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연습 한창인 권인하(자료사진).
연합뉴스
'비오는 날 수채화'의 히트로 김현식, 권인하 그리고 나는 여기저기 행사장에 불려다니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1990년 어느 날, 서울여대의 방송 가요제 축제에 초대되어 간 적이 있었다. 정문을 들어설 때부터 여학교 특유의 향기로운 분위기와 꽃잎이 날리는 듯한 술렁거림에 남자 셋의 마음이 약간씩 들뜨기 시작했다. 공연이 시작될 강당으로 걸어가는 길, 그의 넘치는 매력에 여대생들의 호기심이 모두 쏠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잠시 후, 공연이 시작되고 10분 쯤 후 갑자기 정전이 됐다. 천여 명의 학생들의 "아~!"하는 안타까움의 탄성이 강당을 풀썩 들었다 놓았을 때, 권인하가 무대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큰 목소리로 "여러분, 지금부터 전기가 들어올 때까지 마이크 없이 부르는 노래는 보너스입니다"라고 말한 후, 팝송이며 그의 솔로 애창곡들을 맨 목소리로 쌩쌩하게 불러대는 것이 아닌가.
학생들은 떠나가라 함성을 질러댔고, 강당은 박수소리로 들썩거렸다. 그때 나서지 못했던 현식이와 나는 그저 무대 한편에 서서 권인하에게 싱거운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는 내면에 생동하는 기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뮤지션이다. 귀를 간지럽히는 가사와 음성이 아닌 건강한 힘의 아름다움으로 인생과 사랑을 전하는 고집쟁이 뮤지션이다. 다만 힘이 넘쳐흐를 때 그의 깊은 곳 한쪽에서 그를 움직여야 할 그 무엇이 좀 더 강력하게 작용하여 그 힘의 간극을 조금씩만 조절해 주면 좋겠다는 우정 어린 생각을 해 본다.
"형 요새 어때?" 하고 물어보는 그를 보면서 그에게 약함을 드러내지 않고 항상 무엇인가를 줄 수 있는 강한 선배 음악인으로서 서 있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
싱어송라이터, 공연연출가, 기획자로 활동해온 대중 예술가입니다