강인이 바레인과의 1차전에서 득점한 이후 기뻐하는 모습대한축구협회
 
개인 역량에 의존... 한계 드러낸 클린스만호

클린스만 감독의 '공격 축구'는 뚜렷한 전술적 색채를 드러내지 못한 채 선수들의 개인 능력에 의존하는 성격이 짙었다.

세부적인 전술을 주문하기보다는 자율성에 맡긴 것이다. 실제로 선수들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격 상황시 자유롭게 플레이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손흥민과 이강인의 개인 능력에 의한 득점이 많았다. 수비에서는 김민재 혼자 넓은 지역을 누비며 많은 공간을 커버해야 했다.

어느 한 경기라도 약속된 전술에 의한 득점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11득점 가운데 오픈 플레이로 넣은 장면은 4골이 전부다. 바레인전 3골, 16강 사우디 아라비아전 조규성의 헤더골이다.

대부분 페널티킥, 프리킥, 자책골에 편중됐다. 조직력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김민재에 의존한 수비진은 6경기 10실점을 기록, 한국보다 전력이 약한 아시아팀들에게 두들겨맞았다.

방향성 없이 개인 능력에 의존하는 자유 방임 축구로는 아시아 무대에서조차 통하지 않는다는 게 이번 2023 아시안컵이 가져다준 교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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